어떤 나라를 하나의 성향으로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우리는 흔히 서양 국가들은 개인주의가, 동양 국가들은 집단주의가 발달했다고 여긴다. 타당성 있는 이야기일까, 느낌에 의존한 추측일 뿐일까. 문화 비교 이론으로 유명한 홉스테드 모형은 이에 대한 하나의 열쇠가 될 수 있다. 네덜란드의 비교문화학자 홉스테드(G.Hofstede)는 문화 비교 차원으로 ▲ 권력거리 차원 ▲ 개인/집단주의 차원 ▲ 남/여성성 차원 ▲ 불확실성 회피성 ▲ 장/단기 지향성 5가지를 제시했다. 1983년에 진행되었던 홉스테드의 연구에서 한국은 개인주의 점수가 18점으로 매우 낮아 집단주의 문화를 보유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개체로서 존재하는 개인보다 그들로 구성된 집단을 우선시하는 동아시아 집단주의는 타인과의 관계, 사회적 책임, 도덕성을 중시하는 유학 체계에서 뻗어왔고, 많은 나라들이 그 안에 속해 있다. 일본, 중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중화계를 포함한 동아시아 내 타 국가의 결과도 한국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홉스테드의 문화 비교 차원 5가지

새 학기 입학을 앞두고 신입생 환영회가 열리는 2월, 올해는 잠잠한가 싶었더니 또 사건이 터졌다. 한 포털에서 시작된 세종대 신입생 환영회 사진은 이내 온/오프라인을 뜨겁게 뒤흔들었다. 사진 속의 남녀가 민망한 자세로 게임을 하고 있는 모습은 ‘신입생 환영회가 이렇게 변질되어도 좋은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세종대 신입생 환영회는 대학생들의 문란한 놀이 문화 이상의 것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한국 사회에 드리워져 있는 집단주의의 폐해가 여과 없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문화 비교 심리학적 연구를 전개했던 학자 트리디안스는 집단주의를 지닌 성원들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밀접하게 연계된 개인들로 구성된 집단주의 체재 내에서는 집단이 부과하는 의무와 규범에 따라 동기화된다. 자연히 개인적 목표가 아닌 집단의 목표를 우선순위로 두며 다른 성원들과 갖는 연계성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커치바샤 역시 집단주의 성원의 유형을 내집단 성원들과 결합되려고 노력하는 ‘관계적 자기(relational self)’ 개념으로 표현했다. 여기에 이번 사건을 대입하면 성적 수치심을 느꼈던 것이 분명한데도 묵묵히 선배들의 강요에 따랐던 신입생들의 처지를 헤아릴 수 있다. 

새 구성원이 진입할 때 모든 집단은 견고한 유대감을 중시한다. 개별적인 개인들은 집단 내에서 공통된 가치관을 공유하며 하나로 묶이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새 구성원이 된 이들은 가장 어리고 약한 사람들이라 문제의식을 가져도 쉽게 저항할 수 없다. 집단 규범에 대해 이미 암묵적인 동의가 이루어진 상태이니 벌어지는 일들에 딴죽 걸기도 어렵다. 술 권하는 것이 당연해져버린 대학 사회에서 술을 못 마신다고 하면 ‘쟤 산통 깨네’라고 치부하는 모습과 꼭 같다. 기분은 나쁘지만 신입생 환영회의 흥을 깨지 않기 위해서라도, 또 괜히 이의를 제기해 다른 성원들로부터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가만히 있게 되는 것이다. 말 그대로 그들은 이미 ‘한 배’에 탔으므로.

도를 넘어선 신입생 환영회

집단주의에 매몰되는 것은 피해자뿐만이 아니다. 가해자 격인 선배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오랫동안 그래왔던 전통이라는 변명이 먼저 튀어나올 수 있는 것은 본인이 속한 집단만큼은 도덕적 잣대라는 메스를 들이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을 주도한 사람이 이렇게 잘못에 무감한데 다른 성원들은 어떠랴. 제 허물을 반성하고 굳어진 인습을 고치려고 노력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리 없다. 어쩌면 내부 비판을 하기에 가장 불리한 입장인 것은 신입생들이 아닌, 재학생 선배일지도 모른다. 한 집단에 속해 있다는 공동체 의식은 의외로 많은 것을 못 보고 못 듣게 한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태도는 비판적인 개인을 무력하게 만들고, 집단이라는 울타리 안의 달콤함을 선호하게 한다. 집단 내에서 일어나는 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운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겨우 정신을 차려 맞는 말을 하려고 해도, ‘누구 좋으라고 이걸 알려?’라든지 ‘이렇게 굳어진 걸 어떻게 바꾸자고?’라는 공격만 돌아올 것이 뻔하다.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자극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었던 것도 집단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면 무리일까. 남녀가 서로 뒤엉킨 채 게임하는 것이 ‘전통’이라고 변명하는 고학번 선배의 부실한 해명은 차치하더라도, 한 무리 안에 속해 있다는 안도감이 불필요한 용기를 샘솟게 했는지도 모른다. 마치 중고등학생들이 일진 놀이를 하듯 특정 집단만의 고유한 문화나 분위기가 자리잡혀 있으면 남들이 보기에 껄끄러운 것이라도 ‘서슴없이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말이다. 

한국갤럽의 통계에 따르면 93.0%의 한국인에게 충실성은 중요한 가치관이다. 88.1%의 한국인은 단합이 잘 되는 것을 사회적으로 미덕이라고 생각하며, 78.6%의 한국인은 개인 이익과 집단 이익이 상충할 경우 집단 이익을 우선시한다고 한다(2003년 기준). 8년 전 통계라 지금은 결과가 많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주목할 만한 변화는 나타나지 않는 듯하다. 매년 대학 음주 사고 소식이 이어졌던 것을 보면. 세종대 신입생 환영회 사건은 집단주의의 폐해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였다. 단순히 특정 대학의 개별 사안으로 넘겨짚을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박혀 있는 잘못된 집단주의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