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시간이 가면갈수록 대학생들 인성이나 의식수준은 밑바닥으로만 내려가니 원..
맨날 남탓,정치탓,사회탓,어른탓밖에 할줄 모르고 ㅉㅉ

(‘대학생 MT서 또 음주 후 사망’ 기사, 4월 10일 네이트 베플)
대학생이 MT에서 음주 후 사망 했다는 기사에 대한 베플이다. 이에 대해 베플은 20대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으로 가득했다. 옛날과는 달리 대학생들의 의식 수준이 많이 내려 갔다는 것이다. 심지어 대학생을 너무 많이 뽑아서 자격 없는 이들이 대학에 들어가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힘을 얻었다.

나는 올해로 27살이다. 빠른 친구들은 이미 취직을 했지만 아직도 반수가 대학생이고 그 반 정도는 백수이다. 그래서 나는 대학교에 다니고 있음에도 20대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저 제 때 날아오르지 못한 불량품이라고 여길 뿐이다. 이 미묘한 위치 때문에 나는 위의 베플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었다. 정확히 중간 세대에 자리 잡은 나는 선배들의 축 쳐진 어깨와 후배들의 패기가 겹쳐 보이며 이 납득할 수 없는 현상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04학번, 신입생으로서 맞이한 대학교의 분위기는 생각과는 달랐다. 학내에는 생활과 괴리된 90년대 운동권의 지적 허영심이 막을 내리며, 정치도 권리도 포기한 세대들이 바통을 이어 받고 있었다. 운동권의 추방을 권리의 포기와 착각하는 그들은 내가 보기에도 ‘희망이 없는 세대’였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인생이 논스톱일 거라는 환상 속에 대학에 들어와서, 결국엔 도서관에 자리 펴고 앉은 그들의 뒷통수에 대고 사회는 ‘낭만이 없다’, ‘더불어 살줄 모른다.’ 며 쓴 소리를 아낄 줄 몰랐다. 그럴수록 그들은 어두운 독서실로 숨어들었다. 선배들이 남겨준 것이라곤 술 밖에 없어서, 그 더러운 술 문화 밖에 없어서 술로 스트레스를 풀다 보면 돌아오는 것은 다시 비난이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몇 년 후 입사한 그들은 “요즘 애들은 술도 마실 줄 몰라” 라며 예의 그 ‘낭만이 없다’, ‘더불어 살줄 모른다.’ 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희망 없는 세대에게 희망을 준 것은

군부 독재가 지배하던 시절, 우리네 선배들에게는 희망이 없었다. 때리고 누르고 억압하고 결국엔 숨통을 막아도 저항해 봤지만 그네들에겐 결국 희망이 없었다. 작은 승리 끝에는 반드시 숨이 턱 막힐 듯한 구체제의 복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시절을 살아 온 선배들에게 지금의 20대는 답답하게만 보일 것이다. 사회가 열리고 기회가 열려서 손만 뻗으면 닿을 자리에 자유가 있는데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분명히 바빴다. 하루 종일 복사만 하는 사람에게도 수준 높은 영어 성적을 요구하는 편집증적인 사회에서 낙오되지 않으려면, 아니 조금 더 천천히 낙오 되려면 이를 악물고 달려야 했다. 중산층 이하 가정의 자식들이 그들의 아버지, 어머니보다 잘 사는 것이 힘들어진 대한민국에서 우리의 현실은 정치가 아니라 하루하루 살아가는 문제였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정치에 대한 관심을 잃은 건 그 때문이 아니었다. 우리가 정치에 관심을 잃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희망을 잃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소통의 주된 통로로 사용한 20대에게 현실은 벽과 같았다. 진리, 교과서적인 논리, 정의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사회는 진리를 파묻고 교과서 속 행간의 논리에 미친개처럼 집요하게 매달렸으며, 정의라는 이름을 내걸고 앞장서서 불의를 행했다. 인터넷은 이런 현실을 더 절망적으로 보여줄 뿐이었다. 결국엔, 그것이 젊음의 치기이거나 이념의 표현, 혹은 무지한 좀비들의 행진일지라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국가의 앞날을 제 손으로 결정 했다는 희열이 지난 2010년 ‘멸문지화’의 허무함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나름대로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눈치 보며 살아라.” 라는 말을 마음속에 새기고 살아야만 했다.

그렇다, 우리는 희망이 없는 세대이다. 부모가 자식 오냐 오냐 키워서 버릇이 없으며, 책보다 예능 프로그램을 더 좋아하고 정치인의 비리보다 연예인 스캔들에 열을 올린다. 그러나 너나 할 것 없이 20대의 자립심을 운운하면서 각자 제 입맛대로 20대를 제련하려 드는 것은 모순이다. 진보 진영에서는 20대에게 심장이 없다며 헛바람을 불어 넣고 보수 진영에서는 20대에게 제 생각이 없다며 부두교 제사장 노릇을 하려 든다. 

20대에게 바라는 것이 제 목소리로 사회에 참여 했으면 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저 시키는 대로 행동했으면 하는 것인가?

20대가 선배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딱 한 가지이다. 믿고 따를 수 있는 든든한 등대가 되어주는 것. 사회는 만만치 않다,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며 축 쳐진 어깨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알 듯 모를 듯 미소 지어주는 것. 그리고 제 길에서 성실히 모범을 보이며, 후배들에게 한 마디 하기보다 스스로 먼저 행동하는 선배들의 뒷모습을 보고 배울 것이다. 너나 할 것 없이 20대를 성토하는 지금의 분위기는 졸업 후 제 앞 가림을 못해 울적한 마음에 소주 한 병 마시고 문득 동아리 방을 찾아가 까마득한 후배들에게 ‘빠따질’ 을 하는 개망나니 선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신은 왜 우리가 물려 받을 이 사회를 바꾸지 못하나? 

베풀단신

경상도가 경상도를 비판하고 전라도가 전라도를 비판하고

뉴라이트, 김장훈 공개 비난 “日 안 돕겠다고 자랑, 영향력 행사” 라는 기사의 베플이다. 뉴라이트 전국연합은 지난 달 21일 홈페이지를 통해 역사적 반성을 모르는 일본을 돕지 않겠다고 선언한 가수 김장훈 씨를 공개 비난하고 나섰다. 친일, 보수가 아니라 정당한 기존 보수 세력의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뉴라이트의 취지상 이번 성명은 적절치 못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이에 한 네티즌이 ‘이런 노골적인 자기 방어와 변명을 경계하며 경상도가 경상도를 비판하고 전라도가 전라도를 비판하고 한나라가 한나라는 비판하고 민주당이 민주당을 비판하고 조선일보가 조선일보를 비판하고 한겨레가 한겨레를 비판하고 기독교가 기독교를 비판하고 대기업이 대기업을 비판할 때 누구도 감히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초강대국을 건설하게 될것이라 생각합니다. 자책과 자멸감이 아닌 자기 혁신과 자기성찰이 없으면 죽겠다는 각오가 필요한 때라 생각합니다.’ 라는 베플을 남겨 큰 지지를 받았다.

이런건 우리나라가 성진국이지

지난해 ‘스폰서 검사’ 의혹의 못다한 이야기를 담은 ‘검사와 스폰서, 묻어버린 진실’ 이라는 책이 발매 되었다. 이를 소개하는 ‘모델 동원해 검사들 원정 접대’ 라는 자극적인 제호의 기사에 달린 베플. 선진국을 지향하지만 성(性)진국에 머무를 수 밖에 없는 우리나라의 씁쓸한 현실을 꼬집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도쿄임 도쿄.

도쿄 망언으로 유명한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가 4선에 성공했다. 도툐에 대한 망언 뿐 아니라 이번 대지진에서도 실의에 빠진 자국민을 향해 망언을 퍼부은 인사가 도지사가 되자 ‘도쿄도 시민들이 저 사람을 도지사로 다시 뽑아 줬다는 것 자체가 일본인들의 이중성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를 보여주는 것’ 이라는 댓글이 베플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일본은 국제 사회를 향한 정치권의 잦은 도발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시민 의식이 투철하고 양심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극우 정치인들이 권력을 잡을 수 있는 것은 결국 겉으로는 고상하고 양심적인 척 하면서 아직도 속으로는 제국주의적 속내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나라가 되어버렸습니다.

카이스트 학생 자살 문제로 교육 문제가 불거지면서 100%영어 수업에 의문이 제기 되고 있다.카이스트 출신 기자의 생생한 르포로 탄생한 이 기사는 심지어 우리나라와 어순이 비슷한 일본어조차도 비효율을 감수해 가면서 영어로 배운다고 꼬집고 있다. 이에 한 네티즌은 비합리적인 교육이 학생들을 궁지로 몰아넣는 말도 안 되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면서 ‘영어에 있어서는 카이스트만 문제가 아니예요. 동사무소 직원이 되려고 해도 죽어라 영어 공부 해야 하면서도 정작 외교부는 전문 인력이 없어서 번역이 서툴고 외국에 어마어마한 돈 내가면서 수백만 명이 영어 시험 보면서 정작 영어 한 마디 제대로 못하고 혀수술 받아가며 아이들에게 조기 영어 교육 시켜도 정작 한국말은 욕 밖에 모르고 높으신 분은 어륀지라는 말 따위나 주워 삼기는 말도 안 되는 나라가 되어버렸습니다’ 라는 베플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