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아지트의 의미를 생각해보자면 ‘당신과 분리된 나만의’ 혹은 ‘나와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인’이라는 말이 생략되어있는 듯하다. 타인과 섞이지 않을 수 있는 온전한 나만의 공간을 우리는 흔히 아지트라 부른다. 아지트에서는 ‘나’의 모든 것을 풀어놓고 있는다. 이 안에는 편견도 타인의 시선도 없고, 무시나 배제도 없다. 

  ‘동시대인’이라는 것은 뭘까? 단순하게 정의하자면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럼 지금도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는 나와 오바마는 동시대인일까? 사실상 오바마와 나는 동시대인이라는 것에 크게 공감할 수 없다.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건 공유하는 가치나 삶의 의미 그리고 행동 양식이 비슷함을 뜻한다. 단순히 시간을 공유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친밀감이나 연대의식 속에서 ‘이 사람과 나는 동시대인이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동시대인은 아지트의 구성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들어 공유하는 가치는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다. 사회가 세분화되어 까닭에, 가장 중요하다 생각하는 가치는 모두 자신의 위치에 따른 개별적 기준에 의해 세워진 것이라서 공통적으로 공유한다고 보기 어려워졌다. 사회 발전 방향에 대해 진보니 보수니 하는 자신의 이념을 내세우기에 급급하며, ‘인간애’라는 공통 가치를 지니기보다는 이성애, 동성애를 구분 지어 일방을 멸시한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점점 자신의 ‘아지트’로 숨기 시작했다. 어느 것 하나 자신에게 상처 줄 것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하루히코라는 청년이 사오리를 찾아오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그는 히미코의 연인이고, 그녀는 히미코의 딸이다. 하루히코는 사오리에게 메종 드 히미코에서 일해줄 것을 부탁한다. 그러면서 사오리는 자신의 아버지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게이인 아버지가 자신을 버렸다는 것에 분노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그를 이해하게 된다. 메종 드 히미코에 모인 사람들의 아픔에 점차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되고, 우정이 사랑이 되어 사오리는 이들을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 메종 드 히미코(이하 히미코)는 아지트이다. 양로원이지만 흔히 말하는 ‘일반’들이 모인 곳이 아닌 성적 소수자들이 모인 곳이다. 남성이지만 남성을 좋아하고, 여성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이 아지트의 구성원이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그들이 가진 가치와 행동 양식을 공유하면서, 자신들에게 상처를 주는 사회를 등진 채로 함께 살아간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루비(히미코의 노인 중 한 명)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히미코에서 간병을 하게 된다면 자금문제로 히미코를 더 이상 운영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루비의 아들에게 보낸다. 아들이 아버지가 게이임을 알게 된다면 분명 다시 양로원으로 데려올 것이다. 아들이 마음을 열고 아버지를 데리러 오려는 때엔 이미 루비는 죽고 없을 것이다. 루비가 혼자 쓸쓸히 죽는 것이 마음 아프다고 얘기한 것에 대해 사오리는 가족을 버리고 혼자 음지에 와서 자신의 행복만을 위해 살았던 사람이 받는 벌이라고 말한다. 그걸 아픔을 왜 다시 자식에게 떠넘기냐며, 그 자식이 받을 상처를 생각해본 적 있냐고 반문한다. 본인들이 마음 편하자고 보내는 것 아니냐 말한다. 그리고 하루히코가 말한다. “넌 상관없잖아. 여기는 게이의 집이야. 게이가 행복해지기 위한 곳이라고.”

  이처럼 동시대인(메종 드 히미코의 사람들)들은 자기 보호를 위해 ‘메종 드 히미코’라는 아지트에 모여 산다. 서로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들끼리. 세상에서 무언가를 하려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끼리 모여 있으면서 서로를 위로하며, 위로받으며 살아가려 한다. 히미코의 삶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가 가진 직업은 게이바의 마담. 직업에 귀천은 없다지만, 히미코는 사람들이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 직업을 가졌다. 사람들의 편견에 둘러싸인 성적 소수자라는 자신의 모습을 버리고 아이의 ‘아빠’로, 아내의 ‘남편’으로 살아가려 가정을 꾸렸지만, 이내 그곳에서 도망쳐 나온다. 그리고는 메종 드 히미코라는 그의 아지트를 만든 것이다. 

  더 이상 사회로부터 상처받지 않기 위해 숨어 살다시피 하지만, 모든 사람을 배척하는 것은 아니다. 공유하는 가치가 생겼을 때는 기꺼이 이들을 자신의 아지트로 불러온다. 사오리도, “호모! 변태!” 라고 욕하던 중학생도 이들과 동시대인이 아니었지만. 성적 소수자들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대함으로써 공통 가치를 공유하는 동시대인이 될 수 있었다. 


  메종 드 히미코는 단순한 의미의 영화 속 장치가 아니다. 우리 사회 속에도 존재하는, 사실은 내가 살고 있는 사회일 수 있다. 게이들이 자주 가는 곳이라는 물리적 공간 개념의 아지트가 아니더라도, 개인의 심중에 ‘나와 다른 그들’이라 규정지어버리는 것이 바로 의식 속의 아지트이다. 공동체가 사라지고 개개인의 아지트만 남아있는 사회를 긍정적으로 보아야 할지 부정적으로 보아야 할지는 모르겠다. 공통의 가치를 잃고 분열된 사회가 바람직한 것 일까하는 의문이 들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아지트는 유일한 자신의 휴식처이자 위로받을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영화 <메종 드 히미코>를 통해 ‘아지트화’ 되어버린 우리 사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