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윤상이라는 사람이 누군지는 잘 안다. 10대들은 아이유가 윤상에 대해서 언급하기 때문에, 그가 아이유에게 곡을 줬기 때문에 이름은 들어 봤을 것이다. 20대들은 S.E.S.가 불렀던 달리기의 작곡가로 알고 있을 것이고, 3~40대들은 90년대의 아이돌 스타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윤상의 음악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른다. 아이유에게 줬던 ‘나만 몰랐던 이야기’ 처럼 윤상표 발라드나, 보랏빛 향기처럼 가볍고 발랄한 댄스만이 그의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하지만 그를 단순히 90년대에 잘나갔던 대중가수, 대중음악 작곡가로만 평가 한다면 왠지 아쉽다. 마침 4월 12일에 윤상의 앨범을 전부 모아놓은 박스셋이 발매되었는데, 이런 시점에서 윤상에 대해서 재조명 해봐도 좋을 것 같다.

윤상 음악의 시작


윤상은 91년 데뷔 당시부터 톱스타의 반열에 올랐고, 그 이후에도 한동안은 아이돌 스타로 여겨지게 된다. 윤상이 처음에 기존의 80년대 가수들이나 뮤지션들과 확실히 구분되어지고, 독창성을 가질 수 있었던 부분은 ‘세련됨’ 이라고 본다. 지적이고 도시적인 외모와, 중저음의 부드러운 목소리. 그리고 회고적이면서도 묘하게 명료한 느낌의 곡들이 그러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특히 그의 곡들은 사랑을 이야기 하면서도 유치한, 또는 과잉된 감정을 노래하지 않았고, 전형적인 발라드이면서도 좋은 편곡으로 인해 촌스럽지 않았다. 

윤상이 작곡한 곡 중에 대표적인 발라드를 들자면 윤상의 ‘이별의 그늘’, ‘가려진 시간 사이로’ 김민우의 ‘입영열차 안에서’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팀의 ‘사랑합니다’ 등이다. 이 곡들들 들어보면 공통적으로 상당히 통속적인 느낌이고 신파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러한 점이 음악 감상에 전혀 방해가 안 되고, 오히려 군더더기 없이 감정 선을 잘 살려주고 있다. 물론 작사의 힘도 크지만, 기본적으로 윤상의 작곡, 편곡 능력이 없었다면 이렇게 좋은 발라드가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물론 90년대 초 윤상만 놓고 보자면 이것이 80년대 변진섭으로 대표되는 전형적인 발라드의 답습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윤상은 단순히 발라드 가수로서 머물지 않았고, 한 발자국 더 나아가려는 시도를 한다.


전자음악과의 조우

윤상이 발라드에만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선배 김현식에게 ‘여름밤의 꿈’ 이라는 발라드를 주면서 음악계에 진출하긴 했지만, 강수지에게 준 ‘보라빛 향기’나, 윤상의 ‘한 걸음 더’ 라는 노래를 들어보면 그가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곡을 잘 쓸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 보였다.

윤상의 본격적인 변화는 93년도에 나온 2집-part2에서 일어나게 되는데, 신디사이저의 활용이 늘어나고, 다양하고 새로운 사운드를 많이 넣는 시도를 하게 된다. 노영심과 같이 부른 ‘이별 없던 세상’ 이라는 곡을 들어보면 알 수 있지만, 윤상의 신스팝(신디사이저가 주가 되는 팝음악)에 대한 시도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윤상은 군복무를 마치고, ‘Renacimiento’, ‘Insensible’ 두 장의 비정규 앨범과, 신해철과 프로젝트를 결성한 ‘No Dance’로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세계를 만들어나가는데, 이 세장의 앨범 중심에는 80년대에 유행했던 신스팝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윤상은 댄서블하거나 오감을 자극시키는 류의 강한 전자음악을 추구하기 보다는, 지극히 감성적이고 편안한 느낌의 전자음악을 하려고 했다. 이러한 경향은 2000년에 나왔던 3집 ‘Cliche’에서 완성되는 느낌이다. 윤상의 기존의 스타일과, 현대적인 신스팝을 끊임없이 시도해왔던 실험이 잘 융합되면서 그는 특이하지만 특별한 사운드를 기반으로 좋은 곡을 만들어내게 된다. 윤상은 3집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거의 완벽하게 구축했다.

그 이후에도 물론 그는 신스팝을 기반으로 한 전자음악을 자신의 음악의 요체로 삼는 듯하고. 근래에는 모텟이라는 프로젝트를 결성해서 굉장히 실험적인 사운드도 시도해보고 있는 중이다.


월드뮤직에 대한 애정

윤상은 월드뮤직 (영,미 문화권의 영향에서 벗어난, 동양이나 아프리카 민중들의 독특한 정서가 담긴 음악을 일컫는다.)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보인다. 아마도 새로운 소리에 대한 고민에 의해서 관심이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아직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보사노바나 탱고 같은 장르에 대해서 라디오 디제이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또한 자신의 음악에도 제3세계의 음악적 요소를 도입한다.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 쪽의 전통악기 역시 자신의 음악에 사용하면서 풍부한 소리를 만들어낸다.

3집 ‘Cliche’ 앨범부터 탱고 리듬을 쓰거나, 외국 민속 밴드가 참여하는 등 본격적으로 월드뮤직을 자신의 음악에 녹여내기 시작하더니, 2002년도에 나온 4집 ‘이사’ 앨범은 월드뮤직이 전면에 드러나 있다. 타이틀곡인 ‘이사’부터 보사노바의 느낌이 강하다. 지금이야 홍대 클럽 공연에서 보사노바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그 당시에는 매우 독특했다. 이 앨범에는 ‘Ni Volas Interparoli’ 라는 곡이 있는데, 이 곡은 세계 공용어로 거론된 에스페란토어에 대한 내용으로서 여러 나라의 뮤지션들을 모아놓고 작업한 의미 있는 곡이다. 비록 현재 세계 공용어는 쓰이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윤상은 음악을 매개체로 해서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을 시도하려고 하는듯하다.

최근에 가인의 ‘돌이킬수 없는’ 이라는 노래가 굉장히 새롭고 잘 만들어졌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역시 윤상의 작업물 이었다. 탱고 사운드를 적절히 조합하고, 그것을 대중음악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은 확실한 윤상의 장기이다.

좋은 음악을 듣고 싶다면 윤상을 들어라
        
윤상은 대중적인 뮤지션이지만 주류음악에서 전자음을 본격적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선구적이었으며, 월드뮤직을 배워서 자신의 음악에 잘 녹여냈다는 점에서는 실험적인 태도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남들보다 더 많이 공부하고, 소리에 대한 고민을 남들보다 더 많이 한 것이 그를 20년이상 가요계에서 좋은 음악을 만들게 한 원동력일 것이다.

2003년도에 나온 5집 ‘어떤사람’ 과 미국에서 음악 공부를 하면서 만든 최근작, 6집 ‘그땐 몰랐던 일들’ 도 전자음악+월드뮤직의 절묘한 조합, 그리고 윤상 특유의 독특한 사운드로 곡을 잘 채워가면서 소위 ‘웰메이드’ 앨범을 만들어냈다. 그의 앨범에는 사운드의 풍부함, 몇 년이 지나도 촌스럽지 않는 세련된 감성,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깊게 배어 있다.    

‘나는 가수다’에 대한 여론의 반응을 보면 ‘좋은 가수’가 부르는 노래에 대한 대중들의 열망이 꽤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좋은 음악’에 대한 열망도 높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주류 음악시장에서 항상 소비되는 아이돌 댄스음악에 질려서, 음악 듣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다면 윤상을 들으라고 기꺼이 권하고 싶다. 윤상의 음악을 안 들어보신 분이라면 이제까지 들을 수 없었던 새로운 느낌의 음악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윤상은 다양한 사운드 구성을 만들어내고, 만들어 낸 사운드를 적재적소에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하는 뮤지션이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그에게 어떤 음악이 나올까 궁금하기만 하다. 그도 어느덧 20년차가 넘은 뮤지션이라 박스셋이 발매되었고, 아이유에게 아빠뻘이라는 이야기도 듣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의 ‘좋은 음악’은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