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부터 매주 화요일에 연재될 ‘문학 속의 세상’은 시, 소설, 수필, 희곡 등 문학에 담겨져 있는 완결성 있는 플롯 내의 우리네 삶을 심도있게 생각해보고, 공감을 얻고, 특정 시사에 대해 사회적인 관심을 촉구하려고 합니다.

“강인호가 자신의 승용차에 간단한 이삿짐을 싣고 서울을 출발할 무렵 무진시에는 해무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거대한 흰 짐승이 바다로부터 솟아올라 축축하고 미세한 털로 뒤덮인 발을 성큼 성큼 내딛듯 안개는 그렇게 육지로 진군해왔다. 안개의 품에 빨려 들어간 사물들은 이미 패색을 감지한 병사들처럼 미세한 수증기 알갱이에 윤곽을 내어주며 스스로를 흐리멍덩하게 만들어버렸다. 바닷가 절벽 위에 선 사층짜리 석조건물 자애학원도 그렇게 안개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일층 식당에서 뻗어 나와 반짝이는 노란 불빛이 마요네즈 빛깔로 희미해질 때쯤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려왔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무진’이란 공간적 배경이 소설을 친근하게 만든다. 이는 공지영 작가의 소설, <도가니> 시작 부분이다.

‘무진’이라는 이름을 듣고 눈치 챘을 수도 있겠다. 고등학교 때 누구나 한 번쯤은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을 읽어보거나 들어봤을 것이다. 안개 자욱한 무진에서 벌어졌던 그 이야기가 본질은 다르지만 <도가니>에서도 반복된다. <도가니>의주인공인 강인호는 <무진기행>과 얽힌 자신의 일화를 회상하며 소설은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무진기행>의 ‘나’가 아내의 권유로 무진에 쉬러 내려갔듯, <도가니>의 강인호 역시 자신의 의지가 아닌 자신이 처한 상황 상 아내의 권유로 무진으로 내려오게 된다. 경기 침체로 사업은 망한 강인호, 그 옛날의 교원 자격증을 생각해 낸 생활력 강한 아내는 지인의 친인척이 이사장으로 있는 장애인 학교 ‘자애학원’에 돈 5,000만원으로 남편을 채용시킨다. 그렇게 소설은 시작된다.



연이은 ‘자애학원’ 학생들의 석연찮은 죽음에 대해 경찰의 유야무야되는 수사, 이를 의심하게된 주변 깨어있는 사람들의 진실 규명. 그 결과 원생들이 장애우라는 약점을 이용하여 다년간 학원장 및 행정실장의 성폭행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밝혀내게 되고, 이들은 돈과 권력 에 맞서서 치열하고 처절한 투쟁을 하게 된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듯 한 그들의 투쟁은 나날이 힘겨워 지기만 하고, 그 사이에서 강인호는 뜨거운 가슴과 현실적인 문제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고민하게 된다. 그에겐 지켜야 할 이상뿐만 아니라 챙겨야 할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신문에서 읽어 봤음직한 내용이자 언젠가 방영된 드라마에서 본 듯한 줄거리가 소설이란 틀 안에서 작가에 의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다. 작가는 무엇을 얘기하고 싶었을까?

소설 속에는 한 없이 강한 강자와 핍박 받고 무시당하는 약자가 존재한다. 자라는 아이를 가르치는 교사가 면접시험이 아닌 지인의 소개로 5,000만원이라는 돈을 주고 교직에 몸을 담게 되는 주인공의 씁쓸한 모습. 학원장 형제와 기숙사 사감이 원생들을 성폭행 했음에도 성폭행 피해자가 장애우라는 사실이 증거를 미덥지 못 하게 한다며 이미 뒷돈을 받아 챙긴 경찰. 밖으로는 장애 아동들을 위한 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음을 표방하고 도덕적인 체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자신의 학교에 다니는 원생들을 사흘이 멀다 하고 성폭행하고 끝까지 자신들의 혐의를 부인하며 장애우들이 자신들을 무고한다고 발뺌하는 학원장 형제. 전관예우 원칙에 따라 검사에서 갓 개업한 변호사는 첫 재판에선 반드시 승소하게끔 하는 관행을 이용해 한 몫 챙기는 전직 검사이자 현직 변호사. 하나 같이 위선적이고 비도덕적이며 치졸하고 부패한 모습이다. 소설이기 때문에 악인이 더할나위 없이 악랄한 모습으로 묘사되었겠지만 이와 비슷한 모습들이 현실에도 존재한다.

소설 속의 세상도, 현실의 세상도 ‘정의는 이기고, 진실은 언젠가 밝혀진다.’라는 진리가 반드시 통용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얼마전 지난 해 10월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SK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던 탱크로리 기사를 임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야구방망이 등으로 구타하고 ‘맷값’으로 탱크로리 기사에게 2000만 원을 지급했던 최철원 전 M&M대표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피해자와 합의한 점”, “초범인 점”, “그동안 구속 상태였더 점” 등을 고려한 것이란 선고 이유를 밝혔다. 사법부가 살기위해 투쟁하다 구속된 노동자들은 빠짐없이 실형을 선고받고 DNA검사까지 하면서, 재벌 2세의 무자비한 폭행과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돈을 준 것은 그냥 눈 감아준 것이다. 이렇듯 경제적인, 정치적인 이유로 개인이 법 앞에서 차별을 받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소설 속 약자와 강자의 대립은 조금 과장되게 얘기하면 대한민국 사회의 현실이라 볼 수 있다. 기초생활 수급대상자들이 겨울을 나는데 가장 절실하고 필요한 연탄 보조금을 현 정부에서는 들어서자마자 폐지했고 현재까지 보조금은 0원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각종 의혹을 덮기 위해 그들도 공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터뜨려 본인들의 치부를 최소화 시키려고 한다. 대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인 등록금 마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의 대통령은 반값 등록금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음에도 취임 후 4년이 접어드는 현재까지도 여전히 인상되었으면 되었지 결코 인하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부자들은 날로 더 돈을 모으게 되고, 빈자들은 오르는 물가에 허덕이며 살아가고 있다. 과연 이러한 현실이 바람직한 것인가?

“진실을 결코 개들에게 던져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봤자 변할 것이 없고 마음만 상한다는 작품 속 누군가의 회의적인 만류에 대한, 어느 약자의 대답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진실을 규명하지 못한 채 또는 왜곡된 사실 속에서 누군가의 횡포 속에 고통으로 신음하며 도움을 원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외면하지 말자, 해결은 못 하더라도 지속적 관심을 갖자. The pleasure of mighty are the tears of the poor. 라는 영어 속담이 있다. ‘강자의 쾌락은 약자의 눈물’이라는 뜻이다. 강자의 웃음이 약자에겐 눈물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우리 사회의 이러한 모순을 깨트리기 위해서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우리의 관심과 노력이 절실하다. 어떤 다른 기준으로 죄와 벌을 나누는 것이 아닌, 모두가 법 앞에서 평등한 대한민국이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