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서 너무 행복해요” 한 때 모 냉장고 광고로 유명해진 한 마디다. 광고 속 여배우는 정말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냉장고를 안고 있었다. 그 후 이 광고는 여성의 성역할을 ‘가정주부’ 로 규정짓는다며 페미니즘 진영의 비판을 받았다. 분명히 냉장고와 ‘여자라서 행복하다’ 는 말이 광고 속에서 연관지어지는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럼 여자는 무엇으로 행복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떠오르는 게 사실이다. 특히 결혼과 출산 후, ‘어머니’로서가 아닌 ‘여성’ 으로서, 여자는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가. 아니, 지금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자의 행복은 가능한 일이기나 한 것일까.

여기까지 말했을 때, 반문을 제기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남자에겐 남자로서의 삶이 있고, 또 여자에겐 여자로서의 삶이 있다고. 그래서 남자가 행복할 수 있는 것처럼, 여자도 행복할 수 있다고. 가부장제 사회란 이미 과거의 유물이며, 이미 여성상위시대가 도래해 오히려 ‘남자의 행복’ 이 더 어려운 사회라고.

당신은 ‘남자라서 행복하다’ 고 외치는 누군가일지도, 또는 ‘남녀는 이미 평등해’ 라고 생각하는 누군가일지도, 아니면 ‘평등한 세상을 위하여!’를 외치는 여성주의자일지도 모른다. 당신이 그 누가 되었든, 당신에게 게르드 브란튼베르그의 「이갈리아의 딸들」은 하나의 충격으로 다가온다.

충격과 공포의 세계 속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충격과 공포의 세계, 이갈리아

이 책이 그리는 세계는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이다. 특히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고 생각하는 몇몇 사람들에게는 끔찍할 정도다. ‘이갈리아’는 평등주의 egalitarian 과 유토피아 utopia 의 합성어지만, 절대 평등하지 않고 또한 유토피아적인 나라도 아니다. 오히려 이 소설은 올리버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처럼 반유토피아를 다룬 소설이다. 이 소설이 충격적인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180도, 오 그야말로 180도 뒤집어 놓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사회에 이미 길들여져버린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며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책 앞쪽의 용어설명을 보면 이해가 쉬우리라.

움(wom) 1.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 이라고 분류되는 성의 인간. 2. 어떤 성의 인간이든 인간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예를 들어, spokeswom(대변인), seawom(뱃사람) 3. 일반적인 인간을 움으로 지칭할 수 있다.
맨움(manwom)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 이라고 분류되는 성의 인간.

눈치챘는가? 그렇다. 이 책은 여성과 남성이라는 우리 사회의 성역할을 180도 바꾸어버린다. 이갈리아라는 나라에서 국가의 주요 의사결정은 움(여성)에게 맡겨진다. 형식적으로 맨움(남성)에게도 직업의 자유가 존재하지만, 그것은 쉽지 않다. 주인공 페트로니우스(맨움)는 잠수부가 되고 싶어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뱃사람의 위업에 대한 모험 이야기는 이제 그만 읽고 대신 소년들을 위한 책만 보도록 해라.” 라며 그의 꿈을 무시한다. 그뿐이 아니다.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미의 기준마저 뒤집어 버리는데, 이 책에 나오는 대사를 빌리자면 “아빠는 키가 작고 뚱뚱하고 다리도 짧고 어깨도 좁고 곱슬거리는 머리에 얼굴도 예쁘잖아요” 란다. 남자라면 180cm는 되야 하고, 복근도 좀 있어야지라는 현대의 미적관념에 펀치를 날린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남자들이 격분할 사실, 이갈리아에서는 맨움은 페호라는 것을 차야한다. 옛날 유럽의 정조대의 남성판이라 할 만한 페호는, 페니스를 받치기 위해 맨움들이 입어야 할 옷이다. 이런 눈에 띄는 설정들이 모여, 이 소설은 현실에서 가장 멀면서도 한편으로는 현실을 가장 잘 반영하는 소설이 된다. 매우 난감하지만 움(wom)을 현실사회의 남성(man)에, 맨움(manwom)을 여성(woman)에 대입시키면 소설내용의

맨움들은 이런 걸 입고 돌아다녀야 한다. 그야말로 지쟈스 크라이스트다!
80%가 이해된다!

너도 한번 당해봐! 

우리는 종종 많은 것을 당연시한다. 개중에는 ‘집안일은 여성, 바깥일은 남성’ 등 점차 고쳐지고 있는 편견도 있다. 그러나 ‘아버지의 어머니는 할머니, 어머니의 어머니는 할머니’ 등 뿌리박힌 없어지지 않는 편견들도 많다. 이 책은 이런 뿌리깊은 편견들을 여지없이 고발한다. 마치 우리 남성들에게 ‘너도 한번 당해봐!’ 라고 말하듯이.

소설은 주인공 페트로니우스가 성장하며 겪는 여러 이야기들, 그리고 그가 성장한 후 맨움해방주의 운동에 나서는 모습을 그린다. 그가 맨움으로서 겪는 여러 사건들은 우리 남자들을 웃을 수도 울 수도 없게 만든다. 그와 그 주변의 맨움들이 당하는 많은 일들이 현실 사회에서 여성들이 직면하는 문제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성폭행을 당해도 그의 장래에 지장이 있을지 모른다며 신고조차 꺼리는 부모 이야기, 성 행위시 자기의 쾌락만을 채운 뒤 그의 몸에서 내려가 버리는 움들, 말을 듣지 않자 폭력을 일삼으며 사랑을 강요하는 그의 여자친구. 가만히 돌아보면 우리 사회에서 여자들이 당하는 것과 같다. 능청맞게 ‘너도 당해보면 우리 고통을 알게 될거야’ 라는 듯 여남(女男)을 바꾸어 써버린 작가 덕분에, 우리는 그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에서 꼬집는 것은 위의 물리적 차별 뿐이 아니다. 이 책에서는 신 또한 여신(女神)이다. 서양인들이 ‘Oh my God’ 을 외치듯, 이 소설에서는 ‘도나 제시카!’ 를 외친다. 또 앞에서 말했듯 사람은 human 이 아닌 huwom 으로 번역된다. 또 한 가지, 피임의 책임은 맨움에게 있다. 그리고 양육의 책임또한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당연시 해왔던 많은 언어적 관습이 뒤집히고, 우리가 당연히 여성이 해야할 것으로 생각하는 많은 일들이 이 책에선 ‘당연히 맨움이 해야 할일’ 이다. 우리가 뿌리 깊게 믿고 있던 성역할에 대한 신념들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읽을수록 무서운 책

놀라운 사실 하나. 이 책은 1975년에 처음 출판된 책이다. 그리고 한국에는 1996년도에 번역되었다. 1975년에 쓴 책이 현재도 유효하다는 사실은 경악스럽다. 한편으로는 이 측면에서 우리 사회의 진보가 더뎠다는 반증이라 안타깝기까지 하다. 이 책의 놀라운 점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수많은 패러디와 풍자로 점철되어 있는 이 책의 사건들은 상당수 실화이다. 동성애에 관한 문제도 다루고 있으며, 마르크스주의와 여성주의간의 대립도 다룬다. 또한 이 소설에서 ‘맨움해방주의’로 호명되는 운동을 통해 우리 사회의 ‘여성주의’ 역사도 다룬다. 이 책에서 일어나는 ‘맨움의 정계진출‘, ‘페호 불태우기’ 등의 사건은 실제 사건이다. 그리고 더욱더 무서운 점은 이 책이 이렇게 다양한 주제를 포괄함에도, 그리고 남성으로서 불편할 수밖에 없는 주제를 다뤘음에도, 재미있다는 점이다. 페미니즘의 ‘페미’ 자만 들어도 경련이 이는 뭇 남성들도 쉽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오늘 남자라서 너무 행복했던 당신에게, 그 행복에 취해 여성의 행복은 쳐다보지 못했던 당신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