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가장 끔찍한 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순진하게 살다가 뒤통수 맞는 인생이다. 아아, 무섭다. 나는 보다 철저한 속물이 되어야겠다.” <거룩한 속물들>의 첫 차례에 나오는 문구이다. 사회복지학과 학생인 주인공 기린은 난방도 되지 않는 골방에서 지내는 할머니를 보며 떠오르는 말이다. 이에서 알 수 있듯이 사회복지학과라는 봉사정신이 필요한 과의 학생이여도 세상의 속물적 이치에 따르기 마련이다. 세상은 속물스러운 영혼들의 세상이 되어버렸다.




주인공 기린은 친구인 명, 지은과 같은 부유한 사람들과 같이 어울리고 비싸 커피를 마시는 것과 같은 행동을 한다. 또한 부유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생활에 만족감을 느끼며 백화점에 명품을 쇼핑하러 다니는 것에 합류한다. 하지만 현실은 과외로 돈을 벌어야 살 수 있으며 비싼 옷들을 다시 환불해야 하는 실정이다. 가난한 것을 스스로 인정하지만 겉으로는 부유한척 행동함으로서 만족감을 얻고 의대생 남자친구를 사귀어 돈과 사모님 자리를 보장해 줄 수 있는 남자를 일종의 보험이라 생각한다.


기린은 일종의 ‘된장녀’를 표상한다. 현실은 가난하지만 비싼 명품을 갖고 자신을 과시하는 현대 여성의 모습을 희극적으로 묘사하였다. 비싼 명품의 옷을 사고 점심 식사 대신에 케이크와 비싼 커피를 마셨을 때가 가장 만족감을 느낀다는 기린 같은 여성에게는 자신의 가치를 드높일 수 있는 때가 과도한 소비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돌아간다고 해도 물질적인 것보다는 때로는 정신적인 것이 자신을 드높일 수 있다. 또한 자신의 위상을 드높이는 것보다 자신의 정신적인 성숙을 통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이 시대의 진정한 여성상 일 것이다.



기린의 친구인 명은 태생이 부잣집 딸이다. 오히려 너무 많이 가져서 다툼이 일어나는 명의 집안은 서로 곧 돌아가실 할아버지의 재산에 대한 관심이 많다. 명의 친척들은 조금이라도 더 재산을 가져가려고 불쌍해 보이도록 가난해 보이려고 노력한다. 명의 눈에는 이러한 속셈들이 다 보였고 그들이 유치해 보일 뿐이다. 그러나 명도 속물 이였다. 자신의 가족이 똑같이 분배 된 재산보다 조금 더 적게 받았을 때를 생각하니 욕심이 생기는 것 이였다. 우리 가족만은 똑같이 분배 된 재산보다 더 받기는 하되 덜 받지는 말아야 한다는 욕심이 생긴 것이다. 명은 의자에 멍하니 앉아있는 할아버지를 보며 옛날에 자신을 예뻐했으니 재산을 덜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물질적인 욕심에 대해 이기주의적인 모습을 띈다. 나는 적게 받으면 안 되고, 많이 받아야 한다. 이 얼마나 모순인가? 획일화된 잣대로 사람과 사회를 바라보니 사람들은 자기를 기준으로 모든 일을 판단하는 이기주의가 자연스러워졌다. 세상은 온통 이기심과 삭막함, 개인주의로 도배되었다. 돈이라는 단어가 일상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속물이 아닌 척 하는 것도 쉽지 않아졌다.



기린의 마지막 친구인 지은은 조건이 좋은 남자들을 사귀는 데 목을 맨다. 반도체 회사 직원, 어느 회사의 실장과 같은 조건이 좋은 남자들을 사귀는 데에 만족감을 느끼고 이러한 남자에게 걸 맞는 사람이 되려고 자기 자신에 대한 투자를 높인다. 하지만, 매번 사귄 남자들과 인스턴트식의 관계를 하고 질리기만 하는 지은은 한 사람에게 정착하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던 남자가 정작 자기 옆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 정확한 기준은 없다. 그러나 항상 사람들은 자신의 잣대에 사람들을 비추어 보려고 한다. 사람을 볼 때 결코 겉모습과 출신지로 판단하면 안 되는 것인데 사람들의 속내의 속물적인 관심사를 내보이기 마련이다. 학력, 아파트 평수, 자동차의 유무, 출신학교, 자산 가치 등의 잣대에 따라 평가되어 지고 있다. 한번 뿐인 인생에 모든 사람이 일정한 잣대에 맞춰 좋은 학교를 가고 대기업을 취직하며 살아야 할까? 세상의 잣대를 속물적인 관심사에 맞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추어야 한다.



제목에서부터 반어법으로 나타내었다. 거룩하다는 높고 위해하다, 속물은 세속적인 일에만 신경을 쓰는 사람을 가리킨다. 즉, 거룩한 속물들이란 높고 위대한 뜻이 세속적인 일에만 국한되어 있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높고 위대한 뜻이라 하면 자신의 꿈에 한걸음 다가가는 일이 될 것이지만 현 사회는 그렇지 못하다. 그들의 거룩한 일이란 결국은 과장 진급, 전문직 취업하기 등과 같은 개인적이고 속물근성인 일 뿐이다. 돈과 명예를 좇는 일이 속되다고, 속물이라고 손가락질을 하나 자신을 생각해보라. 앞에서는 가식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자기는 속물이 아니라고 하나, 속으로는 속된 사람을 부러워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마치 자신이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하면 불륜이라는 말처럼 속물근성이 나한테 있을 때는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티내기는 싫어하고 다른 사람들에게서 속물근성을 발견하게 되면 흉보거나 혐오스럽게 생각한다.


인생을 즐긴다는 것이 여느 광고처럼 한낱 명품을 두르고, 신고, 타고, 그 속에 살며 호사스러운 식사와 음주가무를 즐기는 것일까? 미친 듯이 공부하고 돈을 버는 인생이 현대인의 삶인가? 사회는 이렇게 미묘하게 속물을 권하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속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쉽지 않을지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좀 더 속물스러워 지라고 다그치는 세상에서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것보다는 타협하는 순진한 멍청이가 되는 것보다는 세상과 맞서는 자신의 일을 찾는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이 이 세상에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