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 재보선이 끝나고 나서, 각종 언론에서는 벌써부터 누가 대선후보에 나올 것인가 관심을 쏟고 있다. 한나라당 텃밭인 분당에서 당선된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승리와, 노무현의 적자를 표방했던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의 김해에서의 패배는 대선 판도에 많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나라당이 선거 패배로 인해서 전면 쇄신되는 가운데,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로 꼽히는 박근혜 전 대표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힘을 발휘 할 것인지도 초유의 관심사다.


최근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이 한나라당을 앞서 나가고 있다. 그러나 인물 지지율로 보자면 야권의 대선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인물들 지지율을 다 합해도, 여권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만큼의 인기가 없다. 박근혜 전 대표가 이미 30% 이상의 고정 지지층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야권 4당이 연립정부를 만들 계획을 세우고 야권단일 후보를 낸다고 하더라도,  박근혜 전 대표 한명을 이길지 미지수인 것이다.


그래서 인물이 더더욱 중요하다. 박근혜 전 대표가 나오든, 누가 나오든 간에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와 확실한 차이점을 보여주며, 자신의 인간적 매력도 백분 발산해 내야 한다.  무엇보다도 국민에게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주고 믿음을 얻어야 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예전에 위의 조건에 잘 들어맞았던 대선 후보가 있었는데, 바로 2002년 대선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어떤 점이 남달랐는가?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경력 자체가 신뢰 할 수 있는 인물이었는데, 일관되고 우직하게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인권변호사 출신에, 5공 청문회에서는 5공 비리에 관여한 자들에 대하여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면서 스타가 되었고, 삼당합당을 하려고 할 때 강력하게 반대했다. 또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기존의 주류정치 집단과는 다른 길을 갔다. 비록 정치라는 흙탕물 속에 뛰어들었지만 그 속에서도 최소한 자신의 신념과 고집은 유지하겠다는 의지가 유독 돋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허황된 말을 하며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는 구시대 정치인과는 확실히 달라보였다. 같은 내용을 말하더라도, 같은 비전을 이야기하더라도 그의 말에서는 유독 진정성이 엿보였다. 이것은 연설 때조차 편안하게 느껴지는, 그의 소탈하고 솔직한 스타일의 화법에서 기인한 듯하다. 그런 화법이 일반적인 정치인들보다 한결 권위 없는 느낌을 주었고 이 부분이 제왕적 정치인에 식상해하던 사람들에게 호감을 샀다.


또한 정치인의 별명이 ‘바보’라는 것은 남다르다. 그만큼 정치인답지 않은 정치인이었고 그러므로 기존의 틀을 깰 수 있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앞서 말했듯 2000년도에 지역주의 해소라는 평소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지역구인 종로를 버리고 부산에 가서 낙선을 한 일만 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말 ‘바보’였다. 그러나 낙선을 안타까워하는 네티즌들끼리 자발적으로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인 노사모를 결성하게 되는 계기가 만들어지면서, 전화위복의 기회가 생겨난다. 훗날 노사모는 새롭게 강력한 매체로 등장한 인터넷을 기반으로 노무현 열풍을 주도했고, 특히 인터넷을 많이 사용하는 젊은층을 공략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노사모와 함께 대선 과정에서의 드라마를 만들어냈던 것도 효과가 컸다. 민주당 경선에서 극적으로 1위를 했을 때가 돌풍의 시작이었다. 이인제 대세론도 꺾고,  호남 사람이었던 한화갑 후보를 제치면서 당시로서는 파란을 일으킨다.  민주당에선 비주류 세력이나 마찬가지였던 당시의 노무현 후보는 광주경선 이후 국민들에게 큰 지지를 받고 결국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된다. 하지만 그 이후 지방선거 패배에 대한 재신임 위기에 이은 당내분열이 있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몽준 의원의 인기가 급 상승해서 지지율이 반으로 떨어진다. 다행히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와의 극적인 단일화에 성공했으나, 대선 전날 정몽준 의원의 단일화 파기선언이 나오면서 선거가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난관에 부딪친다. 그러나 난관 속에서 더욱 더 굳건한 지지자들을 얻을 수 있었고, 노무현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국민들에게 보다 확실히 각인시킬 수 있었다.



한나라당과의 대척점 긋기


위에 열거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남다른 모습들이 대선 승리에 크게 작용했지만, 가장 큰 대선 승리의 이유는 한나라당과,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의 대척점 그리기를 잘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대쪽이라는 별명의 이회창 후보와, 법조인이자 원칙주의자라는 비슷한 점이 있었지만 원칙의 내용이라는 것이 달랐다. 이회창 후보는 법조인으로서의, 공직자로서의 ‘법과 원칙’을 지키면서 할 말은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는 ‘보수적’ 이미지였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불의에 맞서 싸우고, 비정상적인 정치 행태 또는 지역주의에 반대하는 ‘진보적’ ‘개혁적’ 이미지였다.


더군다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소탈한 이미지에 고졸이었고 빈농의 자식이었다. 장인은 빨치산이었다. 본인은 인권변호사 출신이었다. 이 모든 것이 이회창 후보와는 정 반대였다. 이회창 후보는 엘리트 이미지에, 경기고-서울대 코스의 명문 학교를 나왔다. 아버지는 일제 시대 검사였고, 본인은 대법관과 국무총리를 거쳐 여당의 총재까지 역임하면서 탄탄대로의 길을 걸었다. 이회창 후보의 이미지는 한나라당의 정형화된 이미지, ‘기득권을 갖고 있는 부유층 엘리트’ 그 자체였다.
 
본인의 의도했든 아니든 이러한 대척점 그리기는 분명 통했다. 기존의 정형화된 엘리트 정치인들에 식상해있던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고, 서민적이고 친근한 이미지를 확실하게 구축하면서 부동표를 끌어모을 수 있었다.
 
 
결국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위에서 이야기했던 복합적인 요소가 노무현이라는 사람에 대한 ‘희망’을 만들어냈고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세상에 대해 꿈꾸게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우리 국민들의 ‘희망’을 대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대통령이 되었으니 많은 사람들이 바라던 데로 소통이 잘되고, 정의로운 세상, 그리고 서민이 잘 사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기대가 커서일까? 많은 희망을 품고 노무현 정부를 맞이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더더욱 실망한 건지도 모른다. 세상은 나아질 기미가 안보였고, 우리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행동을 하고 있는 노무현 정부를 보고 정말 큰 배신감을 느꼈던 사람은 한 둘이 아닐 것이다. 특히 노동자들의 여건은 더욱 안 좋아지고 비정규직은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서민의 벗이었고, 가슴이 뜨겁고 정의로웠던 사람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변화시키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정치인 이였지만 그 능력을 대통령 시절에 발휘하지 못한 것 같아서 너무 안타깝다.


야권의 대선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인으로서의 장점을 지니고 있으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을만한 인물을 찾아야 한다. 즉, 희망을 줄 수 있고, 그 희망을 한국 사회에서 실현 할 수 있는 인물이다. 국민들이 자포자기 하지 않고 막연한 기대라도 품을 수 있을만한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과도 전혀 달라야 한다. 과연 현재 그런 정치인은 있을까? 있더라도 그런 정치인이 과연 현실 정치에서 힘을 가지게 될 수 있을까?


기존의 정치인이 변화하는 것도 괜찮고, 아니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처럼 혜성처럼 등장해서 대선 판도를 싹 바꿔 나가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그리고 야권연대를 이끄는 민주당이 큰 결심을 해서 진보정당에서 야권 단일화 후보가 나올 수 있도록 인물 폭을 넓히는 것도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통령 후보 시절을 롤모델로 삼아, 국민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줄 수 있고, 자기 자신이 ‘진보’ ‘변화’의 상징이 될 인물이 야권의 대통령 후보로 나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