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사회의 화두는 ‘취업’이 되어 버렸다. 최근에 취업은 힘들어진 것과 동시에 젊은이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이런 커다란 짐을 기본으로 하나 안고 있는 젊은이들은 자신이 이대로 하고 있는 게 맞는지, 아니면 지금 하는 것보다 자신에게 더 맞는 것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흔히 말하는 점(占)집을 찾게 된다. 즉 자신의 불확실한 미래를 확실히 알아보고 싶은 것이다.


점(占)은 어디서 온걸까?

점(占)은 전 세계적으로 어디서,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보통 민간신앙이나 토속신앙에 바탕을 둔 형태로 각지에서 나타났으며, 개인의 사소한 길흉에서부터 국가의 중대사까지 그 적용범위는 실로 다양했다.
우리나라에는 동양문화에 기반을 둔 주역, 명리학, 풍수지리학, 관상학 등을 연구하는 역술가들과, 자신이 모시고 있는 몸 주신으로부터 오는 느낌을 말로 전하는 무속인들이 주를 이루어왔다. 실제로 이들의 숫자는 허가 받은 이가 약 10만 명, 여기에 비허가 업소 운영 및 견습 중인 인원을 다 하면 3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이상 동양 철학 연구회 추산) 특히, IMF 구제 금융을 받았던 1997년에는 청년층의 취업이 너무나 힘들어지면서 점술 시장이 전례 없는 대호황을 맞게 되었고,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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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고(古)문헌에서도 접할 수 있는 무당

점이 꼭 필요한가?

점에 대한 의견은 매우 다양하다. 실제로 필자는 일주일 전에 지인과의 대화 중 너무 충격적인 이야기를 접했다. 얼마 남지 않은 교원임용시험 준비에 힘들어하던 한 수험생이 무당을 찾아가 자신의 미래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 그런데 그 무당이 “당신의 운명 상 한마디로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다”라고 전했다고 한다. 결국 그 수험생은 지금까지 한 약 2년간의 수고를 뒤로 한 채 시험공부를 접었다고 한다. 어떤 논리나 체계도 없이, 단순히 자신이 모시는 신이 그런 계시를 주었다면서 그것을 납득시키려고 하는 것이 무당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 일화였다. 덧붙여 주변 학생들의 의견을 전하고자 한다.
모 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L양(23)은 “주변을 살펴보면 점을 단순히 재미로 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결국엔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현재 하고 있는 것이나 열심히 하라)등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고 했다. 결과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량진에서 공무원시험을 준비 중인 P양(25)은 “점집이 학원가 주변 뒷골목에 많이 몰려 있는 것을 보면 결국엔 이것도 장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 같다. 특히 힘든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하는 것 같아 매우 안 좋게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점을 보는 곳 또는 점 자체에 대해서 별 의미를 두지 않는 의견을 보인 이들이 있는 반면에 다른 의견도 있었다. 교원임용시험을 준비 중인 K군(31)은 “점집에 가는 이유는 현실에 닥친 힘든 상황에 대한 명확한 해결책을 기대하는 것도 있지만, 누군가에게 자신의 고충을 스스럼없이 털어놓는 등의 열린 대화를 할 수 있는 곳이라는 점도 있다. 그러다 보면 자신이 부족하거나 고쳐야 할 점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즉, 다른 곳에선 할 수 없는 부담 없는 ‘넋두리’가 가능한 곳이라는 것이다.


너무 바쁜 현대인들 (출처:yonhapmidas)

어제보단 내일이 너무나도 궁금한 현대인들

현대 사회가 점점 최첨단으로 나아갈수록 사람들은 복고적인 것 또는 아날로그적인 것을 그리워하는 경향이 있게 마련이다. 점 열풍도 그런 맥락 속에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현대인들은 괴테의 희극 ‘파우스트(Faust)’에 그려진 소녀 마가렛의 ’사랑의 점술‘과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에 열광하곤 한다. 이것도 아무 근거 없는 점술의 하나일 뿐인데 말이다.
객관적으로 따졌을 때, 나뭇가지 수만 놓고 보면 사랑의 성공률은 무려 50%에 이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다. 즉 세상에 앞을 내다볼 수 있는 명확한 방법은 아무것도 없다. 이렇기에 사람들은 그저 ‘조금이라도 더 내게 유리한 미래’를 만들고자 열심히 일하거나,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다. 필자가 위에서 말한 일화는 ‘빨리빨리’에 익숙해지다 못해 미래까지 예측하여 속단해 버리려는 현대인들에게 경각심을 일으킬 만한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점을 보는 것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보다 노력한 사람이 인정받는 세상이 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세상만사는 고진감래(苦盡甘來)이고, 또 그래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