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기는 놈, 벗으려는 놈, 벗자는 놈

얼마 전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에게 발길질을 한 20대 남성이 벌금형에 처해졌다. 물론 병적으로 미니스커트를 혐오하는 그 남성의 특성상 한 정신병자의 소행으로 넘어갈 수 있는 문제였지만 유독 네티즌들의 반응은 양분됐다.

당시 논쟁이 일었던 주된 내용은 결국 지하철에서 짧은 치마를 입고 계단을 올라가지 말라짧은 치마를 입건 짧은 바지를 입건 간에 쳐다보지 않으면 그만이다라는 주장이었다.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자유와 사회적 통념에 기반한 윤리의식을 지키려는 움직임의 충돌, 성(性)상품화와 성(性)상품화를 야기하는 마초이즘을 경멸하는 눈빛들 쉽게 답이 나오겠는가? 개인적 가치관의 문제다, 태초부터 존재한 뿌리깊은 인간 본성의 문제다, 사회적 제도적 악습에 근거한 병폐다 등 뿌연 안개 속에 가려진 등대처럼 빛이 보이지 않는 소모적 논쟁들은 물론 여성인권이 신장되기 시작한 20세기 초부터 있었을 것이다. 현재도 그 어떠한 해답을 찾지 못한 채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얼마 전 지인과 함께 구경갔던 2011 서울 모터쇼에서 어딘가 눈에 익은 사진기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바로 뒤태전문기자로 유명한 A신문사의 박 모 기자였다. 방송에도 종종 모습을 나타내곤 하는 그는 그날 역시 모터쇼에 참가한 자동차 보단 역시 자동차에 살짝 기댄 레이싱 모델의 뒤태를 사진에 담는데 여념이 없었다. 최근의 연예기사는 대부분 여성 연예인의 신체 부위와 노출수위 등 파격적이거나 선정적인 기사들로 채워지기에 기사제목에 숨막히는 뒤태를 남발하는 그의 기사에 딱히 반박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여성성을 상품화하는 움직임은 도덕적으로는 그릇되었지만 도덕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는 용인되고 역설적으로 환영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그릇된 성 의식과 성윤리로 사회적 물의를 일삼는 몇몇 동물본능의 남성들에게 있다. 역설적으로 나이를 먹으면서 젊은 여인을 선호하는 그들은 자신의 돈, 권력, 지위를 이용 상대적 약자인 여성을 차지한다. 강호순과 같은 물리적 성범죄를 저지른 자들에겐 제도적 정비를 통해 화학적 거세까지 도입할 수 있지만, 우리는 나는 젊은 여자가 좋다며 미성년자를 스트리퍼로 고용한 파티에 참석해 잠자리를 같이 했다는 의혹을 사는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총리에게는 화학적 거세가 전혀 불가능할 것이란 걸 안다. 즉 ‘성 상품화’가 생기는 근본적인 의식구조의 개편은 요원하다는 뜻이다.

선정적 안무로 논란이 되었던 ‘라니아’와 ‘포미닛’

벗기는 놈들이 만연하니 알아서 벗겠소라는 부류들도 생겨났다. 10대 가수들의 섹시 컨셉이 10대 청소년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섹시 컨셉에 동의하는 기획사 대표도 알고 안무와 코디네이터도 알고 춤을 추는 가수들도 알 것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행렬에서 이탈하지 않는다. 오늘도 어김없이 영화 제작발표회의 여성 연기자들은 더 짧고 더 깊게 파인 옷들을 입을 것이고 10대 소녀들은 동년배의 아이돌이 추는 섹시댄스(라 쓰고 강하고 구체적인 섹스어필을 동반한 몸부림이라 읽는다)를 연습할 것이다. 그 누구도 흐름에 반대하지 않는다. 왜? 돈이 안되기 때문이다. 사장이 벗기라는데 반대할 매니저 없고, 투자자가 선정성을 강조하는데 이의를 제기할 용감한 제작사는 그리 많지 않다. 한국 연예 산업이 얼마나 매체 종속적이고 자본 종속적인지 알 수 있는   사실은 애석하게도 올라가는 치마 길이, 신경 쓰이는 가슴, 완벽한 S라인 유혹, 저 섹시하죠?로 대표되는 한국 여자 연예인의 포토뉴스다.

 

볼 테면 봐라, 난 니들 따윈 신경 쓰지 않아

최근 다소 진부했던 여성인권운동에서 새롭게 주목 받는 움직임은 바로 스스로 벗자슬럿워크(Slut Walk) 운동이다. 최근 캐나다, 미국 등 북미지역은 물론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영국 등 전세계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슬럿워크란 란제리 룩 같은 도발적인 옷을 입고 도심을 행진하는 운동을 뜻하는데 이 운동의 시작은 캐나다의 한 강의실이었다. 올해 초 캐나다 토론토의 마이크 생귀네티란 경찰관이 한 법과대학원 강연에서 여자들이 성폭력을 당하지 않으려면 매춘부(slut)처럼 보이는 난잡한 옷을 입지 말아야 한다고 발언하면서부터 여성들이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4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약 4000명이 참가하면서 시작된 행진은 5월초에는 북미지역 20여곳에서 열릴 정도로 규모가 커졌고 오는 28일 호주 멜버른과 6월4일 영국 런던 하이드파크에서도 대규모로 열릴 예정이라고 하니 범 세계적인 여성인권운동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의 사회운동의 경향상 슬럿워크 운동 역시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한 신속한 확산과 광범위한 참여가 뒷받침 되고 있는데 영어권 국가들의 활발한 참여는 최근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IMF 총재의 성추문 사건으로 다시 한번 국민적 성 윤리 의식의 부재를 탓하고 있는 프랑스 사회에도 큰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슬럿워크-시카고의 페이스북 팬페이지, 활발한 의견 교환이 이루어진다

슬럿워크 운동에 참가하는 여성들은 도발적인 옷차림을 한 여성이 성폭행 당하는 것이 본인 책임이라는 일부 남성들의 생각을 경멸한다. 4월 7일 벌어진 가두 행진에 참가한 수 천명의 여성들은 내가 어떤 옷을 입건 상관 말라는 피켓을 들고 거리를 누비고 거리의 여성들은 환호했다. 
 

여성 성(性)은 사회적으로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남성들의 영속적인 관심사다. 그 때문에 우리는 교수와 여교수, 비서와 여비서, 고등학생과 여고생 등 수많은 판타지의 개념을 가공하고 육성시켜왔고 감추려는 듯, 보여주기 싫다는 듯 관음증을 자극하는 존재들은 허황된 성적 판타지와 성 위계 질서를 뿌리내리게 한 원흉이었다. 그 때문에 슬럿워크 운동은 새롭다. 신대륙을 발견하기 전 항해사의 기쁨이 인공위성이 뜬 오늘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생물학적 차이를 이용해 과도하게 뒤틀린 판타지를 제공한 오늘날의 성 윤리 의식에 더 이상은 연료를 주입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슬럿워크 운동이 새로운 여성운동의 지향이 될 수 있을까?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에 대한 해답을 얻거나 목표 자체를 불가능이라 여기는 것은 결국 인간이 설정한 ‘가능성’의 프레임일 뿐이다. 불가능한 목표를 가능하게 했던 것도 결국에는 인간이었던 것처럼 SNS를 통한 이번 슬럿워크 운동은 전세계 여성들의 가슴속에 빠르게 번져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많은 사람들이 마치 광장에 모여 토론했던 고대 그리스처럼, 여성운동의 다른 진보를 위해 전세계 여성들이 SNS로 모이고 있다. 그 촉매제로 작용할 슬럿워크 운동, 결코 단순한 일탈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