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출간된 것은 1976년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그때는 공권력의 만용이 난무하던 시대였다. 이 소설은 ‘난쟁이 일가’로 상징되는 도시 철거민 가정의 불행과 파국, 그리고 소위 있는 자들과 이를 비호하는 공권력의 만용을 그렸다. 이 책은 지금도 서점에서 대접받는 스테디셀러이다. 그만큼 생명력이 있으며, 당시 공권력으로 인한 도시소외계층의 궁핍한 삶과 철거민들의 고통 등을 생생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30년이 흐른 현재 우리는 ‘난쏘공’을 그저 옛 소설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그 당시 공권력의 악용. 남용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난쏘공’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공권력에 대한 위기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공권력의 남용을 외치는 사람들을 공권력에 대한 편향된 시각을 갖고 있다고 비판한다. 경찰관이 시민들의 시위를 무력진압하고 공권력을 집행하는 것은 과잉 시위가 일어났기 때문임에도 불구하고 공권력을 폭력으로 매도하고 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경찰이 시위 혹은 일상적인 사건. 사고에서 시민들에게 폭력을 당함으로써 공권력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공권력에 대한 다른 시각으로 인해 대립되는 논쟁은 고전적 논쟁이며 해묵은 논쟁이다. 하지만 비록 끝없는 논쟁일지라도 우리는 이 논쟁에 함께 하고자 한다. 공권력, 과연 강화되어야하는가? 혹은 이미 너무도 강화되어 있는가.



국가는 폭력을 독점한 집단이다. 즉 한마디로 공인된 폭력기구이다. 그리고 그 폭력은 합리화된 폭력이 된다. 이렇게 합리화된 폭력을 공권력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공권력은 국민이 국가에 위임한 폭력이라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스스로 해결하기 힘든 갈등을 중재하고, 구성원들에게 피해를 주는 반사회적 행위를 막기 위해 국가는 이 폭력의 권한을 독점한다. 경찰, 검찰, 군대가 그것이다. 물론 이 권한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적법한 절차에 의해서만 사용되어야 한다. 공권력의 구성과 운용에 대해 법률로 정하는 취지는 바로 그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공권력은 사태를 조율시키기 보다는 그 법전의 무게로 분쟁의 가능성을 아예 압사시키는 국가의 모든 폭력이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다. 개인에 대한 억압도, 폭력도, 심지어 살인까지도 국가의 이름으로 행해지면 정당화되고 만다. 공권력이란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토록 힘없는 개인에게만 잔혹한 것일까.



공권력을 강화해야 하는지 약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의 해결키는 국가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다. 국민이 결정해야한다. 이번 기획은 공권력에 대한 논란 사례들을 통하여 공권력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다루어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