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단의 총아, 김애란의 신작이 나왔다. 이름하여「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은 80년생 젊은 소설가다. 그럼에도 대산대학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김유정문학상 등의 굵직한 상을 수상했다. 게다가 앞서 발표한 두 소설집 「달려라 아비」와 「침이 고인다」는 모두 베스트셀러에 진입하며, 그녀가 문단과 대중의 고른 사랑을 받는 소설가임을 입증했다. 「두근두근 내 인생」은 김애란의 첫 장편이다. 그녀의 파워를 보여주듯, 이 소설은 출판된 후 빠른 속도로 5만부 고지를 돌파했고, 현재 소설 부분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있다.

그녀는 전작에서 무겁다면 무거울 수 있는 주제들을 가볍고 익살맞게 어루만지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현대사회의 특성인 인간 소외와 획일화 현상에 대해(「달려라 아비」), 또 젊은이들의 공간 문제(「침이 고인다」) 에 대해 다룬 전작에서, 그녀는 무거움과 가벼움을 중첩한 그녀만의 매력을 뽐냈다.

김애란의 첫번째 소설집으로 인간소외 현상을 다룬 소설들이 눈에 띈다.

이번 작 「두근두근 내 인생」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무거움과 가벼움의 경계에 서 있고, 슬픔과 익살의 경계에 서 있다. 다만 전작들이 사회에 대한 그녀의 애정과 관심을 일정 부분 드러냈다면, 이번 작에서 그녀는 반보(半步) 뒤로 물러섰다. 사회가 빠진 자리에 사람이 들어갔고, 사랑이 들어갔다. 덜 문제적이 된 대신, 더 끈적이는 작품이 됐다.

“이것은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이야기이다.”

프롤로그의 마지막 문장이다. 문장 그대로, 소설은 17살에 아들을 낳은 어린 부모와, 조로병을 앓는 늙은 자식의 이야기다. 「두근두근 내 인생」이라는 제목 때문에, 알콩달콩한 사랑 이야기를 상상했으나, 웬걸, 결국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다. 다만 죽음을 향한 길은 곡선이며, 아늑했다.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뿔 난다.” 라는 속담이 있는데, 정말이지 이 책은 독자의 엉덩이에 뿔을 나게 해도 열두번은 더 나게 할 책이다. 분명히 슬픈 이야기인데 웃게 만드는 매력, 그러나 그 웃음으로 인해 슬픔이 배가 되게 하는 매력. 김애란 소설만이 가지는 능청이고 익살이다.

김애란의 첫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의 표지

분만실 주의로 위태로운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그런 일쯤 대수롭지 않다는 듯 능숙하게 나를 들어올렸다. 그런 뒤 큰 손으로 내 엉덩이를 철썩 때렸다. 남들이 소위 말하는 ‘생일빵’ 이란 것이었다. 나는 너무 아파 성을 내고 싶었지만 으앙 하고 울어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안 그러나 한 대 더 맞는 수가 있고, 그게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어서였다. -p44

주인공이 태어났을 때를 묘사한 이 부분은 김애란의 장기를 보여준다. 17살, 덜 여문 엄마에게서 태어난 신생아, 그리고 병원을 감도는 긴장과 정적. 그 긴장을 김애란은 ‘생일빵’이란 표현으로 파괴시킨다. 그 뿐인가,

“그래도 그렇지, 나는 어떤 내기에도 너를 걸지 않아.”
“그럼 뭘 걸어요?”
“뭘 꼭 걸어야 해?”
“그럼요. 이왕이면 아버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로요.”
잠시 후 뭔가 궁리하던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그럼 이렇게 하자.”
“어떻게요?”
“자, 아빠가 맹세할게. 잘 들어. 내가 만약 아름이가 가져오라는 파일을 미리 읽으면 죽을 때까지 월세에 산다.” -p315

주인공 아름이 아버지에게 자신이 쓴 소설을, 미리 읽지 않고 가져와달라는 부탁을 하는 장면이다. 주인공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고, 그것은 그의 아버지도, 독자도 모두 알고 있다. 한없이 진지해야 할 장면에 난데없이 등장하는 유머, 이로 인해 팽팽한 소설 속 긴장은 환기된다. 눈물을 글썽이다가도, 풋 하고 웃게 되고, 또 그 웃음 때문에, 더 큰 눈물을 쏟게 된다.

그러나 김애란의 이 소설은 무턱대고 슬픔을 강요하며 가끔 헛! 하고 웃게 만드는 신파극이 아니다. 소설은 한 소년의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1년을 다루지만, 뜻밖에도 이 소설의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사랑이다. 졸지에 부모님이 되어버린 17세 소년, 소녀의 풋사랑, 그리고 불치병에 걸린 두 남녀의 사랑. 저자는 이 두 개의 사랑을 통해, 인생과 청춘을, 또 성장을 그린다. 막 나온 아이를 바라보는 젊은 어머니의 시선, 그 아이에게 치명적인 병이 있음을 깨달았을 때 부모의 좌절, 그 좌절을 알고 있는 아이의 조숙한 위로. ‘사소한 것에서 사소하지 않은 것을 찾아내는 것’ 이 감수성이라면, 이 소설은 감수성이 차다 못해 넘친다. 그 감수성은 온전히 독자의 눈물로 내린다.

마술같은 감수성의 작가,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이라지만 이 소설의 사랑은 슬프다. 아니 어쩌면 슬프다는 감정 또한 허무할 수도 있겠다. 주인공의 사랑은 ‘서하’ 라는 여자아이에게 향한다. 서하(暑夏)라니, 더운 여름이다. 더운 여름, 이 여자아이와의 사랑은 이루어지는 듯했다. 각자의 병실에서, 둘은 편지를 나누고 감정을 교환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되었다.

‘그렇게’를 풀이하진 않으련다. ‘그렇게’가 무엇이든, 주인공은 사랑을 했으며, 그 사랑이 향한 곳에 누군가가 있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비록 책은 죽음으로 끝나지만, 끝이 비극이라 해서 과정 또한 비극은 아닌 거니까, 어쩌면 그들은 이루어졌다, 또는 그들은 헤어졌다, 라는 표현보다, 그들은 그렇게 되었다. 라는 표현이 이 소설의 사랑을 표현하는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무더운 여름이다. 책장을 덮는 순간 책을 읽으며 돋았던 엉덩이의 뿔이, 머리를 뚫고 나오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아는 사랑의 형태는 책에 없었다. 분명 슬픈 소설이라, ‘두근두근’ 따위의 감정은 들지도 않을 것 같았는데, 심장이 뛰었다. 책의 말미에는, 주인공이 부모의 첫 만남을 생각하며 쓴 단편소설이 등장한다. 부모의 사랑도 무더운 여름이었고, 주인공의 사랑도 무더운 여름이었다. 그 여름 속에서, 그리고 사랑 속에서 부모는 부모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성장해간다. 더운 여름, 권태로운 생(生)을 보다듬을 손길이, 또 볼을 적실 눈물이 필요한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