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권력 강화가 화두다. 5월 초 한 뉴스프로에 취객이 경찰서에 들어와 난동을 부리는 모습이 방영되었다. 그러자 보수언론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경찰력이 땅에 떨어졌다며 공권력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사설을 쏟아냈다. 그에 영향을 받은 듯, 5월 9일 조현오 경찰청장은 위급할 시 총기를 적극 사용하라는 발언을 했다. 일각에서는 찬성여론이 있는가 하면, 공권력에게 공적(公的)인 흉기를 쥐어주는 것이란 반대여론도 거세다. 과연 공권력은 어디까지 사용되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공권력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옳은 것일까.

위기 시 적극적으로 총기 사용을 지시한 조현오 경찰청장 @경향신문

공권력의 법적 근거와 제한

우리 헌법은 제 37조 2항에서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라고 규정한다. 공권력이 행사되는 근거로 인용되는 조항이다. 그러나 사실 이 조항은 ‘공권력의 행사’ 보다는 ‘공권력의 제한’에 관한 규정이다. 필요 조건으로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해서만, 형식적으로는 ‘법률’ 로서, 그리고 그 두 가지를 충족할 때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는 것. 이 조항은 이렇게 해석되어야 한다. 공권력의 사용 범위는 이미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것이다.

지난 3월, 우리나라 공권력은 대학생 학술 동아리 ‘자본주의 연구회’ 회원을 국보법 위반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근거는 국가보안법 제 7조로, 이는 반국가단체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선동·동조할 경우 성립한다. 또한 긴급체포는 중대한 범죄자이거나, 도주의 우려가 있을 때에 한 해 허용되는 제도이다. 그래서 4년 넘게 공개적 활동을 지속해온 단체의 회원에게 국가보안법, 그것도 긴급체포를 적용한 것은 공권력의 폭력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이렇듯 공권력은 종종 헌법 제 37조 2항을 매우 폭넓고 자의적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그들의 공권력 행사는 폭력이 되버릴 때가 많다. 때문에 공권력 사용에 제한을 둘 필요가 있으며, 공권력을 강화하자는 주장은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공권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공권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언제나 세트처럼 등장하는 문구가 있다. ‘법과 원칙’ 또는 ‘법질서 확립’ 이다. 대놓고 ‘공권력을 강화하겠다’ 라고 말하기는 안 좋은 상황일 때 주로 공직자들은 ‘법과 원칙을 확립하겠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앞에서 보았듯 우리나라 최상위법인 헌법은 공권력의 사용을 제한한다. 그리고 공권력 사용의 핵심적 근거법률 중 하나인 국가보안법은 우리나라 인권위와 루이즈 아버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이 폐지를 주장했을만큼 시대에 뒤떨어진 법률이다. 다른 하나인 집시법은 애초에 집회와 시위를 ‘보장’ 하기 위해 만든 법률이었다. 그러나 본래 취지와는 다르게 집회와 시위를 ‘제한’ 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이 법 역시 엠네스티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지적했을만큼 문제가 있는 법률이다. 이처럼 ‘법과 원칙’ 속에서 공권력 강화의 논리를 찾는 것은 허무맹랑하다. 때문에 ‘법질서 확립’을 주장하며 공권력 강화를 외치는 이들은 스스로 ‘법은 강자들의 편’ 이라는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유성기업에 투입된 공권력 @머니투데이

또 공권력 강화를 주장하는 이들이 참 좋아하는 이야기가 있다. 공무원이(특히 경찰이) 맞거나 놀림당했다는 이야기만 나오면 公권력이 아니라 空권력이다느니, 공권력이 땅에 떨어졌다느니 하며 ‘식겁’한다. 공무수행 중 폭행을 당하는 공무원이 하루 평균 1.5명이라는 조사가 나오고, 또 경찰이 취객에게 맞는 장면이 뉴스에 등장하자, 언론들은 그야말로 ‘득달같이’ 달려들어 공권력 강화를 주장했다. 물론 공무원 폭행은 문제가 있는 행위이다. 그러나 그 자체로 공권력이 강화되어야 할 근거가 될 수 없다. 보수언론은 직무 중 폭행당하는 공무원이 한 해 평균 566명이며, 마치 엄청난 수의 공무원이 폭행을 당한다는 듯이 보도했다. 그러나 2009년 공무원의 범죄 건수는 무려  11677건이었고, 이 중 폭행이나 상해 등 강력범죄는 1828건이었다. 또한 공무원에 의해 이뤄진 공무방해 건수도 273건이나 되었다. ‘맞는’ 공무원보다 ‘때리는’ 공무원이 3배 이상 많은 상황에서 공권력 강화를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또한 공권력에 대한 이중잣대도 문제다. 보수세력들은 ‘공권력이 땅에 떨어졌다’, ‘법치주의를 확립해야한다’ 며 집회‧시위 시 강력한 진압을 요구한다. 그러나 시장경제에 대해서는 공권력이 개입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유력 보수언론의 제목을 따오자면, 「촛불에 녹아내린 공권력」라며 공권력 강화를 주장하다가도, 「장관은 회계사가 아니다」라며 공권력 개입을 비판한다. 국민의 자유에는 ‘큰 정부’를, 시장의 자유에는 ‘작은 정부’를 요구하는 꼴이다. 공권력에 대한 이러한 일관되지 못한 시선은 그들의 공권력 강화 논리를 더욱 약하게 만든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공권력과 다른 권력의 유착이 매우 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삼성 리스트’ 사건에서 보여지듯 공권력과 재벌권력은 떼려야 뗄 수 없고, 신문 시장의 90% 이상을 점거한 조중동이 하나의 언론권력화 되어 공권력-특히 경찰력-과 유착한다. 이와 같은 사회 구조에서 공권력이 강화될 경우 하나의 절대권력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한다. 공권력이 강화되어선 안 되는 또 한 가지 이유다.

소설 「1984」 는 극단적인 공권력 강화가 불러온 전체주의 사회를 보여준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힘이 되어야

조지 오웰의 「1984」는 공권력이 극단적으로 강해져버린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이 사회에서는 어디에서도 국가의 감시를 피할 수 없다. 또한 국가는 사료와 기사 등을 삭제, 창조하면서 개인의 기억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역사까지 바꿔놓을 수 있는 힘을 가졌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세계 같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알 수 있다. 이미 우리나라는 주민등록제를 시행해 개인정보를 합법적으로 국가에서 수집하고 관리한다. 또한 지난 4월 12일 “나는 MB정부의 여론조작 행동대장이었다”는 윤희구씨의 폭로에서 국가가 비밀리에 여론과 언론을 관리하고 있다는 것도 드러났다. 이런 현실에서 공권력 강화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행위요, 「1984」의 실현에 불과하다.

공권력은 결국 국민의 권력이다. 공권력을 부여한 주체는 국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권력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공권력이 그렇게 행사되고 있는가. 마치 지금의 공권력은 ‘그들의, 그들에 의한, 그들을 위한‘ 힘으로 보인다. 때문에 공권력은 강화가 아닌 견제가 필요하다. 공권력 강화를 위한 법질서 확립이 아닌, 공권력의 폭력을 막기 위한 법질서 확립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