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피티, 낙서와 예술 사이

교과서 한 구석에 그려진 흑백의 녀석. 그 녀석을 지우개로 지운 것도 수십 번, 조금씩 다듬어 가는 정교한 과정에 온 집중을 쏟는다. 국어시간이 나만의 미술시간이 되는 순간, 바로 낙서를 하는 순간이다. 머릿속의 주인공이 흑심 끝에 기어이 탄생하는 순간은 엄청난 황홀함을 불러온다. 학창시절, 낙서를 안 해 본 사람은 없을 거다. 그것이 선생님 몰래 교과서에 그렸든 남의 집 담벼락에 그렸든 간에 그 순간만큼은 누구나 예술가가 된다. 

그런데 얼마 전 이러한 ‘낙서’로 인해 재판이 벌어졌다. 대학 강사 박 모 씨가 작년 G20 홍보 포스터에 쥐 그림을 그린 혐의로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은 것이다. 재판부에 따르면 헌법상 예술 창작과 표현의 자유는 제한 없는 기본권이 아니기에 그의 그림은 공용물건을 손상시킨 범죄 행위라는 것이다. 하지만 박모씨는 재판부의 판결에 대해 쥐 그림을 그라피티로 봐야 한다며 항소하겠다고 밝힌 상태이다.

잠깐, 낙서가 아니라 그라피티라니. 그라피티가 도대체 무엇인가? 그라피티는 기본적으로 낙서 같은 문자나 그림을 뜻하는 말이다. 그라피티의 기원을 따져본다면 과거 동굴 벽화나 이집트 벽화 등에서 시작되었다. 요즘의 현대 그라피티는 1960년대 말 미국의 필라델피아에서 시작되었지만, 뉴욕의 브롱크스 가(街)의 낙서로 본격화 되었다. 처음의 현대 그라피티는 소수 일탈자들이나 불량아들이 에어로졸 락카로 벽에 사인(SIGN)등을 그리면서 퍼져 나갔다. 하지만 특유의 인공적인 색감과 격렬한 라인에서 뿜어 나오는 힘은 사람들을 사로 잡아 하나의 길거리 문화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라피티를 바라보는 시선이 나눠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서양에 비해 생소한 문화 방식이기에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주기도 한다. G20홍보포스터에 그린 낙서( 또는 그라피티)로 벌금을 물은 박 모 씨처럼 그라피티는 처벌의 대상까지 된다. 

물론 우리나라만 유달리 이러는 것은 아니다. 외국의 경우에도 그라피티 아티스트들을 ‘아웃사이더’로 보는 시선이 적지 않으며 그라피티로 인해 체포되는 예술가들도 많다. 무수히 많은 경범죄 처벌을 받은  키스 하링, 바스키아, 뱅크시가 대표적 예인데 이들 모두 그라피티 분야에서는 상당히 이름 있는 예술가들이다.

이렇듯 “ 그라피티만의 예술 아아 아름다워” 라고 주장하는 젊은 예술가들의 반대쪽에는 “그라피티는 반달리즘! 파괴적이야!” 라고 외치는 콧대 높은 예술가 어르신들도 있다. 그러므로 그라피티를 가지고 이것이 낙서냐 예술이냐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라피티는 누군가에게는 민원 리스트 중에 하나인 낙서이자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순간의 예술성을 응집시킨 예술작품이다. 

                                                                                                                                                                          

그라피티에 대한 시선 그리고 미래

그라피티에 대한 정의는 확실히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하지만 그라피티에 대한 처벌, 과연 이것은 정당한가?

그라피티가 곱지 못한 시선을 받는 것은 일반적인 예술과는 다른 방식과 성격 때문이지 그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라피티의 성격상 작은 캔버스지에 그려나가기 보다는 길거리의 벽이나 바닥에 그리기 때문에 공공시설들이 그라피티에 노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기에 정부나 지역주민들로부터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라피티를 문제 삼는 것, 아무리 개인의 예술 창작과 표현의 자유가 제한 없는 기본권이 아니라고 해서 처벌한다는 것은 조금 시대를 역행하는 발상이 아닐까 싶다.
최근의 세계는 ‘다양성’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타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 탄생한 그라피티는 예술적 방법으로 풍자와 비판을 시도한다. 이것이 그라피티가 지닌 고유의 정신이다. 그런데 그라피티를 구속하고 처벌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적 흐름을 억압할까 걱정스럽다.

다행이도 요즘 몇몇 도시에서는 이런 그라피티와 같은 현대 미술들에 큰 중요성을 느끼고 과거 지워졌던 그라피티들을 복원하는 중이다. 게다가 사람들도 그라피티의 예술성을 높이 사 2008년에는 런던에 있는 거리의 낙서가 20만 파운드의 금액으로 경매에 낙찰되기도 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이화마을이나 홍대주변이 그라피티의 명소로 유명해지면서 급인기를 타는 중이다. 회색빛 시멘트에 그려진 알록달록한 벽화는 필수 포토존으로 거듭났고 칙칙한 골목길을 화사하게 해주는 공공 예술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 또한 최근의 그라피티는 조금씩 진화까지 하고 있다. 일명 ‘라이트 그라피티’인데 이것은 기존의 에어졸 락카로 칠하는 방식과 다르게 컴퓨터를 이용하여 벽이나 허공에 빛을 쏴서 그리는 새로운 방식이다. 이를 통해 그라피티의 고질적 단점을 개선하여 앞으로의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낙서를 보고 어디까지가 그라피티인지에 대한 범위는 정할 수 없다. 그것을 틀을 잡아 규정을 지을 수도 없는 일이다. 그라피티는 그냥 있는 그대로를 즐길 때 진정으로 즐기는 것이다. 이것이 낙서이니 예술이니 고민하지 말자. 간단하게 그냥 즐기자. 그라피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