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생각해 봤나요?

“그걸 이해하려면 이 마을의 특성을 알아야 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곳엔 확실한 역사가 없습니다. 그래서 각자가 자신의 형편에 맞게 역사를 만들어 내어 믿고 있는 실정입니다. 예를 들어 자신들이야말로 크리에이터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가문이 제가 아는 것만도 다섯 집이나 됩니다.”

“그중 하나가 우리 집이고요.”

미도리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불쑥 말했다. 나는 놀란 얼굴로 시장을 바라보았다.

“정말입니까?”

“돌아가신 아버지는 그렇게 믿었습니다.”

시장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 바람에 누군가로부터 살해당할 뻔하기도 했고요.”

웃으며 들을 얘기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요컨대, 이 마을의 뿌리에 관한 얘기는 극도로 민감한 주제라는 겁니다.”

-히가시노게이고 <명탐정의 저주> 중 한 장면

크리에이터는 그 마을을 창조한 사람들을 말한다. 마을사람들은 각자가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내며 크리에이터의 후예를 주장하고, 이것은 사람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지금 우리의 세상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역사왜곡과 독도영유권을 주장 등 이러한 내용을 듣고 우리나라 국민들은 다양한 욕설을 내뱉곤 한다. 얼마 전 읽은 소설에서 ‘형체도 없는 과거에 얽매이지 마라 00족은 이미 역사가 되었다.’ 라는 대사가 기억이 나면서 왜 우리는 반사적으로 타국의 역사왜곡에 화를 내는지 의문이 들었다. 대부분이 역사를 왜 배워야 하는 지보다는 년도와 일어난 사건을 기억할 것이고, 대학에 와서는 역사에 담 쌓고 지낸다. 또한 역사왜곡에 왜 화를 내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역사는 왜 배워야 할까?

역사는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국사, 근현대사, 세계사를 통해 다들 배웠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남는 것은 각종 년도와 사건들 뿐 정작 왜 배워야 되는지는 남아있지 않다. 역사의 정의를 살펴보면 ‘인류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 또는 그 기록’ 이라고 되어있다. 우리의 발전은 역사의 기록이 아니었다면 결코 오늘날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과거 경험의 기록을 통해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전쟁사라고 할 수 있다. 선조들은 과거의 전쟁양상이나 그 전략의 기록을 보고 새로운 전략을 짜낸다. 그 후손들은 또 새로운 전략을 새우고 점점 발전해 나갔고 그들은 역사의 승리자로 기록됐다. 현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사건이나 인물들에게서 영감과 지혜를 얻고 있다.

역사는 우리의 정체성의 확립에도 도움을 준다. 우리는 국사를 배움으로써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하고 살아간다. 해외 입양된 김은미 씨는 30대에 접어들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게 됐고 뿌리를 찾기 위해 한국으로 떠났다. 그녀가 미국에 있을 때 한국의 역사에 대해 배웠다면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우리는 한국인 고유의 생김새를 타고 났고 해외에서 자랐던 한국에서 자랐든 그 생김새에는 큰 차이가 없다. 우리의 뿌리는 변함이 없기에 우리는 역사를 배우며 우리의 선조의 삶에서 우리의 문화와 풍습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배우고 우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몰랐다면 책에서처럼 우리의 기원에 관한 문제가 극도의 민감한 주제가 되어 서로 반목하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화가 나는 이유

화가 나는 이유를 살펴보기에 역사적 사실이 어떤가에 대한 견해를 배제하고 생각해 봤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우리 문화와 역사의 우수성을 배우며 자랐다. 국사책이나 근현대사를 통해 혹은 그 외의 책을 통해 역사를 배웠다. 그 책에는 책 내용을 뒷받침 할 수 있는 논리와 사례가 실렸고 우리는 그것을 통해 그 역사를 사실이라고 믿고 알아가며 자랐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의 주장은 우리가 알던 것과 다르거나 반대의 사실을 맞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우리가 배웠고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진실이 부정되는 것에 반발을 하게 된다. 게다가 그것이 한국인으로서 자긍심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일수록 더더욱 그렇다. 중국과 일본의 주장이 사실여부를 떠나 우리는 위의 내용 때문에 조건적으로 화가 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추리소설을 주로 쓰는 작가로 대표작은 <용의자X의 헌신> <백야행>이 있으며 역사와는 거의 무관하다. 명탐정의 저주 역시 본격추리소설이라고 불리우며 한 소설가가 자료를 찾기 위해 간 도서관에서 이상한 세계로 가게 되고 거기서 일어나는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이다. 흔히 그의 소설을 엔터테이먼트 소설이라고 부르고 소설이라는 장르를 시간 때우기 용이나 별 도움이 안 되는 장르로 분류하는 사람들이 있다. 소설은 그 사회의 반영일 뿐 아니라 풍부한 간접경험을 제시한다. 또한 어느 한 부분에서도 위와 같은 생각을 이끌어낼 수 있는 힘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