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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속세상] 나렌드라 자다브 ‘신도 버린 사람들’ 속 만족하기.

 “어이, 다무 마하르. 지금 멀뚱히 앉아서 사람들 구경이나 하고 있으면 어쩌자는 거야? 서장님께서 시간이 많아서 네가 시체를 

  꺼낼 때까지 기다리고 계신 줄 알아?”

다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순경을 쳐다보았다.


어서 서둘러!” 순경이 소리를 쳤다.


사헤브. 저희는 불쌍한 마하르입니다. 저희의 의무는 죽은 사람 곁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시체를 꺼낼 수 있습니까. 죽은 사람은 상층 카스트인 걸요. 제가 상층 카스트의 몸에 손을 대면 그건 불경한 짓을 저지르는 겁니다.” 다무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신도 버린 사람들속 한 장면-


                    


개만도 못한 사람. 불가촉천민



전세계 인구의 16퍼센트를 차지하는 인도 사람들. 그 중 16퍼센트인 16500만 명의 불가촉천민이라 불리는 사람들. 그들의 영어 식 표현은 ‘Untouchables’ 이다. 만질 수 없는 사람이란 뜻이다.  위의 책 대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상위 계층 사람들의 시체조차 함부로 만지지 않는다. 시체가 더럽거나 무서워서 안만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들이 더럽고 미천한 존재이기 때문에 상위 계층 사람의 시체를 건드는 것이 불경한 짓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수 천년 동안  카르마의 논리에 세뇌되어 살아왔다. 자신들이 미천하고 더러운 일을 하는 것은 모두 전생의 악업 때문이라고 믿는다. 그들에게 최고의 직업은 하루 종일 빨래를 하는 일이다. 최소한 역겨운 건 만지지 않고 상위 계층의 눈치를 그나마 덜 받기 때문에 최고의 직업이라고들 말한다. 그들은 또한 침을 흘리지 말라고 목에 깡통을 차고 지나가는 길은 발자국도 남기지 않도록 엉덩이에 빗자루를 달고 다닌다. 소위 말해 개만도 못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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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 불만족국민



책 속에서 다무는 자신의 아들을 학교라는 교육기관에 입학시키자 안도하고 기뻐한다. 자신의 아들이 교육이라는 것을 받는 것에 만족하고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순간이다

한국에서 한 수험생이 자신의 성적을 비관해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한다. 자신의 성적에 만족하지 못하는 부모님의 기대에 부담을 느껴 자살을 결심했다고 한다

책 속에서 초다르 저수지 사용권을 얻은 불가촉천민들은 자신들도 이제 마음껏 물을 사용할 수 있게 됬다며 기뻐한다.  그 전까지는 저수지나 강의 물을 함부로 쓸 수도 근처에 다가가지도 못했다

한국의 한 저수지에서 다툼이 발생했다. 저수지에서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서로 좋은 터를 차지하겠다고 시작된 말다툼이 몸싸움으로까지 불거진 것이다. 물고기 한 마리라도 더 잡기 위해 싸운 것을 생각하면 정말 열정이 가득한 강태공들이 아닐 수 없다.

책 속에서 인도 정부의 장학금을 받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는 아들을 보며 아버지는 눈물을 흘린다. “나는 다 가졌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  아버지는 단순히 아들이 유학을 가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다. 불가촉천민인 자신의 아들이 국가에서 교육을 시켜주는 것에 감동을 받은 것이다

한국의 학생들은 국가에서 시켜주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학교 수업시간에는 핸드폰 만지기 바쁘고, 친구들과 수다떨기 바쁘다. 공교육에 만족하지 못한 그들은 학교 수업을 마치고 각자 학원으로, 과외를 받으러, 인터넷 강의를 들으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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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 신이 버린 사람들은 누구?



현재 인도는 과거 불합리했던 계급제도를 점차 순화시키고 있다. 계층이 낮은 이들에게 정치에 참여하도록 의석을 주고, 그들에게 교육을 시키는 등 시간이 갈수록 계층간의 벽은 낮아지고 있다. 이런 사회적인 현상에 불가촉천민들은 기뻐함과 동시에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도의 위대한 지도자 간디가 왜 그들을 신의 자녀라 일컬었을까? 사람이 느끼는 행복은 자신이 갖고 있는 것들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주어진 삶과 여건에 얼마나 만족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느냐에 행복의 유무는 달려있다. 물론 불가촉천민들이 자신들의 처지와 삶에 만족하며 살아왔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없었기에 주어지는 권리들에 감사함을 느끼며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꿈을 꾸는 사람들이다. 어찌보면 가장 밑바닥이기에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렇게 믿고 있다. 그렇기에 간디가 그들을 보고 신의 자녀라고 일컬은 것이 아닐까? 

최소한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물을 먹을 수 있고, 하루 종일 빨래하는 직업이 최고의 직업이 아니고, 목에는 깡통을 엉덩이에는 빗자루를 달고 다니지도 않는다. 또한 앞으로의 미래도 충분히 밝을 것이라 꿈을 꿀 수도 있다. 이제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자. 행복하지 아니한가? 만족하며 살자.






 
고함20
고함20

20대의 소란한 공존 [고함20]의 대표 계정입니다.

1 Comment
  1. Avatar
    B4

    2011년 7월 19일 07:17

    불만이 있어야 발전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60년대에 한국이 가난에 만족하거나 80년대에 독재에 만족하며 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저런 사람들도 있으니 우리는 행복하다는 건 가진 자의 논리일 뿐입니다.

    물론 아무런 대책 없는 뷸만을 위한 불만은 지양해야겠지만,

    불합리한 현실에 대한 불만은 필요하고, 마땅히 가져야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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