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아내의 유혹>, <웃어라 동해야>, <하늘이시여>, <너는 내 운명>, 그리고 <욕망의 불꽃>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잘 나가는 드라마라는 것과 막장 드라마라는 점에서 이들은 똑같다. 1990년대에는 트렌디 드라마가 시청률 보증수표였다면, 2000년대인 지금, 흥행하는 드라마 중 절반 이상이 막장 드라마일 정도로 막장 드라마가 대세이다. 진부한 막장 공식, 질질 끄는 전개, 도를 넘는 설정 등으로 인해 시청자들의 비난과 원성이 자자하지만 시청률은 매우 높다. 오죽하면 욕하며 보는 드라마라는 별칭이 붙었겠는가. 이렇듯 막장 드라마가 판을 치는 세상이지만, 다행스럽게도 가족애를 다루며 신선한 소재로 잔잔한 감동을 주는 드라마도 끊임없이 방영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얼마 전 종영한 MBC의 30부작「내 마음이 들리니」이다.


평균 시청률 12.8%로 흔히들 말하는 대박 드라마는 아니었다. 그리고 통속적인 주말 가족 드라마도 아니었다. 할머니 ‘황순금(윤여정 분)’이 일하던 주인집의 지적 장애를 가진 아들 ‘봉영규(정보석 분)’, 그와 결혼한 고미숙의 딸 ‘봉우리(황정음 분)’, 황순금의 딸인 김신애(강문영 분)의 아들이지만 봉영규의 아들로 알고 자라는 ‘봉마루(남궁민 분)’, 이들이 한 집에 모여 한 가족을 이룬다. 즉, 황순금과 봉마루 외에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남남인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의 가족이라는 테두리를 만들어냈고, 등장인물들의 삶을 통해 작가와 연출자는 작품 속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회를 거듭해가며 나직이 우리에게 전해 왔다.

사위가 장인을 죽이고, 불륜으로 태어난 아이가 주연급 캐릭터라는 점에서 여느 막장 드라마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것은 연출자와 작가가 이야기하려는 바를 위한 하나의 장치였을 뿐, 그것이 스토리 전체를 이끌어 가는 핵심 내용은 아니라는 점에서 막장 드라마와는 다르다 할 수 있겠다. 또 이 드라마는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고 외면당하는 사회적 약자 장애인을 주인공화 했다. 작품의 주인공인 ‘차동주(김재원 분)’가 후천적이기는 하나 청각 장애인이라는 점과 드라마에서 큰 역할을 하는 ‘봉영규’는 지적 장애를 가진 인물이고, 그와 재혼 후 얼마 되지 않아 화재로 죽는 ‘고미숙(김여진 분)’ 역시 청각 장애인이다. 이렇듯 다른 막장 드라마에서는 눈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는 요소들 때문에 ‘내 마음이 들리니’는 충분히 신선했고, 또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웃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남들에게 바보라 놀림 당하는 ‘봉영규’는 드라마의 시작부터 끝까지 항상 순수하고 깨끗하며 다른 사람들을 자신보다 먼저 생각하는 배려 깊은 캐릭터였다. 친딸 신애조차도 나 몰라라 하는 황순금을 끔찍이 챙기며, 집 나간 마루를 기다리며 16년째 따뜻한 밥을 챙겨두고 자신은 찬밥을 먹는, 또 마루가 복수심에 불타오를 때 남들은 이해 못 하는 마루를 마음으로 이해했다. 차동주가 청각 장애를 갖고 있단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았음에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비밀을 지켜주는 속 깊은 캐릭터였다. 또 그가 죽어서도 함께 살겠다던 ‘고미숙’은 장애가 있음에도 자신의 딸 우리를 구김살 없이 혼자서 키우고, 결혼 후 자신에게 모질게 대하는 마루를 엄마의 마음으로 이해하며, 낮에는 미용실에서 밤에는 화장품 공장에서 일할뿐만 아니라 그 외 시간에는 집안일도 성실히 하며, 시어머니를 잘 모시는 착하고 맑은 캐릭터였다.

주인공 ‘차동주’는 욕심에서 비롯된 아버지의 패륜을 목격한 충격으로 2층에서 떨어져 머리를 다친 뒤 청력을 잃고 해외에서 16년간 독순술을 익히는 등 사고 전처럼 살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여 돌아온다. 아버지로 인해 청력을 잃었고,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위해 16년간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고생했지만, 복수보다는 아버지의 사죄를 더 바란다. 친형처럼 생각했던 장준하(봉마루)가 복수심에 불타올라 변했을 때도 돌아오리라 믿고 기다린다. 또 남들이 바보라 손가락질하는 봉영규를 자신의 친구처럼 허물없이 대하며, 복수심에 눈 먼 엄마를 어떻게든 되돌려보려 노력하는, 하지만 결정적 순간에는 결단력 있는 모습으로 시청자를 통쾌하게 만드는 캐릭터였다. 또한 봉우리와의 순수한 사랑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장애가 없는 우리가 봉영규처럼 늘 같은 마음을 유지하는 것은 힘들고, 부모에게 항상 효도하기도 힘들다. 또 고미숙처럼 일을 하며 집안일을 하고 자신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 타인을 보듬어 주기도 힘들다. 그리고 차동주처럼 나의 할아버지를 죽인 원수에게 이성적으로 용서를 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이유야 어찌 됐든 마음이 변한 친구를 묵묵히 기다리며, 사람을 순수하게 좋아하는 것 역시 힘들다. 즉, 장애가 없는 사람들도 ‘봉영규, 고미숙, 차동주’ 처럼 살아가는 것은 어렵다. 이렇듯 드라마는 장애를 가진 힘든 상황 속에서도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고 맑게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살고 주변은 둘러보지 못 하고 앞만 보고 뛰어가며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지 못 하는 장애가 없는 정상인 우리에게 ‘당신도 저들처럼 살아보라’ 라고 권유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