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새 나라의 희망입니다 모두들 힘내세요! 야호!” 요즘 우리나라에 청년희망 대 프로젝트라도 하는 것일까. 온 나라가 청춘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주는 것이 ‘대세’인가 보다. 허나 이러한 청춘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나라에 가도 칠흑 같은 자신의 앞길에 고뇌하는 청춘들은 존재하며 이들은 오늘도 자기 삶을 위해 달려가고 있을 것이다. 이웃 나라 일본의 청년들도 예외는 아닐 거다.

차별의 사회 그리고 문제아

가네시로 가즈키의 <레벌루션 NO3>는 삼류고등학교에 다니며 삼류로 낙인찍힌 고등학생들의 성장소설이다. 이들은 일본이라는 사회에 만연한 차별 속에 그들만의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청년’들이다. 옆 동네의 명문 고등학교 학생들처럼 사회에서 바라는 ‘희망의 새싹’이 아닌 ‘귀찮은 잡초’의 삶이지만 말이다. 이렇듯 그들이 속한 사회는 학력이라는 선을 그어놓고는 삼류고등학교와 명문 고등학교를 노골적으로 갈라놓는다. 명문고 출신은 ‘도련님’소리를 들으며 부모님과 사회의 시선이라는 빽을 지고 양지를 거닌다. 하지만 빽도, 심지어 머리에 든 것도 없는 우리의 주인공들은 음지로 내 몰리고 만다.

그런 그들에게 어느 날 생물 선생이 흥미로운 제안을 하나 한다. ‘너희들, 세상을 바꿔보고 싶지 않냐?’ 그 방법은 공부 잘하는 명문 여고의 여학생들과 자신들의 유전자를 섞는 일명 ‘유전자 전략’ 이다. 그들에게 학력의 DMZ를 넘을 수 있다는 이 말은 옆집 누나의 속삭임보다 더 달콤했을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이날부터 그냥 저돌적으로 명문 여고의 축제로 쳐들어가게 된다. 비루한 자신의 유전자를 세상에 남겨보겠다는 수컷들의 생존본능이 폭발하는 순간이다. 결과적으로 47명중에 36명이 짝을 맺는데 성공하게 된다. 하지만 이들의 신분이 학생이기에 당장에 표면을 자극하는 차별은 학력일 것이다. 이들이 졸업을 하게 되고 사회로 나가게 된다면 학력뿐만이 아니라 인종, 돈과 같은 높은 벽들이 주인공들에게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다. 결국 이들의 ‘유전자 전략’은 한낱 문제아들의 작은 발버둥으로 비치는 것이 그들의 사회다.

삼류들의 혁명

삼류고등학교의 학생들인 <레벌루션 NO3>의 주인공들은 스스로를 좀비라 부른다. 학력사회에서 좀비수준에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고 죽여도 죽을 것 같지 않다는 이유로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그런데 좀비라는 거북한 명찰을 단 이들은 오히려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한다. 바로 자신들이 인디아나 존스나 존 맥클레인처럼 죽지 않는 영화의 주인공의 자질을 갖췄기 때문이다. 밝고 건강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삼류들이다.

세상은 3등에게 빛을 주지 않는다. 1등은 수석이라는 이름으로 박수갈채를 받고 2등은 차석이라는 이름으로 기대를 받는다. 그리고 남은 3등에게는 어떠한 조명도 비춰지지 않는다. <레벌루션 NO3>라는 책의 제목은 사실 그것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책을 덮을 때까지 알 수 없다. 개인적으로 3등, 삼류의 우리 주인공들이 일으키는 작은 레볼루션(혁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건강한 사고를 지니고 편법 따위는 쿨하게 거부하는 이런 청춘이 일으키는 혁명, 멋지지 않을까? 비록 견고한 차별 사회에 ‘발버둥’으로 치부되는 나비의 날갯짓 정도밖에 안되지만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믿는다. 이러한 청춘들이 있기에 지금 당장은 사회가 바뀌지 않더라도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이 되는 그 날을 기대하는 것이다. 너 이자식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