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범이 자신의 공연에서 나치 제복을 입으면서 한동안 큰 논란거리가 됐었다. 이에 대해 임재범 측에서는 ‘Paradom’ 이라는 반전을 주제로 한 노래를 부르기 위해 역설적으로 나치 제복을 입었으며, 덧붙여서 “돈 세이 히틀러. 히 이즈 데드” 라는 말을 했다며 항변했다. 그 이후 네티즌들과 진중권 교수, 김형석 작곡가등의 설전이 있었으나 어느새 잠잠해졌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의문은 남는다. 나치 제복이 과연 ‘평화’와 ‘반전’을 역설적으로 증명하기 위해서 효과적인 수단이었는지, 그리고 임재범이 퍼포먼스의 의도와 달리 오히려 나치 제복의 미학적 효과를 더욱 부각시킨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77펑크’와 나치


임재범이 록커라는 사실에 비춰볼 때, 그는 영국의 펑크 밴드 ‘섹스피스톨즈’를 주축으로  한 ‘77펑크’ 밴드들의 나치 조롱 퍼포먼스를 참고로 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77펑크’ 밴드들은 음악적으로는 현재의 ‘펑크’의 형태를 정립했으며, 사회적으로도 사회에 대한 저항과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들이 나치 마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거나 나치 철십자 문양을 달고 나오는 이유는 나치를 조롱하고 비웃기 위해서다. 마찬가지로 임재범 자신도 그런 식으로 퍼포먼스를 펼치면 된다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말로만 히틀러가 죽었다고 말하는데서 역설적인 표현이 가능해지는 것이 아니다.


‘섹스피스톨즈’를 예를 들면 그들의 대표곡인 ‘Anarchy In The UK’에서 그들은 ’I am an anarchist‘ 라는 가사를 통해 아나키스트임을 자청한다. 그들은 제도를 부정했고 온갖 기행을 일삼았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당시 imf 체제 영국에 대한 신랄하고 과격한 저항으로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속칭 ‘미친짓’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들이 나치 문양이 새겨진 옷을 입고 나와도, 아무도 그들을 나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마약하고 술 먹고 공연하면서, 연주도 제대로 못하는 (‘섹스피스톨즈’의 베이시스트 시드 비셔스는 처음 밴드에 들어올 때부터 연주를 전혀 못했다.) 밴드를 어딜 봐서 나치즘을 신봉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들의 막장스러운 행동과 괴기한 퍼포먼스만으로도, 그들이 입은 옷의 나치문양을 충분히 조롱할 수 있었다.





 



 



 왼쪽 사진은 위에서 말한 섹스피스톨즈의 베이시스트 ‘시드 비셔스’
 오른쪽 사진은 ’77펑크’ 주요 밴드중에 하나인 ‘The Clash’의 ‘Anti Nazi League’ 공연 사진

나치 제복이 잘 어울렸던 임재범


70년도 펑크록커들의 곡은 대체로 자유분방하면서도 가볍다. 가사는 ‘파시스트 정권이 널 저능아로 만들었어.’ 정도로 신랄하며, 위에서 말했다시피 무대위에서의 태도내지는 퍼포먼스도 제 멋대로인 것을 넘어서서 자기파괴적이다. 그러나 임재범의 음악이나 태도는 다르다는 것이 문제다.


임재범이 왕년에 불렀던 메탈 넘버들을 살펴보면 메탈 특유의 강렬하고 무거운 느낌이 잘 나타나는데 이번에 불렀던 ‘paradom’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더구나 가사까지 영어라서 가사를 모르고 이 곡을 받아들였을 경우에,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는지 쉽게 알지 못할 것이다. 또한 임재범은 무대위에서 범접할 수 없는 강렬한 아우라를 내뿜는 가수다. 실제로 자신만만하고 강인한 모습을 표출하는 것이 하나의 퍼포먼스가 된다. ‘호랑이’라는 별명이 괜히 나온것이 아니다.


그가 나치 제복을 입었을 때 메시지가 명확하게 전달이 안되고, 오히려 ‘멋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을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어야 했다. 헤비메탈 록커의 남성성 표출을 오히려 나치 제복이 도와주는 느낌을 받았을 정도였다. 임재범은 역설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했을지 모르겠지만, 본의 아니게 이것이 ‘멋있는 복장’이 되어버리면서 나치 제복의 미학을 오히려 대중에게 상기시켜주는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임재범은 손을 쫙 펴고 나치식 경례까지 하면서 나치 제복의 멋을 한껏 드러냈다. 단순히 반전의 의미를 담은 노래를 부른다고 해서, 또는 히틀러를 부정하는 말을 한다고 해서 ‘평화’와 ‘반전’을 상징하는 퍼포먼스를 했다고 할 수 있을까? 나치 제복과 같이 민감한 소재를 다룰 때는 조심해야 한다. 적어도 이것을 입었을 때 대중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인식을 하고 있어야 한다.


 


꼭 나치 제복을 입어야만 했는가



임재범이 일제시대의 제복이나 순사복을 입었으면 어땠을까? 이유 불문하고 야유가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런데 사실상 임재범이 입은 나치 제복은 일제시대의 제복, 순사복과 의미상으로 크게 다르지가 않다. 그러므로 더욱 나치 제복을 입는데 신중을 기했어야 한다. 나치 제복을 입었으나 역설적으로 평화를 외치고 싶었다면 70년대 펑크록커들처럼 음악, 가사, 태도 모든 면에서 반 나치스러워야 했고, 누가 봐도 불편하지 않았어야 한다. 그러나 임재범은 ‘반 나치’ 나 ‘아나키스트’도 아니었으며, 나치를 따라한 다음, 그것을 부정하는 말을 하면서 옷을 벗는 단순한 퍼포먼스를 하기에 급급했을 뿐이다. 그렇게 위험하고 민감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말이다.


네오나치거나, 대중들에게 자신들의 정치적 색깔에 대해 모호하게 표현하기 위해 나치를 차용하는 외국밴드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임재범의 경우는 아니다. 평화를 말하는 다양한 퍼포먼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왜 나치 제복을 입으면서 역설적으로 평화를 말해야 했는지 그 당위성을 스스로 증명해야 했다.


하지만 임재범은 “굳이 그렇게 해야만 했을까?”라는 의문에 아무런 답을 주지 못했다. 그는 나치 제복을 입으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싶었을 것이다. 록커답게 남들과는 다른 방식의 퍼포먼스를 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다만 나치 제복을 자신이 입었을 때 그것을 보고 대중들이‘멋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예상하지 못한 것 같다. 아니면 충분히 예상을 했지만 윤리적인 문제가 없으므로 괜찮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전체주의를 비판하려는 의도의 퍼포먼스가, 오히려 전체주의 미학을 차용하는 형태를 띄어버렸다는 점에 있어서 이번 퍼포먼스는 완전한 실패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