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는 20대여 헌책방에 가자, 헌책방 프리덤 <上>에 이어진 기사입니다.

나눔의 헌책방


하루를 쉬고, 다시 헌책방을 찾았다. 이번엔 광화문이다. 광화문역 4번 출구로 나와 조금 걷다보면 르메이에르 빌딩이 나온다. 그 건물 지하 2층으로 가면, 조금은 어수선한 헌책방이 기다리고 있다. <아름다운 책방> 이다. 앞의 두 헌책방보다 넓은 듯 했으나 왠지 모르게 어수선했다. 책 정리 상태는 깔끔했다. 다만 상태가 좋은 책과 안 좋은 책을 섞어 꽂아놔 정리가 덜 된 느낌을 주었다. <상태양호> 라는 라벨이 붙은 책장이 따로 있었지만, 유북에서만큼 깔끔한 책은 찾기 어려웠다.

책 이외에도 이러한 물품들을 팔고 있었다.


 


이곳은 아름다운가게 재단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책 이외에도 CD, 공정무역 커피 등을 팔고 있었는데, 판매수익은 책방 이름에 걸맞게 이웃돕기, 헌책방 확장 기금, 도서관 지원 기금 등에 쓰인단다. 또 읽은 책을 기증하면 마일리지를 준다고 한다. 그 마일리지로 다시 헌책을 구매할 수 있다. 아름다운 순환이다.


매장을 둘러보니 왜 분위기가 어수선했는지 알 수 있었다. 매장 한 쪽에 어린이 독서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어린아이들은 책을 읽으면서 고개를 들어 엄마에게 이것저것을 묻는다. 아이들이 좋아할 원색의 의자와, 원색의 아동서적이 눈을 피로하게 했지만, 책 읽는 아이들을 보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책을 사는 것만 해도 기분 좋은 일이거늘 내 구매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아름다운 책방은 광화문 이외에도, 대학로, 파주 등에도 있다고 한다. 책도 사고 남도 돕고, 가게명처럼 참 아름다운 책방이다.

대안공간으로서의 헌책방


아름다운 책방을 뒤로 하고 숙대입구역으로 향한다. 지하철을 내려 역을 나서는 순간, 천지개벽할 폭우가 쏟아졌다. 갈 길 바쁜 사람들은 뛰면서 계단을 내려갔고, 나는 터벅터벅 숙명여대를 향해 걸어간다. 여대 앞이라 그런지 길가에는 카페가 많았다. 별 카페, 콩 카페 같은 프랜차이즈 카페부터, 나지막한 개인 카페까지. 퍼붓는 비를 맞으면서 걷고 있자니 잠깐이라도 앉아 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우연일까. ‘앉아 쉬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자마자 ‘책 읽는 방 토리’를 발견했다. 파란 파라솔 밑에 책들이 잔뜩 모여 있었고, 오른쪽을 보니 흰색 간판에 파란색으로 ‘책 읽는 방 토리’ 라는 글씨가 쓰여 있다. 계단을 내려가자 낯익은 풍경이 보인다. 벽면은 책장으로 둘러쌓여 있고, 그 책장을 빽빽이 채운 책들. 그리고 주인아저씨로 보이는 분은 박스에서 책을 한 권 한 권 꺼내며, 연필로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숙명여대 입구 바로 앞에 위치한 토리, 작지만 있을 건 다 있다!


그러나 신기했다. 헌책방 가운데에 8명쯤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는 것. 그리고 테이블 가운데엔 노래방 새우깡이 트여진 채 올려져 있었다. 그리고 테이블 옆에는 정수기와 커피가 보인다. 유기농 커피는 무료라는 쪽지가 인상 깊다. 하긴 애초에 이곳은 ‘책 파는 방’ 이 아닌 ‘책 읽는 방’ 이라는 상호를 가지고 있었다. 지칠 때 잠시 와서 과자도 먹고 커피도 마시며 쉬고 가라는 배려가 돋보였다.


카페형 헌책방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발 디딜 곳 없이 쌓인 책 사이에서 보물을 찾아내는 것이 헌책방의 묘미였다면, 카페형 헌책방은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곳이 되었다. 토리 다음으로 찾은 곳은 응암동의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이었다.

허름의 극치, 그러나 안은 여느 카페 못지않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은 정말 이상한 곳이었다. 그럴듯한 간판 하나 없고, 건물 문에 붙여 있는 A4 종이 하나만이 이곳에 헌책방이 있다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 뿐인가. 계단을 내려가 문을 당기자마자 들어오는 풍경은 헌책방이라기보단 차라리 작은 카페 같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영문판이 포개져 있었고, 그 옆으로 자그마한 장난감 인형들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이 곳 역시 토리처럼 매장 가운데에 커다란 테이블이 있었다. 커피와 간단한 음료도 팔고 있었다. 가격은 이천원. 책만 반값인 줄 알았더니, 음료도 반값이다. 이참에 등록금도……


주인장의 취향이 그대로 들어나는 책들이었다. 자기계발서나 참고서는 아예 없고, 문학도 동유럽이나 한국소설 위주의 책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책방 곳곳에 주인장의 개구진 취향이 반영된 자그마한 소품들이 눈에 띄었다. 80년대에나 썼을 아날로그 TV부터, 직접 만들었다는 엽서까지. 그 소품들을 보고 있자니 ‘토리’의 새우깡이 생각난다. 헌책방에서 문화와 인간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토리’와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은 단순한 책방으로서의 기능뿐 아니라, 카페, 회의장의 기능까지 수행한다. 원하는 사람에겐 공간을 대여해주기도 하고, 가끔씩 책 토론, 연주회 등의 행사를 진행하기도 한다고 한다. 헌책방이 지역사회의 대안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증거다.

귀여운 소품들, 주인님의 개구진 취향이 잘 드러난다.


20대여, 헌책방에 가자


양일간 다섯 곳의 헌책방을 다니며 9권의 헌책을 구매했다. 만약 헌책방의 단점이 있다면 ‘충동구매’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소장욕구를 참을 수 없었다. 구매한 책의 소비자가를 합치면 십만원이 넘는다. 내가 실제로 지불한 총비용은 45,000원. 물론 책의 상태는 모두 A급이다.

총 105,800원의 책들, 이런 걸 보고 득템이라 하는걸까. (자랑하고 싶었다.)


물론 헌책방이 가격 면의 메리트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 헌책방이 ‘헌책을 파는 곳’ 이었다면 이제 헌책방은 ‘문화를 파는 곳’ 아니, ‘문화를 나누는 곳’ 이 되어가고 있다. ‘고리타분하고 먼지 나는’ 이미지의 헌책방은 옛날 말이다. 헌책방도 공씨책방과 같은 전통 헌책방, 유북, 북오프 등의 프랜차이즈 헌책방, 토리,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등의 대안공간형 헌책방 등으로 분화되고 있고 우리는 이 중에 마음에 드는 곳을 골라잡기만 하면 된다.


비싼 교재 값에 지친 그대, 최저임금보다 비싼 자릿세를 줘가며 별카페 콩카페의 커피를 울며 겨자먹기로 마시는 그대, 그냥 뭔가 신기한 곳에 가보고 싶은 그대, 가까운 헌책방으로 달려가라. 헌책방 프리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