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의 시구를 빌려 오자면,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시민이었다. 2002년과 2008년, 내 어미라 할 광화문에서 시민들은 들끓었으며, 그때 나를 품었던 자궁인 세종로는 특유의 정치적 활력이 넘쳐 흐르는 분출구였다. 나는 내 어미의 자궁에서 시민의 외침과 열기를 느끼며 세상에 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나를 키운 것은 시민이었으되, 나를 만든 것은 시민이 아니었다. 나는 서울시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들은 나를 세종로에서 제왕절개 수술을 하듯 끄집어내었으며, 나는 거대한 차선 가운데에 길쭉하게 세워졌다. 그들은 나에게 ‘광장’이란 이름을 붙였다. 최인훈이 ‘광장은 대중의 밀실’ 이라 썼던, 그 광장이다. 그리고 그 광장이란 이름을 가지고 태어나는 순간, 나는 죽음을 잉태한 채 태어나버린 존재가 되었다.

나는 광장인가, 세계에서 가장 큰 중앙분리대인가.


‘죽음을 잉태한 출생’을 이해하기 위해선 나에게 이름 붙여진 ‘광장’이란 단어를 먼저 살펴보아야 하겠다. 광장에는 “도시 속의 개방된 장소로서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다.”라는 정의가 내려져 있다. 이 광장의 정의로 보았을 때, 나에게 ‘광장’이란 이름을 붙인 것은 서울시의 오만이었다. 나는 한편으론 열려 있는 장소이나, 16차로 차선 가운데에 우뚝 세워져 의지를 갖지 않고서는 올 수 없는 닫힌 장소이며, 많은 사람이 모일 수는 있으나 자유롭게 이용은 할 수 없는 공간이다. 길게 만들어진 나는, 시민들에게 걷기를 강요하며, 또 그들은 분수대 위에서 뛰어놀 수는 있어도, 내 위에서 그들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내가 ‘광장’이란 이름을 가지고 태어난 이상, 나는 ‘광장’으로서는 죽음을 잉태한 채 태어난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나’에 대한 서울시의 양육방향은, 더더욱 ‘광장’으로서의 나를 죽음으로 내몬다. 보도자료와 홍보물에서 그들은 나를 ‘역사·문화 체험 공간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한 사업으로 추진’하여 ‘국가를 상징하는 거리의 의미를 부각’ 시키겠다고 말한다. 그 말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나의 갈비뼈를 따라 역사 물길을 만들고, 역사를 역행해, 내 위에 조선시대의 육조거리를 복원시키겠다고 말한다. 덕분에 나는 만국박람회의 한국관에서나 나올만한 일종의 역사홍보물이 되었다. 게다가 나의 배꼽에 똬리를 틀고 앉은 세종대왕 동상이라니. 미술이론가 마일스는 동상은 “권력자의 위치에서 역사를 명상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을 빌자면 모든 동상에는 필연적으로 권력과 역사가 내재되어 있다. 게다가 나를 잉태한 세종로는 전통적으로 정치권력이 자신들의 권위를 내세우고자 각종 조형물을 설치하고, 해체했던 곳이다. 일제의 조선총독부나, 박정희의 이순신 동상, 그리고 김영삼의 총독부 해체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렇게 ‘정치적인’ 거리에 세종대왕 동상이 다시 설치되었다. ‘광장’으로서 나는 시민의 터전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동상’은 시민들을 굽어 내려보고, 그것이 설치된 나는, 다분히 권력적이다. 그렇게 나는 점점 ‘광장’이 아닌 서울시의 ‘랜드마크’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의 '랜드마크'화에 방점을 찍은 세종대왕 상, '광장'과 '동상'은 왜 항상 붙어다녀야 할까.


내가 랜드마크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480억짜리 제왕절개로 태어나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서울시는 나를 무척이나 아낀다. 때문에 나에 대한 조례를 따로 두어 나를 함부로 다루는 일을 엄히 금한다. 이름 하여 ‘광화문광장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 이다. 이 조례에 따르면 나는 시민의 건전한 여가선용과 문화 활동을 지원하는 공간이다. 내 어미인 광화문이 시민의 정치적 의사를 전달하는 공간으로 활용되었음을 떠올려보면, 급격한 변화다. 한 번 더 ‘광장’으로서의 나의 죽음을 생각하고 있을 찰나, 조례의 나머지 조항들이 내 죽음에 쐐기를 박는다. 나의 사용은 시장의 허가가 있어야 하며, 허가된 이후에도 시장의 결정에 따라 취소할 수 있다는. 때문에 더 이상 나는 ‘광장’이 아니다. 시민 없는 광장은 광장일 수 없기에, 그리고 그 시민이 빠져나간 광장에 ‘국가’와 ‘홍보’가 들어찼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나는 나의 복부 위에서 스키점프 대회가 열리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여름이 되어 내 위에 설치된 분수대의 물줄기 아래서 뛰노는 아이들을 보면서도 기뻐할 수 없었다. 나는 시민에게 열려있지 않고, 국가에게 열려있는 공간이었다. 차라리 내가 ‘광장’ 이 아닌 ‘광화문공원’이었으면 이런 존재론적 갈등은 느끼지 않아도 됐을 터인데.

나의 양육방향에 반발하다 잡혀가는 시민들. 사진은 @오마이뉴스


이처럼 나는 ‘광장’의 이름을 가지고 태어났을 때부터 숙명적으로 죽음을 향해 가고 있었다. 국가의 역사가 흐르지만 시민의 의사가 흐르지 않는 죽음의 물줄기다. 내 품 안에 동상으로 세워진 이순신은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나는 죽음으로 향해가는 나를 더는 볼 수 없어, 마지막으로 호소한다. “내 죽음을 알려 달라.” 라고. ‘광장’이 시민의 것이라면 역설적으로 나를 다시 ‘광장’으로 살게 할 수 있는 것 역시 시민의 힘 밖에는 없다고. 나를 죽게 내버려 두지 말라고. 두 번째 생일을 향해 달려가는, 아니 ‘광장’으로서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광화문 광장이 ‘시민들에게’ 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