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나요? – 3차 희망버스 동행기 <上>에 이어서 적습니다.

#. 밤새 외친 이 사람들의 희망
2차선을 건너 사람들을 따라가니 어제 저녁 부산역 앞 광장에서 봤던 수많은 사람들이 다시 눈앞에 나타났고 저 멀리에는 또 다른 폴리스라인이 보인다. 시계를 보니 1시 54분. 3시간을 돌아 걸어온 것이다. 사람들은 자리를 펴놓고 연설을 듣고 있었다. 연설은 각 단체 대표들의 자유연설이었다. 언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나 싶다. 어떤 아저씨는 김진숙 위원을 두고 제2의 전태일이라 칭하신다. 전태일이 나서서 노조운동이 합법화 됐다면, 김진숙이 나서서 노조운동에 대한 일반 국민의 관심을 드높였다는 것이었다.

폴리스 라인에 막혀 도로 위에 모인 수많은 희망버스 참가자들. 바로 앞이 한진중공업이다.

폴리스 라인에서는 스피커를 통해 ‘여러분은 현재 도로를 불법 점거하고 야간에 시위를 함으로써 주민들에게 많은 불편을 주고 있으니 빨리 해산하시기 바랍니다’라고 수차례 경고방송을 내보냈지만 여기 모인 사람들에게는 전혀 들릴 것 같지 않았다. 
 

 한진중공업 앞 폴리스 라인. 경찰들도 지쳤는지 앉아서 쉬고 있다

오전 3시 10분. 빨간 점이 하나 둘 지나가더니 곧 그 수가 많아졌다. 빨간 점은 바로 풍등이었다. 풍등날리기 행사를 진행한 것이다. 풍등은 신기하게도 한진중공업 방향으로 곧장 날아갔다. 바람이 그 쪽으로 불고 있었다. 경찰은 ‘화재의 위험’을 알리며 중단할 것을 경고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인근의 전선줄과 가로수, 주택의 창문 등에 걸려있는 풍등이 조금 있었다. 행사 진행 측도 즉시 풍등날리기 행사를 중단했다. 하지만 이미 하늘로 올라간 빨간 점들은 하늘 위 별처럼 검은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밤하늘을 수놓은 빨간 풍등들은 희망버스 참가자들로 하여금 잠시나마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에 잠기게 했다

풍등날리기 행사를 끝으로 공식적인 집회는 마무리됐다. 오전 4시부터는 각자가 소속된 단체별로 모여서 회의나 자유발언 등을 진행했고, 도로 옆 수변공원에서는 또다른 스피커와 조명이 설치되더니 밴드들의 공연이 시작됐다. 젊은이와 어르신들이 흥겨운 음악에 맞춰 모두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공연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밴드의 흥겨운 노래소리에 남녀노소 할것없이 모두가 뛰고 춤추었다


#. 한 영도 주민의 소란에 순식간에 쏟아져나온 수많은 전경들
새벽 5시 45분. 한 사람이 폴리스 라인 너머에서 소란을 피운다. 자신은 영도 주민이라고 했다. 골목길로 올라가라고 해서 갔는데 경찰들로 막혀있었다고 했다. 다시 내려오니까 폴리스 라인이 골목길 입구 앞으로 전진해있어 ‘지금 날 가두는 거냐’며 소리를 지른다. 희망버스 참가자들과 몇몇 기자들이 폴리스 라인 쪽으로 다가왔다. 참가자 중 몇 명이 폴리스라인을 사이에 두고 경찰들과 언성을 높인다. 경찰들이 조금씩 폴리스 라인 밖으로 나오더니 순식간에 엄청 많은 수로 불어났다.  

마찰이 빚어지고 있는 폴리스 라인.

경찰 몇 명이 캠코더와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고 있었다. 채증하는 것이었다. 55분, 경찰의 경고방송이 다시 시작됐다. 폴리스 라인을 넘을 시 공무집행 방해죄로 연행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잠시 뒤 다시 조용해진 현장. 이렇듯 마찰이나 충돌은 산발적이고 또 잠깐이었다. 새벽 6시 25분. 어떤 참가자가 갑자기 폴리스라인을 임의로 철거하기 시작한다. ‘인권감시단 변호사 모임’조끼를 입은 한 여성은 경찰에 채증될 수 있으니 뒤로 빠져 있으라고 한다. 나중에 한 명이 연행됐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 드디어 만난 85호 크레인과 김진숙 위원
지난 밤 12시 반쯤 김진숙 위원과 전화통화가 이루어져 잠시 분위기가 숙연해지기도 했다지만, 실제로 85호 크레인 위의 김진숙 위원과 만난사람은 거의 없다. 경찰들이 철저히 막고 있기 때문이다. 김진숙 위원이 부당한 정리해고의 철회를 촉구하는 고공농성을 시작하며 크레인에 오른지 207일 째 되던 7월 31일 아침 8시 10분. 조용하던 현장이 다시 힘찬 구호소리와 노래소리로 뒤덮였다. 그리고 8시 56분. 한진중공업 앞 도로에서 진행한 공식집회는 마무리됐다. 지난 밤 누군가가 말해주었던 ‘강한 돌파 예고’는 없었다.

사회자의 안내로 각자 대중교통을 타고 나가기로 한다. 해산은 아니었다. 또다른 곳에서의 일정이 예고됐다.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뛰어가서 남포동행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출발하는가 싶더니 곧 멈춘다. 창문을 열어 앞을 보니 수많은 경찰들과 폴리스 라인이 또 형성돼있었다. 다른 참가자들은 도로를 건너 언덕으로 향했다. 버스에 타고 있던 참가자들도 일부 내려서 언덕으로 향했다. 버스 안 영도 구민으로 보이는 한 젊은 여성은 얼굴 가득 짜증난 얼굴이었다. 버스 기사는 침착하게 본사와 연락해보고, 경찰들과 얘기를 해보더니 30여 분 후 버스를 겨우 출발시킨다.

버스를 타고 폴리스 라인을 넘어 태종로를 따라 갔다. 폴리스 라인 너머에는 아주 많은 수의 경찰 버스와 경찰들이 대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버스의 위성안내시스템은 이번 정류장이 ‘한진중공업’이라고 알려주지만 버스는 정차하지 않았다. 버스 안의 누군가가 김진숙 위원이 있는 크레인이 보인다고, 나와서 손 흔들고 있다고 외쳤다. 빠르게 지나가는 버스 창 밖으로 김진숙 위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파란색 옷을 입고 모자를 뒤집어 쓴 채 나와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지난 밤, 이들이 그토록 보고자 했던 김진숙 위원을 드디어 만나는 순간이다. 사람들은 ‘김진숙 화이팅’을 외쳤다. 그렇게 우리는 김진숙 위원을 만났고, 빠르게 헤어졌다.

다시, 롯데백화점 앞. 어제 밤에는 3시간 걸어서 돌아 왔던 길을 버스로 10분도 걸리지 않아 돌아 나왔다. 경찰 버스는 길가에 줄줄이 이어서 주차돼 있었다. 경찰 버스 주차 행진의 끝은 한진중공업홀딩스, 즉 모든 문제의 실마리를 갖고 있는 조남호 사장이 근무하는 본사 사무실 앞이었다. 그들은 그 곳에서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었다. 나는 그들 무리에서 빠져나와 집으로 향하는 시내버스에 올라탔다. 창문 밖의 풍경은 여느 때의 부산과 똑같은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