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며칠 남지 않았다. 대회조직위원회는 몇 달 전, 특이하게도 영화감독에게 대회 홍보를 목적으로 영화 한 편을 만들어 줄 것을 권유했다. 그것도 독립영화 감독 윤성호에게 말이다. 윤성호 감독을 아는 사람은 영화 <은하해방전선>, 시트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등을 통해 그의 영화만의 매력을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독특하고 톡톡 튀는 대사, 배우들의 유쾌하고 개성 넘치는 연기, 페미니즘 적이면서 동성애도 다루고, 사회적인 문제도 다루면서 전혀 무겁지 않은 그만의 묘한 스토리! 하지만 모르는 사람도 아래의 영화 포스터를 보고나면 영화가 풍길 분위기를 대충 감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포스터만큼이나 독특하고 유쾌한 화법을 갖췄다고 정평이 나 있는 독립영화 감독 윤성호, 그런 그가 이번엔 스포츠 영화를 택했다. 그가 육상종목을 소재로 얼마나 독특하게 이야기를 만들어냈을지, 벌써부터 궁금하지 않는가?



<영화 ‘도약선생’의 포스터. 영화를 보기 전과 보고 난 뒤의 느낌이 또 다르다>
 


성불구인 코치와 짧은 키에 만년 꼴찌, 운동신경 없는 운동선수들이 각자의 목표를 향해 도약하는 모습을 그린 영화
첫 번째 여자주인공 나원식(나수윤 분). 그녀가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조금 특이하다. 원식은 동성인 룸메이트 우정(이우정 분)과 같이 지내다 얼마 전 헤어지게 됐는데, 원식은 어떻게 하면 우정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을까 고민하며 그녀의 뒤를 쫓았다. 우정 앞에 선 원식에게 우정은 “뭔가 크고 높은 것, 좀 늠름한 것”을 보여 달라 말한다. 때마침 “장대높이뛰기는 늠름한 운동”이라는 전영록 코치(박혁권 분)의 말에 원식은 솔깃해한다. 곧바로 트레이닝을 시작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녀는 운동신경이 없다.

두 번째 여자주인공 박재영(박희본 분)은 원래 초등부 육상선수였다. 하지만 그녀는 160cm가 안되는 짧은 키 때문인지 나가는 대회마다 꼴찌를 도맡아 했단다. 운동을 그만두고 이제 스무 살이 된 그녀의 꿈은 ‘아이돌’이다. ‘아이돌’이 돼서 대학도 가고, 돈도 벌고 싶단다(박희본은 실제로 아이돌그룹 ‘밀크’ 출신). 김연아는 집에 X이 좀 있어서 성공한 케이스이며, 자신은 X이 없어서 운동으로는 자기 집안의 계급을 바꿀 수 없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그녀는 운동을 다시 시작하자는 전영록 코치의 끈질긴 권유에 못 이겨 마지못해 다시 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세 번째 주인공 전영록 코치는 <도약선생>에서 가장 독특한 인물이다. 영화 말미의 한 발고자에 따르면, 그는 군대에서 고환을 다쳐 성불구가 됐고 그로 인해 정신이상자가 됐다고 한다. 그는 그가 초등학교 육상부 선생님으로 있을 때 자신이 가르쳤던 아이 재영을 찾아가 운동을 다시 시작하자고 말한다. 종목은 바로 ‘여자장대높이뛰기’! 그리고 놀이공원으로 찾아간 그는 ‘토끼점프’라는 놀이기구 앞에 서있는 원식에게도 같이 운동을 시작할 것을 권한다. 재영은 자신의 키가 이렇게 작은데 어떻게 외국선수들의 기록을 따라잡겠냐며 투덜대지만 전영록은 “정신의 레벨로 뛰어넘자”고 말한다.


이들은 같이 모여 각자의 목표를 향해 도약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세 사람 모두 어딘가 모자란 점이 있다. 그렇기에 이들이 각자의 목표를 이루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런 그들에게 전영록 코치는 ‘파아란 높은 가을하늘, 그 곳, 그 곳. 그 아무 것도 없는 곳을 향해 우리 함께 가보자’라는 뜬구름같은 말로 설득하며 괴상한 트레이닝을 이어간다.


<왼쪽부터 성불구인 전영록 코치, 짧은 키 만년 꼴찌 박재영, 운동신경 없는 운동선수 나원식>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는 영화
영화는 대부분 현실에 있을법한 이야기를 스크린 상으로 옮긴 것이다. 영화 내용은 대부분 현실에 있을법한 인물들이 현실에 있을법한 이야기들을 그려나가는 식이다. 이런 내용의 영화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영화 내용은 지어낸 이야기일지언정 적어도 영화 속 등장인물에게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즉, 영화 속 이야기가 아무리 허무맹랑하더라도 영화 속 등장인물한테는 그것이 현실일 수밖에 없다. 물론 <식스센스>와 같은 끝의 반전으로 영화 내용 전체를 주인공의 착각이었다거나, 꿈이었다거나 하는 식의 영화도 많다. 그래도 이런 영화들을 보고 나면 어디까지가 착각이거나 꿈이었고, 어디까지가 등장인물이 실제 자각하고 있는(착각에서 빠져나온) 현실인지는 최소한 알게 되지 않나.


<영화 ‘식스센스’는 2009년 누리꾼들이 뽑은 ‘마지막 반전이 가장 충격적인 영화’ 1위로 선정됐다>


그러나 영화 <도약선생>은 다르다. 일반적인 영화의 화법과는 어딘가 차이가 있다. <도약선생>은 첫 장면에서부터 그것이 아예 ‘허구’임을 밝힌다.


“오랜 룸메이트와 헤어지고, 온종일 그 아이의 뒤를 쫓는 꿈을 꿨다”(나원식의 대사 中)
“중학교 때 갔던 수련회의 교관님이 감독으로 나오는 꿈을 꿨다”(박재영의 대사 中)
“좋은 자원을 찾으러 놀이동산에 갔다가 실랑이를 벌이는 꿈을 꿨다”(전영록의 대사 中)

<도약선생>의 이야기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누군가와 사랑을 하고, 이별 하고, 갈등을 겪고, 또 목표를 향해 나아가지만 “꿈을 꿨다”로 인해 그 모든 것이 ‘허구’가 되어버린다. ‘꿈을 꿨다’로 시작한 한 등장인물의 이야기에 몰입하다보면 또 다른 인물의 ‘꿈’ 이야기가 시작되고, 또 그 이야기에 집중하다보면 어느새 또 다른 이야기가 전개된다. 결국 영화를 보다보면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다. 이처럼 <도약선생>은 뭐가 뭔지 모를 모호함이 매력적인 영화다.        
 

이들의 꿈, 도전, 열정이 눈부신 진정한 스포츠 영화
사실, 영화 속 주인공들조차도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반신반의한다. 나원식은 전영록 코치의 이상한 트레이닝을 따르다가도 “이렇게 하면 돼요? 이렇게 하면 정말 높이뛰기가 돼요?”라고 재차 묻고, 박재영은 “뭘 어떻게 하라는 말인데! 아, 진짜 싸이코!!”라며 고함친다. 그리고 이 둘은 “전영록 코치에게 뭔가 말려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라고 속마음을 내비치기도 하고, 전영록 코치 또한 “문득 내가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라고 고백하기도 한다.


별 볼일 없는 주인공들이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설정한 뒤 각고의 노력 끝에 그 일을 성취해낸다는 식의 이야기에 우리는 익숙해져 있다. 그만큼 우리는 그러한 이야기 전개 방식을 많이 봐왔고, 또 거기에 많은 재미와 감동을 받는다. 영화 <도약선생>의 속의 주인공들도 표면적으로는 여자장대높이뛰기 세계 신기록 수립이라는 넘보지 못할 목표를 설정해뒀다. 이 때, 윤성호 감독이 조금이라도 극적인 감동을 보여주길 원했다면 세계 신기록 수립은 아니더라도 장대높이뛰기 대회에 실제로 출전하는 장면까지는 연출했을 것이다. 거기서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마무리만 잘 지으면 될 일이다.


하지만 <도약선생>에서는 주인공들이 정말 대회 출전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인지조차 모호하다. 절정 장면에서는 주인공들이 장대를 들고 4층 건물 옥상 위로 도약하려다 실패하는 모습만 보여줄 뿐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는 실패에 대한 이야기도 성공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도약선생>은 그저 주인공들의 꿈과 열정과 도전에 대해 이야기할 뿐이다. 이는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대회이념’이기도 하다. 윤성호 감독은 아닌 것처럼 해놓고도 결론적으로 대회 홍보라는 제작지원자의 요구에 가장 합당한 스포츠 영화를 만든 것이다.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대회이념’>
 


<트랙이 아닌 골목길에서 친구가 있는 4층 옥상을 향해 달려나가는 원식과 그녀를 말리는 재영>




당신 목표의 상징적 높이는 몇 미터인가?
전영록 코치는 트레이닝을 막 시작한 원식에게 ‘애니멀 트레이닝’의 일환으로 성경구절을 읽어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이듯이, 내 영혼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사슴이 그냥 무작정 산 정상으로만 돌진했다고 생각해봐요. 그냥 높이 높이만 가려고 해서 산 정상에 갔단 말이야, 근데 거긴 물이 더 없어. 그죠? 사슴은 샘물을 찾아서 가야되는건데, 무작정 높이 간다고만 해서 되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자기 목표를 정확히 정해놓고 거기에 맞는 수치를 딱 맞춰서 올라가는거지. 그죠, 맞죠? 원식이 친구의 목표 높이는 얼마예요, 상징적으로?”


원식의 목표 높이는 4미터다. 친구 우정이 4층 높이의 옥탑방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원식이 운동을 시작한 이유는 그저 우정에게 늠름한 모습을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대회에 출전할 마음따윈 없다. 그렇다면 원식과 함께 트레이닝에 임하는 재영은 왜 운동을 다시 시작한 걸까. 아마도 원식에게 이성적으로 매력을 느껴 그런 듯하다. “언니랑 수성랜드가서 놀이기구도 타고 차도 마시고 나중엔 손도 잡고 안고싶어요!”(박재영의 대사 中)


같이 운동을 하고는 있지만 각자의 목표는 다르다. 그 목표란 것도 이루어지기 무척 힘들거나(원식) 사회적으로 통용되기 힘들다(재영). 이들을 보고 있으면 참 애처롭기까지 하다. 이는 사실 우리들의 모습과도 같다. 같이 공부를 하고는 있지만 각자 목표의 높이는 다 다르다. 목표를 정해놓긴 했지만 그 높이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는 막막하다. 그런가 하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학벌이나 인맥 같은 사회적 병폐로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목표도 있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한다. <도약선생> 엔딩곡의 가사처럼, 우리들의 도약이란 건 참으로 슬픈 믿음의 도약이다.


앞에서 “꿈을 꿨다”라는 등장인물들의 대사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꿈을 꾼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자면서 꾸는 허구의 꿈을 말할 수도 있지만,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는 뜻도 된다. 여러분들 목표의 상징적 높이는 몇 미터인가. <도약선생>은 자신이 뛰어넘을 수 있는 높이가 어디쯤인지 생각하게 만들고, 또 그 목표를 향해 열심히 꿈을 꾸게 만드는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