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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속세상] 구병모 ‘위저드 베이커리’ 속 외톨이의 모습

 자전거 타다가 넘어진 아이를 보며 속상해하는 엄마, 직장 상사에게 혼나는 직원, 시험 결과에 절망에 빠진 수험생 등 이들의 공통된 생각. ‘아…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현실 속에 시간을 되돌리는 마법은 통하지 않는다. 그저 흐르는 물결과 같은 인생에  맞춰 사는 수밖에 없다. 만약 되돌리는 시간의 기억을 지운다는 조건 하에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과연 시간을 되돌릴 것인가?

 ‘나’는 16살의 중학생이다. ‘나’의 친엄마는 ‘나’를 청량리역에 버린다. ‘나’는 며칠 후 아버지와 연락이 닿아 다시 집으로 돌아갔으나 친엄마는 자살 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그 충격으로 ‘나’는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게 된다. 아버지는 집에 몇 번 배 선생을 데리고 온다. 그 때 마다 배 선생은 ‘나’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장난감을 사주는 등의 호의를 베푼다. 그러나 재혼 이 후 같이 살다보니 배 선생의 눈에는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눈엣가시였다. 배 선생은 ‘나’에 대해 못마땅해 하고 집안에서도 오직 방안에서만 있게 한다. ‘나’는 집안에서 먹는 식사가 버거워 저녁을 동네에 있는 빵집에서 빵을 사서 식사를 해결한다.


 ‘나’의 환경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바로 ‘가족’이다. 가족은 자녀에게 애정을 퍼부어 줘야 되고 보호 해줘야 하며 휴식도 취해줘야 한다. 또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같이 지내는 시간동안 사회생활을 위해 필요한 지식과 기술도 익힐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나’의 경우 가족의 기능 중에 충족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애정은 버림으로 보호는 무관심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러한 가족 기능의 역기능으로 ‘나’의 경우 사회생활의 기초인 말부터도 성립되지 못한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도 가족의 기능을 충족하지 못하는 가족이 많아지고 있다. 가족이라는 기능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물질적인 것 보다는 정신적인 것. 즉 마음을 다해 가족이라는 틀 안에 지낸다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 될 일이다.

  현대 사회에서 가족의 해체에 따른 여러 유형이 나타난다. ‘나’의 가족 유형은 일명 ‘패치워크(다양한 조각들을 이어 만듦) 가족’에 해당한다.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유형으로 이 파트너 저 파트너로 전전하는 방랑자가 아닌 다양한 존재를 인정하는 유형이다. 그러나 ‘나’의 경우 다양한 존재를 배 선생이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조화를 추구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 ‘나’는 새로운 가족 형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배 선생의 눈치를 보며 방안에서만 생활을 하게 된다. 집이라는 공간 안에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나’의 경우 더욱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배 선생에게는 어린 딸 무희가 있는데 어느 날 무희가 성추행을 당하게 된다. 무희는 학원선생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직설적이고 가혹한 경찰 조사를 받다보니 선생이 범인이 아니라고 하기도 하는 등의 횡설수설한 답변을 늘여놓더니 무희는 범인을 ‘나’라고 가리킨다. 거기에 분노한 배 선생이 ‘나’를 경찰에 신고하고 쫓아가자 당황한 ‘나’는 도망가게 된다. 도망가던 중에 보인 ‘위저드 베이커리’에 들어가서 점장에게 무작정 숨겨달라고 한다. 점장은 ‘나’에게 이유도 듣지 않고 오븐 속에 숨겨준다. ‘나’는 숨겨주는 대신 점장이 만든 물건을 판매하는 홈페이지를 관리하게 된다. 그로인해 점장이 마법사 인 것을 알게 되고 마법사인 점장과 파랑새 소녀와 함께 생활하며 인간들의 욕망을 지켜보게 된다.


 점장의 물건을 사는 사람들은 어떠한 상황을 바꾸려고 하는 욕망에 휘둘린 사람들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어떠한 상황을 피하고 싶고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욕망대로 바꾸고자 의도하는 모습들이 가득했다. 그러나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의 ‘선택’이다. 어떠한 상황에 부딪혀야 된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부딪히면 되고 이 상황을 받아들여야 된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순응하고 그 상황을 받아들이면 된다. 직면이냐 회피냐 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선택’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나 자신의 선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 입은 사람들은 점장에게 찾아 와 보상을 요구한다.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해 의도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은 것에 대한 보상? 이들이 점장에게 보상을 요구할 권리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인가? 보상을 요구하는 이들은 선택을 하지만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모순적인 모습을 가졌다. 그러나 마법의 빵을 사는 것은 자신의 선택이었고 그에 대한 결과는 선택에 대한 자신의 책임과도 같다. 설령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할지라도 의도된 방향으로 나가지 못하더라도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한다. 선택하는 것 자체에 자신의 의지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라면 의지가 강하고 좀 더 성숙한 삶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삶은 수학 공식처럼 상황마다 딱딱 답이 나오지 않는다. 어느 방향으로 흐를지 어떤 방식으로 흐를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저 선택에 따른 책임으로 삶은 흘러간다. 사람의 욕심은 끝도 없기 때문에 한 번에 완벽한 선택을 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리고 책임도 끝까지 따라온다. 그렇기 때문에 선택은 책임의 다른 이름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회피하는 선택이나 맞서는 선택이나 어떠한 경우에 따르는 책임을 버텨내는 삶이 성숙하고 더 나은 삶이 될 것이다.

고함20
고함20

20대의 소란한 공존 [고함20]의 대표 계정입니다.

1 Comment
  1. gardenland

    2011년 8월 29일 21:49

    잘보고갑니다 좋은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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