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강준만 교수의 시사인물사전8- 곽노현 편을 상당부분 참고했다는 점을 미리 밝혀둡니다.



이번 주 고함20 ‘이 주의 인물’로는 곽노현 교육감이 선정되었다. 곽노현 교육감이 박명기 교수에게 2 억원을 줬다는 사실이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곽노현 교육감과 관련된 뉴스가 연일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에 대해서, 진보진영은 곽노현 교육감에 대해 “사퇴하라.” “끝까지 지지한다.” 등의 의견이 대립하면서 혼란을 겪는 상태다. 곽노현 교육감이 어떻게 살아온 인물인지 되짚어보고,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고민해봐야  할 시기인 것 같다.




 


학생운동은 하지 않았지만 사회의식이 싹 트던 시절

곽노현 교육감은 개천에서 용 났다는, 자수성가 일화의 주인공은 아니다. 서울 출신에다가 체신부에 다니는 공무원 아버지 밑에서 보성중-경기고-서울법대의 명문학교 코스를 차근차근 밟아왔다. 대학에 와서도 본격적으로 학생운동은 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고시를 보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는 유신반대시위에는 자주 참석했다고 한다.


그때까지는 특별히 진보적인 인사의 특징이 없었던 곽노현 교육감은, 학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대학원에서 법철학을 배우다가 유학을 준비하게 된다. 유학자금이 없던 그는 김앤장 로펌에서 잠시 일하면서 돈을 버는데, 이 때 조영래 변호사나 천정배 변호사등을 만난 것이 좋은 인연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비주류 법대 동문들과 독서회를 조직하는데 아마도 이 시점이 곽노현 교육감의 진보적인 의식이 본격적으로 싹 트던 시절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그리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펜실베니아 대학교 로스쿨에서 대기업의 지배구조개혁을 중심으로 연구를 하게 되고 석사학위를 따온다. 이 때 했던 연구들은 훗날 곽노현 교육감의 앞길에 큰 자산이 된다. 97년에 삼성 세습 비리에 대해 알게된 후, 3년이 넘는 준비기간 끝에 2000년도에 삼성의 ‘에버랜드 전환사채 불법 발행’에 맞서 고발장을 내는 활약을 펼친 것은 로스쿨 시절의 연구가 없다면 불가능 했을 것이다.

진보적 법학자, 인권 전문가

유학을 갔다오자마자, 민주주의법학연구회(민주법연)를 구상하고, 젊고 진보적인 법학자들과 함께 89년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91년도부터는 방송통신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민주주의법학연구회 회장을 맡게 된다. 시민사회 단체 활동의 첫 걸음이었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후 그는 진보적 법학자로서의 면모를 본격적으로 드러낸다. 95년에 5.18특별법 제정을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의 대변인직을 맡았다. 5.18특별법을 만들기 위해 그는 민주법연 동료들과 함께 헌법재판소에 낼 법학교수의견서를 작성하고, 147명의 법학교수들의 서명을 받으러다니는 등 이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5.18 특별법을 만드는데 많은 공을 세운 그는 광주에서 5.18 시민상을 받게 된다. 또한 YS정부의 노동법 날치기/안기부법 개악 반대 운동에서도 많은 활동을 한다.

김대중 정부에는 인권 전문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99년도에는 인권위를 만드는 과정에서 인권위의 위상을 세우고독립성을 보장받기 위하여 노력하게 된다. (특별법인이 아닌, 국가기관으로 세우기 위한 노력), 결국 본인이 2001년부터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회로 활동하고 2005년부터는 사무총장으로서 일하게 된다.


곽노현 교수가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앞서 말했다시피 삼성의 편법상속에 관해서 이건희와 (주)삼성에버랜드 이사진을  법학교수 43인과 함께 고발한 사건이다. 곽노현 교육감은 당시 대표 고발자로서 고발장을 쓰는 등,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진보진영의 명망 있는 인물로 발돋움하게 된다.


교육감, 그 이후…

교육감이 된 이후, 그는 진보 교육감이라는 타이틀에 맞게 교육정책의 다양한 변화를 시도했다. 인권 전문가 답게 전면체벌금지를 시행하고, 직접 학생인권조례를 발의해서 학생들의 인권과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주려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체벌금지 같은 경우에는 학교 내에서 급격한 변화를 불러와서 많은 논란이 되었고, 학생인권조례에 대해서도 보수진영이나 일부 교사들의 반발이 심했지만 곽노현 교육감은 자신의 정책을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또한 얼마 전에 주민투표까지 해야만 했던, ‘친환경 무상급식 정책’, 그리고 9000만원에서 2억원의 예산을 주면서 학교운영과 교육과정 운영에서 자율성을 띄게 하는 ‘혁신학교’ , 교육비리 척결 등의 정책이 곽노현 교육감의 주요 교육정책 들이었다. 일관성 있게 시민사회에서 진보적인 행보를 보여 왔고, 교육감으로서의 정책 역시 진보진영의 교육감으로서 부족함이 없었다.


이제는 곽노현의 용기가 필요하다

곽노현 교육감의 걸어온 길을 보면 20년 이상 진보적인 법학자, 인권 전문가로서 일관성 있게 활동해 왔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 더욱 안타깝고, 모종의 배신감 마저 드는 것이다. 혹자는 한나라당이나, 공정택 교육감같은 사람과 비교하면서 왜 진보에게만 더 무거운 잣대를 들이대냐고 말한다. 진보세력이 도덕적 결벽증이 있다면서 덧붙이면서 말이다. 그러나 진보는 ‘선’이 되어야지, ‘최악’에 맞선 ‘차악’이 되면 안 된다. 진보세력은 지금보다 더 좋은 사회를 만들려고 했지, 지금보다 덜 나쁜 사회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곽노현 교육감을 왜 믿지 않느냐.”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을 것이다. 그러나 선뜻 믿을 래야 믿을 수가 없다. 누가 봐도 의심이 갈만한 상황이다. 곽노현 교육감에 대한 “우리가 남이가” 식의 감싸주기와 무조건적인 믿음이 진보진영의 현실을 타계하는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선의의 2억’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일반 대중에게 납득이 안가는 부분이다. 대중 앞에 나서서 돈 2억의 출처를 밝히는 것은 물론, 지금까지 의혹이 있었던 모든 부분에 대해서 낱낱이 해명해야 한다. 당당해져야 한다. 약속이 있었다면 어떤 약속이 있었는지, 단일화 과정에서 돈에 관련한 이야기가 나왔다면 전부 다 공개해야 한다. 보수신문과 검찰의 프레임에 맞서 후보 단일화 또는 무상급식, 학생 인권 조례등의 중요한 진보적 교육정책의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그는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곽노현 교육감이 자신의 명예를 자기 스스로 지켜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