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 바랜 부모님의 연애시절 사진을 보고 가슴이 설레고, 헌 책방의 쾨쾨한 냄새를 좋아하며, 유행하는 일렉트로닉 음악보다는 통기타에서 울리는 소소한 음악에 더 끌리는 당신. 그대에게 딱 맞는 ‘아주 오래된 낭만’을 선물합니다.


우리는 활자보다 영상을 접하는 일이 더 잦아진 시대를 살고 있다. 영화관을 찾거나 TV를 켜야 될 필요도 없다. 거리를 지나가면 쇼윈도에는 LCD가 걸려 계속해서 영상이 나오고, 유투브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입소문이 퍼진 영상들을 구경한다. 핸드폰이나 디지털카메라를 이용해서 누구나 기초적인 영상을 제작할 수도 있다. 환경이 이렇다 보니 요즘 사람들, 웬만큼 잘 만든 영상에는 감탄도 하지 않는다.



화려한 CG는 없고 화면은 좀 빛이 바랬지만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흥미를 끄는 영상이 있다. 바로 영화 초기에 만들어진 ‘아주 오래된’ 필름들이다. 영상을 기록할 수 있다는 개념이 처음으로 나타난 그 때, 영상이라는 미디어가 처음 등장한 그 때의 영화에 대한 고민들이 녹아 있어 더욱 특별하다. 어떻게 하면 잘 만들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영상이라는 매체를 잘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들이 영화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초기 다큐멘터리에 대한 감상을 나누고자 한다. 세 편의 다큐멘터리는 비슷한 시기에 제작되었으나 각기 다른 특성을 보여준다. 해당 작품들이 만들어진 1920년대는 다큐멘터리라는 장르가 처음 정립된 시기이면서도, 다양한 다큐멘터리의 실험들이 이미 이루어져 작품들 사이의 다양성이 확연했던 때이기도 하다. 


최초의 다큐멘터리, ‘북극의 나누크’ (1922)




국내 다큐멘터리 사상 최고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MBC의 ‘눈물’ 시리즈의 첫 작품은 북극을 배경으로 촬영된 자연 탐사 다큐멘터리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세계 최초의 다큐멘터리로 인정받고 있는 작품도 북극을 배경으로 촬영되었다. 로버트 플래허티(Robert Flaherty)가 에스키모인 나누크(Nanook)와 그 가족의 일상을 촬영해 편집해 1922년 <북극의 나누크(Nanook of the North)>라는 작품을 완성했다. 흥행에 성공하면서 유사한 자연 기록 다큐멘터리들이 계속해서 제작되는 촉매가 되기도 했다.



이 작품은 당시 이미 사라져가고 있던 에스키모의 전통 생활 방식을 기록으로 남겼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글루를 짓는 모습이나 전통 방식으로 해마를 사냥하는 모습들이 필름에 그대로 기록되어 거의 백 년이 지난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호기심도 충족시킨다.



진실을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도 진실을 왜곡한 부분이 있다는 것은 ‘북극의 나누크’가 던져주는 시사점이다.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사건을 일으켜 촬영한 부분이 어디인지를 찾아내는 것은 이 영화의 특별한 재미다. 그리고 그 뒤에는 영상이 보여주는 사실은 어디까지가 진실인가에 대한 고민이 따라붙는다.


영상으로 그린 수채화, ‘비’ (1929)




인류 역사에서 인간에게 가장 많은 심상을 던져 준 자연 현상은 단연코 ‘비’ 아닐까. 황순원의 ‘소나기’, 김현식의 ‘비 오는 날의 수채화’, 가장 최근에는 아이돌그룹 비스트의 ‘비가 오는 날엔’까지. 비는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예술을 풍요롭게 한 장본인이다. 네덜란드의 다큐멘터리 거장 요리스 이벤스(Joris Ivens)의 단편 초기작 <비(Regen)> 또한 그렇다.



13분, 영화로 치면 매우 짧은 시간이지만 동영상으로 치면 매우 긴 시간이다. <비>는 사실 우리가 유투브에서 볼만한 영상에 가깝다. 맑았던 하늘이 조금씩 어두워지고, 거리의 사람들이 일제히 우산을 편다. 그리고 카메라는 비가 내리는 도시 곳곳을 진득하게 비추어 낸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곳곳의 아름다운 모습이 도시 속에 담겨 있다. 말 그대로 영상으로 빚은 수채화다.



영화가 상업성에 치우치는 것에 반대했던 1920년대의 일부 감독 세력들은 다큐멘터리를 ‘회화적’으로 구성하는 데 집중했다. 이 결과 도시의 아름다움을 담아낸 ‘도시 교향곡’ 영화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월터 루트만(Walter Ruttmann)의 <베를린, 대도시 교향악(Berlin, Symphony of a Big City)>을 비롯해 니스, 파리 등에 대한 영화들도 남아 있다.


영화는 영화다, ‘카메라를 든 사나이’ (1929)




러시아의 지가 베르토프(Dziga Vertov)는 가명인 그의 이름부터 영화적인 감독이었다. 당시 카메라가 ‘지가지가지가’하며 돌아가는 소리에서 모티프를 얻어 가명을 만들었으며, 이름 전체는 팽이라는 함의를 지니고 있다. 그는 본래 볼셰비키 정권 때의 러시아에서 뉴스 영화를 만드는 일을 했다. 사회주의의 전형을 담아내 ‘선전열차’를 타고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었다. 당시 일부 국가에서는 영상을 프로파간다 적으로 사용하고자 했다. 이러한 경향은 히틀러의 나치에서 절정을 이루기도 했다.



그가 제작한 명작 <카메라를 든 사나이(Man with a Movie Camera)>는 영화 속에서 관객이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닌 영상이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깨닫게 하는 장치를 둔다. 영상에 담겨 있는 내용 자체도 카메라맨의 촬영 장면일뿐더러, 이러한 영상을 갑자기 정지시켜 놀라게 하거나 혹은 영상 클립을 편집하는 장면까지를 보여준다. 카메라의 존재를 관객이 직접 인식하게 함으로써 베르토프가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영화, 다큐멘터리라는 양식을 통해 재구성되는 진실은 어디까지가 진실인가. 또 반대로 진실을 재구성하는 데 있어 영화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어느 정도인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지가 베르토프 나름의 답을 이야기한 게 아니었을까. 다큐멘터리를 통해 특정 사회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다큐멘터리라는 장르 자체를 성찰하는 작품들도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카메라를 든 사나이>는 그것의 시초다.





우리나라에서 최근 만들어지는 TV다큐멘터리에만 적응된 관람객이라면 초기 다큐멘터리는 조금 지루하거나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영상의 배경까지를 같이 생각하며 관람한다면 낡은 서랍장에서 보물을 찾아낸 기분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