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보면 스타들이 한복입고 절을 하며 “즐겁고 편안한 한가위 되세요.” 라고 말한다. 그러나 과연 추석이 누구에게나 마냥 즐겁고 편안할 수 있는 것일까? 적어도 우리 어머니들에게는 추석은 결코 즐거운 날이 아닐 것이라고 확신한다.


명절의 풍경을 보면, 전통이라는 이름하에 이루어지는 성차별이 얼마나 심각한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여성만이 짊어지는 엄청난 양의 가사노동만이 문제가 아니다. 교묘하게 여성과 남성을 갈라서 생각하는 것을 요구하는 이분법적인 구도가 명절 내내 재현되고 있다. 명절때는 왜 여성이 ‘제2의 성’이 되어야 하는것일까?


추석 차례에서 소외되는 여성들


차례상에 올라가는 대부분의 음식은 여자들이 차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정작 조상을 기리기 위한 음식을 만들면서 가장 고생한 여자 어른들이 차례와 제사에서 소외되고 있다. 안방에서 차례를 지내면, 안방에는 남자들이 들어가는 것이 대부분이고, 여자들은 거실에서 서있다. 심지어 안방에는 5살 먹은 어린남자아이까지 들어오는데, 80이 다 된 할머니가 거실에서 서있다.


집안의 의식을 주관하는 것은 남자고, 그것을 보조하는 역할은 여자가 하는 구조이다. 이러한 모습은 성역할을 고착화 시키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엄연한 성차별이다. 심지어 지방이나 가문의 풍습에 따라서 여자는 아예 절을 안 올리는 곳도 있다. 정장을 차려입고 안방에서 절을 올리는 아빠의 모습, 평상복을 입고 거실에서 서있는 엄마의 모습의 대비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생각을 심어줄지 걱정스럽다.


차례나 제사 문화를 우리나라의 고유의 전통이라고, 지켜나가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성차별을 당연시하는 전통이라면 지키지 않는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한다. 전통은 절대적일 수 없다. 조선시대에도 16C중엽에 성리학을 받아들여서 전통이 변화했듯, 전통도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아직도 남녀칠세부동석?


또한 근대 이전에나 쓰일법한 ‘남녀칠세부동석’ 이라는 말이 아직도 통용되는 때가 바로 추석 같은 명절이다. 예전처럼 여자와 남자는 겸상을 하면 안 된다고 해서 따로 상을 차리지는 않는다. 다만 사람이 많고 상은 작기 때문에, 상을 따로 차리게 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집에서는 이렇게 상을 나눌 때 남자상과 여자상으로 구분한다. 만약 다른 곳이었으면 상을 나눈다면 무작위로 나누든지, 그나마 합리적으로 보이는 기준인 ‘나이순’으로 나눴을 것이다.


여자 어른들에 의해서 먼저 남자 어른들의 상이 차려진다. 남자 어른들이 먼저 식사를 시작한다. 그리고 나서 여자 어른들은 자신들의 밥상을 차린다. 애들은 따로 밥상을 차려주든가, 여자 어른들 상 옆에서 먹는다. 차례도 따로 지낸 것과 다름이 없는데, 밥도 심지어 따로 먹는다.


이렇듯 이상한 ‘남녀칠세 부동석’은 명절 대부분의 일을 여성이 전담하기 때문에 벌어질 수 밖에 없다. 평소 삶의 방식과는 전혀 관계없이, 명절만 되면 여자는 ‘무조건’ 가사노동을 해야만 하는 분위기가 있다. 반면에 평소에 가사노동을 능숙히 하던 남자라도, 왠지 모르게 명절에는 가만히 있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가 있다. 이런 분위기를 깨트린다면 친척들의 눈치를 받게 된다. 그래서 여자들은 가만히 앉아있는 남자들에게 먼저 상을 차려준 후, 다 같이 부엌일을 끝내고서야 밥을 먹는 것이다.



우리가 만들어나가야 할 명절 문화


명절때의 성차별은 직접 드러나기 보다는, 아주 체계적이고 관습적으로 이루어진다. 누구 하나 의도적으로 여성을 깔보거나 비하하거나 차별하려고 들지 않는다. 그러나 앞서 말했다시피 전통이라는 명목 하에 교묘하게 성차별적인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 이 구조가 성차별을 무의식적으로 인정하고, 자연스럽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가족 내에서의 불평등과 차별은 거부하려고 해도 쉽게 거부할 수도 없는 거 아닌가?

사회에서는 성에 의한 불평등, 차별을 없애고 여성의 권리를 향상시키자는 목소리가 높다.그러나 사회의 가장 기본단위인 가족에서부터 여자와 남자를 가르는 것이 내재화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면, 한국이 성 평등 사회로 가는 길은 매우 힘겨워 질 수 밖에 없다. 어렸을 때 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이미 생겼는데, 그것을 의식적으로 바꾸는 것은 어색하고,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구조를 쉽게 바꾸기가 힘들다는 것이 문제다. 명절의 문화나 예절은 사실상 가족의 ‘나이 많은 남자 어른’이 결정하는 것이 관습화 되어있다. 그렇기에 젊은 사람들의 힘으로 지금의 구조를 바꿔나가는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고,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또한 명절 문화에 불만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집안에서 괜한 갈등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 쉬쉬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회가 압박을 가해야 한다. 명절 문화의 성차별적 요소에 대해 사회적으로 공론화시켜야 한다고 본다. 지금까지는 여자들의 가사노동 부담이 크다는 식의 현상과, 그에따라 남자가 “도와줘야 한다.”는 가벼운 해결책만이 언론매체를 통해서 나온 내용이었다. 그러나 거시적인 관점에서 총체적으로 바꿔나가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명절에 여성과 남성의 역할 을 구분하지 않는 것이 옳다는 식의 여론을 서서히 이끌어 나가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현대에 맞지 않는 전통은 버려야 한다.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게 공존하는 명절 문화가, 우리가 만들어갈 전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