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다큐멘터리 <짝>이 시끄럽다. <짝>이 첫 방영되고 나서부터 줄곧, <짝>이 방영된 다음날에는 ‘남자ㅇ호’ 또는 ‘여자ㅇ호’로 시작하는 헤드라인의 기사가 꼭 포털 사이트 메인에 등장하곤 했다. 이번에 논란이 된 남자6호에 대한 제작진의 태도 및 제작 과정에서의 조작 논란 이전에도, 특정 출연자를 다룬 기사는 항상 있었고 네티즌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남성 네티즌들은 여성 출연자에 대해 이야기했고 여성 네티즌들은 남성 출연자를 주시하는 식이었다. 예를 들어 지난 7월 28일에 방영된 <짝>에서는 해운회사의 외동딸이라는 여자 5호가 단연 이슈였다. 남성 네티즌들은 재벌 2세 그녀가 어떤 남성 출연자를 선택하느냐에 관심을 가졌고, 여성 네티즌들은 여자 5호에 대한 남성 출연자들의 태도에 주목했다. 이러한 관심은 대부분 <짝> 기사에 달리는 댓글들이나, 여성 또는 남성 커뮤니티의 게시글들로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주로 악플이나 비판글이 대부분으로, ‘잘 됐으면 좋겠다’와 같은 선의의 게시물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과거 <사랑의 스튜디오>와 같은 일반인 대상 짝짓기 프로그램이나 연예인들이 춤과 노래로 구애하는 오락성 짙은 프로그램들이 많이 있어왔음에도 <짝>이 이토록 주목받는 것은 당연히 ‘남 일 같지 않은 프로그램’이기 때문일 것이다. 애초에 짝은 지난 3월 첫 방영부터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을 표방했고 지극히 평범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애정촌’이라는 공간 안에서 제약 없는 만남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온 프로그램이었다. 시청자들은 관찰자의 입장에서, 애정촌에서 공동 거주하는 출연자들의 극도로 진실한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여성 출연자들이 남성 출연자의 직업에 집착하는 모습, 남성 출연자들이 특정 여성 출연자의 외모에 반해 접근하지만 그녀의 직업을 알고 나서 돌변하는 모습과 같은 장면들. 시청자들은 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이입한다. 프로그램 속 출연자들의 이성에 대한 태도와 선택이 본인들의 그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짝>이 <사랑의 스튜디오>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하다. <짝>이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얘기다.

 


곱지 않은 시선들


<짝>이 다큐멘터리, 혹은 교양 프로그램으로 분류되는 것에 대해 몇몇 네티즌들은 말도 안된다는 반응을 보인다. <짝>이 교양 프로그램으로서는 다소 가벼운 소재를 다루고 있고 프로그램 자체가 의미 없는 흥미거리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 그들 반응의 요지다. 최근 제작진이 출연자에게 선택을 강요했다는 논란으로 프로그램 자체가 폐지돼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한쪽에는 <짝>의 기획 의도 자체에 대한 의문섞인 비판도 존재한다. <짝>은 그 기획의도로 “당신은 지금 짝이 있습니까? 당신의 소중한 짝을 위하여 무엇을 해주고 있습니까?” 라는 질문과 함께  ‘…남녀가 짝을 찾아가는 실제 과정을 통해 한국인의 사랑을 살펴보고자 한다’고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과연 <짝>에서 이러한 기획의도가 실현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출연자들이 <짝>이 이야기하는 ‘숭고한 사랑’을 실천하고 있냐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네티즌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고, 따라서 프로그램의 존재 가치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짝>을 응원한다


글쎄, <짝>이 정말 기획의도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사실 <짝>은 정말 잘 하고 있다. 기획 의도대로 ‘한국인의 숭고한 사랑’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말이다. 만약 네티즌들이 <짝>에서 보여주는 사랑이 아름답고 정직하게만 비춰지길 원했다면 <짝>은 다큐멘터리일 수 없다. 그런 이상적인 사랑은 드라마에서 기대할 수 있는 장면일 뿐이다. <짝>은 일반인 출연자들이 짝을 찾는 과정을 관찰자의 입장에서 보여주었다. 네티즌들이 ‘된장남 된장녀로 가득 차 있다’, ‘속물적이다’라고 비판하는 그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임을 인정해야 한다. 시청자들이 <짝> 출연자들의 연애를 마치 자신의 연애 보듯 하는 것은 위에서 말했듯 <짝>이 현실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슬프게도 이것이 ‘한국인의 사랑’이다. <짝>은 시청자들에게 묻는다. ‘당신의 소중한 짝을 위해 무엇을 해주고 있느냐’고. <짝>이 보여주는 것들에 우리가 그려왔던 아름답고 예쁜 사랑은 거의 없다. 이것이 <짝>의 ‘자문자답’이다.



물론 <짝>이 그 존재가치와 관련하여 많은 질타를 받고 있는 것은 제작진 및 프로그램 제작 환경의 탓도 있다. 시청률이나 시청자들의 관심 등을 위해 자극적인 배경이나 조건을 가진 출연자들만을 섭외한다거나, 최근 논란이 된 강압적 진행 및 의도적 편집 등 제작에 있어서의 조작 등이 <짝>이 가진 부작용이다. 만약 정말로 <짝>이 조작적 편집이 됐다면 프로그램은 스스로의 제작 의도를 망치는 꼴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짝>을 응원하고 격려하고 싶은 이유는, 결코 가볍지 않은 남녀 간의 사랑을 직시하려는 <짝>의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제작 의도에 박수를 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짝>은 지금의 결점들을 호기롭게 뛰어넘어야 할 것이고, 이와 동시에 프로그램이 갖는 의미에 대한 진중한 태도로 제작에 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