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6월 서울시장 선거에서 오세훈 시장은 한명숙 전 총리에게 시장자리를 넘겨줄 뻔 하다가 가장 늦게 개표를 시작한 강남3구의 투표 결과에 힘입어 25,000여표차로 극적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다음 날 당선 인사에서 그는 ‘저를 지지하지 않은 많은 분들의 뜻도 깊이 헤아려 균형잡힌 시정을 이끌겠다. 더욱 열심히 듣고 소통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랬던 오 시장이 시장 재선에 성공한지 불과 1년을 조금 넘긴 지난 8월, 무상 급식 투표 실패로 서울시장에서 물러났다. 왜 이러한 결과가 생겼을까? 오 시장이 당선 인사에서 했던 약속들을 지켰다면 시장 사퇴를 할 일이 있었을까. 왜 그는 초심을 잃고 자신의 소신과 일부 시민들의 뜻만을 존중했을까. 윤흥길 작가의 소설 <완장>을 보자.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더니.

소설의 주인공 ‘임종술’은 어릴 적부터 여기저기 떠돌며 살아온 탓에 쌈질로 잔뼈가 굵은, 쥐뿔도 없는데 성격은 포악한 사람으로 묘사된다. 자신의 홀어머니와 하나뿐인 딸에게조차 다정스런 말 한 마디 할 줄 모르고 온갖 패악을 부리는 인물로 그려진다. 여러 가지 변명거리와 자존심으로 마땅한 수입도 없던 그에게 판금저수지(동네 저수지) 관리인이라는 떡고물이 떨어진다. 공유수면 관리법으로 낚시가 금지된 판금저수지에서, 관리인이 되기 전 임종술은 주인이 뭐라 하든 말든 저수지는 동네 주민의 것이지 당신 것이 아니라며 낚시를 해왔다. 하지만 그가 관리인이 된 후부터 그는 누구든 낚시를 못 하게 하고, 가뭄에 모내기조차 할 수 없는 농민들에게 물을 대는 것 역시 반대하는 아이러니를 보인다.


이와 같은 소설 속 임종술의 행실은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선거철만 되면 각종 선심성 공약을 내세우고 시장, 아파트단지, 공원 등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거리에서 유세하며 한 표를 당부한다. 오직 국민을 위한 정치인이 될 것처럼 감언이설로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는 데에 최선을 다 한다. 그렇게 당선이 되고나면 국민과 무슨 약속이나 했었냐는 듯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밥그릇 싸움에 여념이 없다. 정치 신인조차도 자신이 정치판에 뛰어들 때의 정치 개혁에 대한 포부와 신념은 잊어버린 채 당리당략에 따라 처신하고 행동한다. 그리고 또 다시 돌아오는 선거철에는 같은 행태를 반복한다.

하지만 이렇게 정치인들이 잘못하고 있음에도 국민들의 행동은 소설 속 동네 주민들이 임종술의 힘에 눌려 앞에선 아무 말도 못 하고 뒤에서 욕하는 것과 비슷하다. 늘 속으면서 투표할 땐 ‘이번엔 잘 하겠지. 이번엔 다를 거야.’라는 믿음으로 또는 별 생각 없이 후보자를 고른다. 임종술이 농업용수로 사용됨이 마땅한 저수지의 물이 빠져나가는 것을 아까워하듯, 정치인들이 우리가 낸 세금으로 마치 자신들의 돈인 양 그들만을 위한 입법과 행정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뒤에서 성토만 할 뿐 금세 잊고, 직접적인 행동을 보여주진 못 한다. 과연 이러한 모습이 옳은 것인가?

완장, 대관절 그것이 무엇이기에.

소설 속 임종술의 어머니 ‘운암댁’은 남편, 즉 임종술의 아버지를 완장으로 잃게 된다. 순하디 순하던 남편이, 일제 강점기 때부터 6.25 사변이 일어나기 전까지 항상 완장의 무력과 강제력에 당하던 남편이, 완장을 차게 되자 변했다. 그 동안 완장에게 받은 설움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고, 사소한 원한이 있는 이들에게는 여지없이 남편이 받았던 피해 이상을 되돌려주었다. 그러다 그가 찬 완장의 힘이 다했을 쯤 남편은 행방이 묘연해졌다. 그런데 임종술이 저수지 관리인이란 완장을 차자마자 남편과 비슷한 행동을 보이는 것이었다. 운암댁은 그저 두려웠다. 완장이 무엇이기에 사람을 그토록 변하게 만드는지.

소설에서 완장은 권력을 대변하는 매개체로 나오고 있다. 권력이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 것이다. 정치와 법의 이름 앞에 살아가던 국민 중 누군가가 정치인이 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렇게 얻은 권력으로 과거 힘없던 시절 자신이 당하고 느꼈던 부적절한 것들을 시정하는 것이 아닌 기득권자의 입장에서 일반 서민들의 생활을 등한시하는 모습, 공익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을 위해서 일하고 있는 완장의 모습, 권력이 다 해서 힘없이 물러나고 때론 사람들에게 원성과 비난을 받는 모습까지, 소설은 임종술과 동네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권력의 속성에 대해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즉, 작가는 권력은 누구나 동경하지만 막상 얻으면 변하기 쉽고 권력을 잃는 순간 덧없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책에 ‘4판 발행에 부쳐’ 라는 작가의 말을 통해 이와 같이 밝히고 있다. “완장의 내용이 인용된 사례들을 훑어보면, 여가 야를 야가 여를 꾸짖고 보수가 진보를 진보가 보수를 비판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 (중략) 만일 지금까지 칼인 줄 잘못 알고 남의 깃털을 무단히 가져다 아무렇게나 휘두르신 분들이 계시다면, 제발 그 보잘 것 없는 물건을 본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으실 것을 이 자리를 빌려 간곡히 당부 드리는 바다.” <완장>을 읽는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이해에 이용할 것이 아니라 참된 정치인이 되기 위한 거울로 삼을 것을 권유한다. 비단 정치인뿐만 아니라 정치 권력의 속성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은 이들에게 <완장>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