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 바랜 부모님의 연애시절 사진을 보고 가슴이 설레고, 헌 책방의 쾨쾨한 냄새를 좋아하며, 유행하는 일레트로닉 음악보다는 통기타에서 울리는 소소한 음악에 더 끌리는 당신. 그대에게 닥 맞는 ‘아주 오래된 낭만’을 선물합니다.

내가 ‘개츠비’와 당신의 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당신이 이루어낸 도약이 얼마나 위대한지는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 피츠제럴드에게 보낸 편지 중

이디스 워튼

 

작가 김영하는 서점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하기로 결심했다. 이 작품이 “졸라 재미없다”는 두 고등학생의 대화를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친구의 추천으로 중학생 때 이 책을 구입했다. 판타지무협소설에 흠뻑 빠져 있었기 때문일까. 나 또한 이 작품이 ‘졸라 재미없다’고 생각했다. 당시의 난 이 책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고, 어느 것도 얻어 내지 못했다. 그렇게 난 개츠비라는 인물이 판타지무협소설보다 훨씬 공상적임을 알아채지 못했다.

책장 한 쪽을 장식하고 있던 이 책을 다시 집어든 건 2년이 채 안 된 일이다. 한 번 봤던 책을 다시 읽지 않는 내가 왜 그랬을까. 그즈음의 난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고 있었다. 이디스 워튼처럼 하루키는 작품 안에 ‘개츠비’에 대한 애정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하루키의 걸작 중 하나로 평가받는 <상실의 시대>가 ‘개츠비’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그의 말에 <위대한 개츠비>는 다시 한 번 내 손을 타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서평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거기에 앉아 옛 미지의 세계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개츠비가 데이지의 집 부둣가에서 처음으로 그 푸른 불빛을 보았을 때, 그 놀라움이 어떠했을까를 생각해보았다. 그는 이 파란 잔디까지 먼 길을 걸어왔고, 이제 그 꿈은 바로 코앞에 다가와 도저히 놓칠래야 놓칠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는 그 꿈이, 이미 대륙의 어두운 평원이 밤하늘 아래 넘실거리는 도시 저편의 망막한 어둠 속으로 영원히 사라져버린 것을 몰랐던 것이다.”

개츠비는 처음과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니 내가 조금이라도 개츠비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첫사랑 데이지를 잊지 못한 개츠비가 저질렀던 범죄, 금주령을 어기고 술을 유통하는 일이 옳지 않음에도 그는 그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게 조금이라도 빨리 데이지에게 다가가는 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데이지를 비추는 푸른 불빛을 보지 못했더라도 개츠비가 데이지를 잊는 일은 없었다고, 차라리 그가 어둠 속에서 헤맸을 거라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위대한 개츠비>는 1925년 4월에 출판됐다. 1920년 대 미국은 부와 향락에 빠져 있었다. 1차대전이 끝난 후, 미국은 폐허가 된 유럽을 대신해 주도권을 얻었다. 거기에서 막대한 경제적 이익이 나왔다.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벼락부자도 쏟아졌다. 사람이 아닌 돈과 욕망이 미국을 지배했다. 천민자본주의. ‘상실의 시대’였다. 신앙, 정의, 도덕, 순수한 사랑 같은 건 거기 없었다. 개츠비가 사랑한 데이지도 마찬가지였다. 개츠비는 상실의 시대 속에서 상실을 경험하지 않은 유일한 인물이었다.

아련하게도, 작품의 결말부에서 개츠비는 총에 맞아 죽는다. 그 후 열린 장례식에서 찾아온 건 화자인 캐러웨이를 포함해 몇 사람 뿐. 화려한 조명 속에서는 개츠비를 향해 찬사를 던지던 사람들은 개츠비가 죽자 돌변했다. 개츠비가 파티를 열었을 때 꽃을 찾는 나비처럼 찾아온 많은 사람들은 불빛을 쫒는 나방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불빛이 사그라지자 모습을 감추었고 개츠비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내게 개츠비는 나방 가운데 홀로 빛나는 나비였다. 곧 사그라들 빛에 현혹되지 않고 꿈을 향한 의지와 신념. 그것을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