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변기가 예술작품라고? 

 우리가 화장실에서 보는 것과 같은 새하얀 변기가 놓여있다. 아, 좀 다른 점은 위아래가 반대로 뒤집혀 진채로 놓여있다는 것과 영어로 뭐라 적혀 있다는 것. 그런데 당황스럽게도 이 변기가 현대미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작가의 예술작품이란다. 게다가 작품의 이름은 ‘샘’. 보통 예술작품이라 하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나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뭔가 굉장한 듯한 것들을 그렇게 부를 수 있지 않나? 그런데 공장에서 만들어진 거의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작가가 한 것이라곤 영어로 몇 자 적은 것뿐인데 이게 예술작품이라니!



 중학교 시절 미술과목을 배운 사람이라면 한 번쯤 사진 속 변기를 본적이 있고, 아마 대부분 의 사람들이 이 작품을 보고 어이가 없어서 위와 같은 생각을 했으리라. 이 특이한 작품은 현대미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르셀 뒤샹(1887~1968)이 탄생시킨 레디메이드 작품 중 하나이다. 여기서 레디메이드란 뒤샹이 만들어낸 표현 양식으로 일상에 흔하고 친숙한 사물들(특히 공산품)을 이용해 그것의 원래 목적 이외의 의미를 만들어 내는 표현법이다. 일반적으로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예술이며 그 창조에는 뼈를 깎는 노력이라던가 몸까지 피폐해지게 하는 내적고민이 따르는 것이 일반적인 사회에서, 공산품에 서명을 한(게다가 그 서명조차 만든 이의 이름이 아닌 변기제조업체의 이름이 적혀있는) 그의 작품은 출품 당시 예술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권위적인 것을 거부하다

 레디메이드 첫 작품인 〈자전거 바퀴 Bicycle Wheel〉(1913)를 만들기 이전에는 특이한 작품을 탄생시킨 뒤샹 역시 회화를 그렸다. 그는 당시 유명작가였던 모네나 마티스의 등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그렸으며 그런 활동들을 통해 기본기를 다졌다. 하지만 점차 소재나 표현 방식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해나갔으며 어떤 하나의 예술 집단에 속해 그것만 신봉하는 활동을 지양하는 아웃사이더 적인 면모를 보였다. 이런 그에게 1912년 결정적으로 완벽한 아웃사이더가 되는 일이 생긴다. 그의 작품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가 프랑스 독립미술가협회의 전시회인 ‘앙데팡당전’에서 입체주의자들로부터 ‘격에 맞지 않는다’ 라고 전시 거부를 당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그는 회화을 거의 그만두었으며, 하나의 화풍운동에 어울리며 ‘권위적인 예술’에 거부감을 느끼고 무리를 이탈하고 그만의 도발적이고 냉소적인 예술을 계속해 나간다. 


<자전거바퀴>, 1913


 


다다이즘과 예술의 범위를 확장.

 한편 1차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이 시작된 이후 사회에는 회의주의 적인 분위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예술계 역시 문명과 이성에 대한 회의감을 가지는 사람이 생겼다. 회의감을 가진 이들은 전쟁의 비극이 전통 문명으로 인해 발생되었다고 여겨 이성과 문명, 모든 예술의 형태에 반대하는 성격의 표현방식을 보였다. 이런 움직임이 다다이즘(허무주의 예술운동)과 좀 더 후에는 초현실주의운동이 되었으며 뒤샹 역시 기존의 예술 형식에서 탈피하는 작품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평범한 재료와 새로운 방법으로 작품활동을 했으며 작품을 통해 대단한 예술에 반하며 반미학적이고 주된 예술경향에 비판적인 그의 가치관들을 드러냈다. 

1919 모나리자의 작가 다 빈치가 죽은지 400년이 되던 해 뒤샹은 길거리에서 엽서를 사서 낙서를 한 뒤 L.H.O.O.Q.(불어로 발음하면 '그녀의 엉더이는 뜨겁다'라는 뜻이다.) 라고 적는다. 이를 통해 그의 재치와 함께 전통적이고 권위적인 것에 대한 거부감을 엿볼 수 있다.

이런 뒤샹의 시도들은 현대 미술의 문을 열었으며, 후에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이런 뒤샹에 대해 ‘커다란 입구와 아주 작은 출구를 만들어 놓았다’라고 평했다. 실로 <샘>으로 대표되는 그의 레디메이드 작품들은 작가가 작품에 대해 생각하는 ‘컨셉’이나 ‘사고의 과정’ 까지 예술의 범위로 집어넣어 결국 예술의 범위를 크게 확장시켰다. 그리고 그의 시도들과 실험 정신들은 현대미술에 영향을 주어 그에게 현대미술의 아버지라는 이름표를 달아주었다.


예술은 특정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저 우리 인생과 같은 그런 일상적인 것이다. 

 뒤샹은 말년에 카반느라는 이와의 대화에서 젊었을 적 예술적 교양을 가지고 싶었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그러나 보잘것없는 욕망이었다. 나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철저하게 게을렀다. 나는 살며 숨 쉬는 일을 작업하는 것보다. 더 좋아한다. 그러므로 어쩌면 나의 예술은 산다는 것일 것이다. 매순간, 매호흡은 아무 데도 기록되지 않고, 시각에 호소하지도 않고, 정신적이지도 않은 작품이다. 그것은 일종의 항구적인 환희이다.”


 태초에 예술은 인간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태어났다. 인간은 예술을 통해 먹고 살기 위해 벽화를 그려 큰 물고기를 잡기를 바라는 주술적 행위를 하거나 다음 세대들을 교육했다. 예술은 ‘인간에 의해 시작했다’라고 생각한 뒤샹은 위 언급에서 드러나듯 예술을 인간의 삶과 동일시했다.

그리고 그런 가치관대로 다른 사람들의 예술경향과 비평들로부터 자유로운 예술 그리고 그런 삶을 추구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