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관련 기사들, 특히 검거된 용의자가 얼굴을 가리고 연행되는 사진이라도 있을 때면, 사람들은 댓글을 통해 범죄자들의 얼굴을 보여 달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여론과 보수화 되어가는 사회 분위기 때문인지, 여중생 살해사건의 용의자였던 김길태의 경우 경찰이 압송 과정에서 내부규정을 어기고 얼굴을 공개하기도 했다.



얼굴 공개를 찬성하는 이들의 주장은 크게 세 가지. 미국과 같은 선진국의 경우 범죄자의 얼굴을 공개한다는 것, 범죄율 감소효과가 있다는 것, 국민에게 알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근거가 주관적이고 논의가 필요하지만 일견 가장 객관적으로 보여지는 첫 번째 근거를 살펴보자.


외국의 범죄자 신상공개제도

 

2009년의 국회 입법 조사처의 보고서에 따르면 피의자의 얼굴 공개가 법적으로 가능하다고 알려진 미국, 일본, 영국의 경우 실제로는 아동 성범죄를 중심으로 한 강력 성 범죄자만 얼굴을 공개한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제도를 2001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또한 영국은 개인에게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 성 범죄 전과자 거주지역의 지역사회 기관에만 공개한다.



서구 국가에서 범죄자의 얼굴이 쉽게 노출 되는 것은 타블로이드지들의 황색 저널리즘이 심화되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다. 발행되는 신문의 종류 수가 많기 때문에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기사거리들을 통해 판매부수를 늘린다. 주로 연예인, 범죄자등 유명인의 얼굴과 사생활이 주가 된다. 심지어는 형을 마치고 출소한 뒤의 사생활 역시 보도되기도 한다. 어린 시절 살인을 저질러 복역 후 출소한 한 청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보이 A>가 그러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도 몇몇 언론사를 중심으로 연예인 파파라치 사진과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하는 등의 풍토가 증가하고는 있지만 이런 현상이 심화되고 있지는 않다. 신정아 사건 당시 그녀의 알몸 사진을 실었던 문화일보가 지탄 받았던 사건이나 파파라치들이 연예인의 사생활을 보도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국민들의 정서와 의식이 발달한 면이 있다. 선진국이라고 해서 우리나라보다 모든 것이 더 나은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이미 남들보다 앞서 나가고 있는 부분을, 단순히 선진국이 그렇지 않다는 이유로 퇴화시킬 필요는 없다.


국민의 알 권리와 범죄예방효과


국민의 알 권리란 국민 개개인이 정치, 사회적 현실에 대한 정보를 자유롭게 알 수 있는 권리이다. 하지만 그 범위는 매우 모호하다. 어느 나라에도 국민의 알 권리를 헌법이나 실정법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보와 개인의 사생활이 달린 정보 등은 제공할 수 없기 때문에 원하는 ‘모든’ 정보를 제공할 수는 없다는 점은 명백하다. 피의자의 얼굴 역시 개인의 사생활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



사실 대중들이 피의자들의 얼굴을 보는 행위 자체는 실질적으로 이득을 주는 점이 없다. 범죄율이 낮아질 수 있다는 점을 들기도 하지만, 사형제와 마찬가지로 범죄율과는 큰 상관이 없다는 통계자료가 있다. 생각해보면, 많은 범죄자들은 완전 범죄를 꿈꾸지 검거된 뒤의 일에 대해서는 크게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 우리 같은 평범한 일반인이 범죄자의 심리에 대해 짐작할 수 있는 바가 많지는 않지만 명예형벌이나 형벌 강화가 강력 범죄를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용의자 얼굴공개가 안 되는 이유와 연좌제


범죄자 얼굴공개를 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많다. 법적으로는 무죄추정의 원칙과 이중처벌의 원칙을 위반할 뿐만 아니라 헌법에 보장된 연좌제 금지의 원칙에도 반한다. 또한 법정에서 재판을 하기 전에 여론으로 이미 결론이 날 위험성도 안고 있다. 이렇게 되면 법정이 아니라 언론이 용의자를 재판할 권한을 가지게 될 수 있다. 



우리는 피해자 가족들의 슬픔에 감정이입 하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피의자의 가족들이 받을 고통에 대해서는 무심하다.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한다고 해서 피해자 가족들의 슬픔을 얼마나 덜어줄 수 있겠는가. 피해자 가족들의 억울함을 명분으로 없어도 될 피의자 가족들이 피의자의 형벌을 분담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사실상 연좌제를 실행하자는 주장과 같다.


헌법을 비롯한 법의 기본 원칙들을 위배하는데도 불구하고 용의자의 얼굴을 공개하라고 주장하는 소리가 드높은 것은 범인의 “면상 좀 보고 싶은” 마음에서 대부분 비롯한다. 얼굴을 보고 싶다는 그 호기심을 당장 충족하자 못하자 분노하고 그제야 근거들을 생각해 내는 것이다. 물론 이 호기심은 연예인의 사생활을 공개한다던가 하는 다른 호기심들에 비해 합리화 될 수 있는 요소들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대중의 호기심은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이성화된 현대사회이지만 대중들은 아직 감정적 본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그저, 마치 저잣거리에서 효수형을 구경하고 싶은 것처럼 이들의 얼굴을 보고 싶은 것이다. 남의 얼굴에 대고 마음껏 손가락질을 하며 명예 형벌을 가하는 주체가 되고 싶은 것이다. 그런 감정이 생겨나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범죄자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감정 이후에 그것이 왜 안 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이성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