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소꿉장난하던 시간, 오락실에서 신나게 게임하던 시간 등을 돌이켜보면 유년 시절에는 많은 추억이 남아있다. 어떤 이에게는 유년 시절의 기억이 좋은 추억이라고 한다. 어떤 이에게는 돌이키고 싶지 않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과연 자신의 유년 시절을 돌이켜보면 추억이 가득한 시절인가? 기억하고도 싶지 않은 시절인가?


 주인공 금이는 12살 이지만 몸이 허약해 학교를 잠시 쉬고 있다. 언덕길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고 집 앞에서 빙그르 도는 모습을 앞집의 은아에게 들키고 만다. 그것이 둘의 첫 만남 이였다. 그 뒤로 금이는 계속 은아에게 눈길이 가고 은아도 금이에게 관심을 표현한다. 서로의 방에 창문이 마주보고 있어 금이는 창문으로 은아네 집을 관찰하고 은아의 방에서는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온다. 서로에게 관심이 생긴 이후 언니, 오빠들을 의식하지 않고 손을 붙잡고 다니기도 하고, 마당에 설치한 텐트 안에서 둘 만의 모험을 하기도 하는 등의 시간을 보낸다. 금이와 은아는 조금씩 서로의 마음을 열며 순수한 사랑을 틔운다.



  유년 시절의 사랑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사랑이라고 한다. 12살의 소녀 금이와 소년 은아가 손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생각할 때 유치해보이면서도 웃음이 나오는 이유는 그들의 사랑이 순수하기 때문이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서로를 생각하는 사랑에 풋풋함이 묻어나온다. 그러나 현대인들의 사랑을 생각해보면 풋풋함, 순수함은 느낄 수 없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현대인들의 사랑은 형식적인 것과 보여주는 것에 무게를 두고 있다. 옆에 없으면 허전하다는 이유로 형식적인 연애를 하고 남들에게 이런 사람과 사귀고 있다고 보여주는 것에 지나치지 않는 사랑을 하고 있다. 이러한 사랑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사랑일 뿐이다. 사랑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의 진실된 마음을 아는 것이다.

서로에 대해 마음을 열며 순수한 사랑을 하고 있을 즈음 은아가 금이를 위해 폭죽을 터트린다. 그러나 은아는 폭죽에 화상을 입게 되고 병원에 실려 간다. 그 모습을 본 금이는 실신하게 되고 깨어나서 은아의 사망소식을 듣게 된다. 금이는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고 은아에 대한 상사병까지 걸리게 된다. 그 모습에 금이네 가족은 다른 동네로 이사 가게 된다. 외국에서 공부한 후에 한국으로 귀국한 금이는 어엿한 성인이 되었다. 금이는 언니친구 푸푸카를 만나 피아노바에서 피아노 치는 남자 마이클을 만난다. 그의 피아노 소리에 금이는 은아를 떠올린다. 곧 마이클과 금이는 가까워지고 금이는 어릴 적 상처를 털어 놓는다. 은아가 죽지 않았음을 가정한 마이클의 소설을 듣고 금이 또한 소설을 이어나간다. 소설 속에서 재탄생한 은아의 비밀스런 삶은 곧 현실의 마이클의 삶과 동일시된다.


금이의 첫사랑도 은아고 은아의 첫사랑도 금이다. 흔히 첫사랑을 제일 처음으로 사랑한 사랑을 첫사랑이라고 한다. 그러나 금이와 은아의 경우 제일 사랑했던 사랑으로써의 첫사랑을 뜻한다. 갑작스런 상대방의 죽음으로 인해 뜻하지 않던 이별로 인해 앓아보기도 하고 상대방에 대한 그리움으로 마음이 벅차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시간은 앓던 시간도 그리워한 시간도 모두 추억으로 되돌려 버린다.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함으로 인해 평생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는 것이다. 풋풋하고 순수한 사랑, 가슴 아픈 이별 그리고 재회. 이 모든 과정은 사랑에 대한 소중한 기억이자 추억으로 하나의 과거로 남는다.



 과거와 기억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과거는 눈을 깜빡이는 그 순간, 현재 흘러가는 순간도 과거로 만들어 버린다. 이러한 순간들이 흘러 인간의 삶은 과거완료형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과거완료형으로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 즉 인간의 삶은 현재진행이 되기도 한다. 그 이유는 인간은 과거의 기억을 들추어내어 때로는 복원하기도 재구성하기도 한다. 기억은 과거의 실재를 허구로 만들어 버리기도 하고 허구를 실재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과거는 기억 속에서 고정되거나 다시 구성된다. 이와 같은 이유로 과거와 기억은 불가분(不可分)의 관계가 된다.

  금이와 은아의 모습에서 과거에 대한 기억, 그 기억과 잇닿은 현재가 서로에게 어떻게 작용하고 나아가는 힘이 되어주는 가를 찾을 수 있다. 유년 시절의 첫사랑,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창조해 낸 소설(허구적 현재), 그리고 소설이 재구성한 기억 속 과거의 상황들. 즉 실제와 허구, 현재와 과거는 이처럼 서로를 매만지며 내면의 상처를 치유한다. 복잡하기도 한 관계 속에서 마이클은 정의를 내리면서 의문을 품는다.

“어차피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허구요 환상이니까. 생각 속에 있는 것과 현실에서 일어나는 것 중 중요성의 우위를 어떻게 가리지요? 도대체 진실이라는 게 둘 중 어디에 속하는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