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 탈출: 진화의 시작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아버지를 두고 있는 윌은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몇 년 동안 치료제 연구에 힘쓴다. 그는 유인원을 치료제 연구 과정에서 진행되는 실험에 사용하는데, 그 과정에서 어마어마하게 지능적으로 발전한 유인원은 자식을 지키기 위해 포악해지지만 인간은 총으로 주인공 시저의 엄마를 죽이게 된다. 그리고 윌은 시저를 데려와 집에서 소중하게 기른다. 시저는 그런 윌을 마치 아버지처럼 따른다. 또한 윌의 집을 자신이 벗어날 수 없는 곳임을 알면서도 바깥세상에 대해 갈망한다. 그러나 집이라는 울타리 밖의 악한 사람들, 엄마를 죽인 사람들을 알아가면서 인간의 악함을 보게 되고 더 이상 인간을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지한다.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든 약이 정작 인간에게는 알 수 없는 부작용을 일으키며 유인원들에게는 어마어마한 지적 능력과 신체적 조건을 향상시켜 준다. 그렇게 성장한 유인원들은 인간의 악함에 반기를 들며 생존 싸움을 시작하게 된다.


 



영화 속에서 모든 인간이 동물에게 악한 것은 아니다. 윌과 시저를 통해 만나게 된 윌의 수의사 여자친구. 여자는 시저를 자연으로 내보내지 않고 집에서 기르는 윌에게 자연을 거스르면 안 돼 라는 말을 남긴다. 스쳐 가듯 지나가는 말이었지만 어쩌면 이 영화에서 가장 크게 울리고 싶은 말인지도 모른다. 발전을 한다고 해도 가장 지켜야 하는 근본적인 생각이기 때문이다. 시저는 싸움이 끝난 후 숲으로 돌아간다. 윌은 그제야 집으로 돌아가자며 잘 돌보아 주겠다고 말하지만 시저는 이곳이 나의 집이다라며 숲에 남는다. 그렇다 자연은 그렇게 순리대로 돌아 가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원숭이들은 나무 위에 올라가 빌딩들이 즐비한 도시를 내려다 본다. 자연이라는 틀 안에서 순리대로 발전해 나갈 때에 인간과 자연 모두 평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음을 표현한다. 도시의 테두리에 높이 솟아있는 나무와 그 속에 속해있는 인간들의 문명은 단순히 원숭이와 인간의 대비만이 아닌, 자연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틀 안에서 생활하는 인간들이 오만함에 빠져 살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모든 의약품은 임상실험을 통해 안전성이 검증 되어야만 판매가 가능하다. 임상실험을 사람에게 직접 할 수도 없기 때문에 독성 실험 등과 같은 위험한 것은 인체와 가장 비슷한 동물에게 투여해 반응을 살핀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임상 실험은 단지 실험의 목적 뿐 아니라 그 안에서 인간으로서 보여 줄 수 있는 욕심과 악의, 우월한 존재라는 오만함을 담고 있다. 인간을 위해 유인원들에게 가해지는 잔인함, 그러나 그런 상황을 거부하듯 유인원은 진화한다.
 


생존 싸움 중에도 인간을 잔인하게 죽이려 하는 유인원들에게 시저는 안 된다고 소리 지른다. 인간은 유인원들에게 갖은 잔인한 방법으로 그들을 죽이고 악한 방법으로 그들을 괴롭혔지만 반대로 유인원들은 그러지 않는다. 인간과 함께 생활했던 시저는 특히 그렇다. 영화는 이런 인간의 모습을 유인원의 모습과 대비시키며 결국 이런 인간을 지배하는 유인원의 모습을 통해 잔인하고 욕심 많은 인간의 모습을 비판한다. 이익을 위해, 그리고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누리기 위해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행위도 마다하지 않는 인류의 행위가 결국 위험한 칼날을 장착한 부메랑처럼 인류를 위협한다는 이야기이다. 얼마나 더 나은 삶을 살아야 인간의 욕심은 그치게 되는 것일까?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고 인위적인 약에 의존하여 사는 삶이 과연 행복할까, 그리고 인위적 행복을 위해 유인원은 희생당해야 마땅한 것 일까. 인류를 위한 과학 기술에 대한 과한 믿음이 인류의 종말을 불러올 수 있음을 경고한다. 동시에 오늘날 만연하게 이루어 지고 있는 유전자 조작 실험, 육류소비를 위해 비윤리적으로 동물을 기르는 현실을 비판한다.



 



생산량 증대와 유통상 편의를 위하여 형질이나 유전자를 조작하는 유전자 조작 식품(GMO)’는 이제 우리 먹거리시장에 만연하다. 그러나 제2의 녹색혁명으로 불리는 유전자 조작 식품이 과연 안전한지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인체 내에서 어떻게 무슨 병을 유발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광우병의 경우 동물성 사료가 원인이 되고 있다.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을 공급하면 가축의 성장이 빨라지고 살도 찌고 우유도 더 많이 생산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가축에게 다른 가축의 고기나 골분을 사료로 먹여왔다. 이런 관행은 오랫동안 영국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계속 되어 왔다. 아직까지 광우병을 일으키는 단백질이 어떻게 소와 인간이라는 종의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소의 성장을 빠르게 하기 위한 인간의 욕심 때문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인간의 욕심이 부메랑이 되어 다시 인간을 위협했고 생명의 위험을 느낀 인간들은 원인을 규명해 해결하고자 했지만 해결은 커녕 원인조차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지나친 욕심과 순리를 거스르는 행위는 결국 이렇게 돌고 돌아 인간의 생명을 위협한다는 것을 잊지 말고 인간의 능력밖에 있는 자연을 지배하려는 생각과 욕심을 버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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