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전라북도 임실군의 한 마을에 김개인 이라는 사람이 충직하고 총명한 개를 기르고 있었다. 어느 날 동네잔치를 다녀오던 주인이 술에 취해 풀밭에 잠이 들었다. 때마침 들불이 일어나 김개인 이 누워있는 곳까지 불이 번졌다. 불이 계속 번져오는데도 주인이 알아차리지 못하고 잠에서 깨어나지 않자, 그가 기르던 개가 근처 개울에 뛰어들어 몸을 적신 다음 들불 위를 뒹굴어 불을 끄려 했다. 들불이 주인에게 닿지 않도록 여러 차례 이런 짓을 반복한 끝에, 개는 죽고 말았으나 주인은 살렸다고 한다. 주인은 잠에서 깨어나 개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음을 알고, 몹시 슬퍼하며 개의 주검을 묻어주고 자신의 지팡이를 꽂았다고 한다. 이 아야기는 잘 알다시피 주인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개의 이야기로, 우리나라 전래동화 <오수의 개> 이다.


2002년 출판된 “하치이야기”는 제목그대로 하치라는 강아지의 이야기이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의 강아지 이야기는 사람들을 감동과 슬픔에 젖어 들게 한다. 흰 눈이 소담스레 내리는 어느 겨울날, 황금빛 바탕에 흰 털 무늬가 있는 강아지가 태어난다. 이 강아지는 태어나자마자 도쿄 시부야의 우에노 교수에게 보내진다. 강아지에게 유별난 애정을 느낀 우에노 교수는 팔(八)자 모양의 두 다리를 보고 ‘하치(일본어로 숫자 팔)’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하치의 벼룩을 잡아주고, 욕조에서 같이 목욕도 하고, 시간이 나면 항상 하치 옆에 같이 있는다. 하치는 우에노 교수의 사랑에 보답하고자 매일 아침 시부야 역까지 따라가 출근하는 우에노 교수를 배웅하고, 또 저녁에는 마중 나간다. 그 일은 우에노 교수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뒤에도 이어진다. 한해, 두해가 지나고, 비가 오나 눈이오나 하치는 자신의 생명이 다할 때 까지 그렇게 하염없이 시부야 역에서 주인을 기다린다. 하치가 10년 이란 시간동안 주인을 기다리게 하는 힘은 사랑과 믿음에 대한 보답일 것이다.



「오수의 개」,「하치이야기」는 사는 곳과, 시대는 다르지만 개라는 존재가 어떠한 동물인지 보여준다. 사람보다 개가 낫다는 말이 생각이 난다. 개는 자신의 주인을 배신하지 않는다. 위험에 빠진 주인을 구해준 강아지, 조난당한 주인을 찾기 위해 주변에서 짖거나 구조대를 데리고 온 강아지, 오늘날 안내견의 역할 은 강아지가 우리 삶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들은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친구이자 동반자이다.





“하치에게 신경 좀 써주구려.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이 개에게도 ‘견격(犬格)’이란게 있소. 보낼 때 보내더라도 우리가 데리고 있는 동안에는 견격을 존중해줘야지.” 라는 우에노 교수의 말은 우리가 동물들과 살아가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말이다.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들에게도 지켜줘야 될 가치와 존중이 있다. 사람들은 견격을 생각하지 않고, 단지 인간을 즐겁게 하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동물을 이용하거나 키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생명이 아닌 소유물로 착각을 한다. 애완견의 아름다움을 과시 하기위해 염색을 시키거나 불편한 옷을 입히고 온갖 치장을 한다. 또한 애완동물이 지겹거나 돈이 없어 기를 자신이 없다고 자신의 친구라고 생각한 애완견을 길거리에 그냥 버린다. 과연 그들이 애완견을 친구라고 부를 자격이 있을지 의심스럽다.



지난 9. 29일 KBS 2의 [호루라기]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대구 동구 보호소의 참혹한 실상이 방송됐다. 보호소라는 곳은 말 그대로 동물을 보호하는 곳이다. 하지만 말 못하는 동물이라고, 버려진 동물이라고, 더러운 동물이라고, 보호소에서 조차 동물을 학대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한 나라의 위대성과 윤리적인 진보는 그 나라에서 동물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간디는 말했다. 오늘날 유기견의 수는 증가하고 이를 처리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안락사가 행해진다고 한다. 버려지는 것도 모자라 상처를 입거나 죽어가는 강아지도 있다. 견격에 대해서 조금만 더 생각해 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