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 바랜 부모님의 연애시절 사진을 보고 가슴이 설레고, 헌 책방의 쾨쾨한 냄새를 좋아하며, 유행하는 일레트로닉 음악보다는 통기타에서 울리는 소소한 음악에 더 끌리는 당신. 그대에게 닥 맞는 ‘아주 오래된 낭만’을 선물합니다. 
거리에 드문드문 단풍과 은행잎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완연한 가을이다. 주변에서 ‘나 요즘 가을 타는 것 같아’라는 말을 워낙 많이 들어서 그런지, 가을의 공허함이 점점 더 와 닿아 마음을 한껏 짓누른다. 평소에는 ‘멜론 TOP100’을 무신경하게 랜덤 재생해 놓는 게 당연지사였지만 요즘 같은 기분으로는 좀 달라져야 할 것만 같다.
오랜만에 음악 검색창을 찾는다. 오늘의 검색어는 다름 아닌, ‘가을’이다. 어릴 때 많이 하던 일이다. 미니홈피 배경음악으로 유행가 대신 계절에 맞는 옛날 노래들을 선곡해 두는 게 뭐라도 좀 더 있어 보이는 짓이라고 생각하던 그 때 하던 일이다. 계절은 이렇게 사람을 중2로 돌아가게 한다. ‘제목에 가을이란 단어가 들어간 노래는 생각보다 적군.’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도 아주 보람 없는 일은 아니었다. 제목만으로 설레게 하는 명곡이 보이고, 꽤 좋아하는 뮤지션들의 이름이 눈에 걸린다.


김광석이라는 세 글자에서는 왠지 모르게 가을향이 난다.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그만의 살짝 우울한 그런 목소리는 가을날 밤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그가 1993년 동물원의 곡을 다시 부른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의 가사가 참 와 닿는다. ‘나를 둘러싸는 시간의 숨결, 내가 간직하는 서글픈 상념, 나를 유혹하는 안일한 만족, 내가 알고 있는 허위의 길들’을 고민하는 그 마음이 왠지 내 마음과 같아지는 가을이다. 올 한 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겨울이 다가온다는 그런 이유인지, 아니면 인간이란 원래 가을이면 으레 그렇게 되는 존재인지. 쓸모없는 고민과 망상을 하며, 김광석의 노래 몇 곡을 함께 듣는다.

 
  


선선해진 가을날 아침, 추운 냄새가 마음을 설레게 하는 시간에는 이문세의 달달함이 어울린다. 벌써 24년 전, 1987년에 만들어진 ‘가을이 오면’은 최근까지도 가을이 되면 광고를 통해 만날 수 있다. 바쁜 아침이지만 오늘은 직접 여유롭게 따뜻한 밥을 짓고 싶은 그런 기분이 들게 하는 노래다. 따뜻한 멜로디와 경쾌한 리듬, ‘그대의 슬픈 미소, 그대의 맑은 사랑’ 같은 촌스러운 듯 가장 아름다운 가사. 하루가 뿌듯해질 것만 같은 느낌이다. 다음 곡으로 이문세의 계보를 잇는다는 성시경의 신곡 ‘오 나의 여신님’을 들으면 24년의 세월, 사람들의 감성이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1994년에 녹음된 ‘가을 우체국 앞에서’에는 무언가 풋풋한 윤도현이 기다리고 있다. 윤도현밴드의 첫 번째 노래여서인지 내게 각인된 윤도현의 목소리와는 약간 색다른 목소리로 가슴을 울린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생각을 하는 가사를 들으면 이따금 김광석이 떠오르기도 한다. 다들 핸드폰을 들고 다니는 지금은 쉽게 경험할 수 없는 하염없는 기다림의 감정, 그리고 그 허무한 시간 속에서 머릿속에 각인되는 세상 이야기들이 낭만적이다. 아주 오래된 취향을 찾다 보면 가끔은 현재가 오히려 쓸쓸해 보인다.
 

  

정말 쓸쓸하다. 한참을 가을의 늪에 빠져 ‘가을 타는 낭만인’이 되었지만 문득 가을만 찾던 음악 검색창에 ‘시험’이라는 두 글자를 입력한다. 낭만은 낭만이고, 현실은 여기에 있었다. 추억의 가족밴드, 한스밴드의 1999년 곡 ‘시험’이 보인다. 뭐 시험 얘기하는 노래라도 한스밴드 정도면 추억놀이를 계속할 수 있겠다 싶다. ‘책상에 펴있는 참고서 어젯밤 그대론데, 세상에 창밖이 어느새 환하게 밝아있네.’ 이런 가사가 나온다. 안 되겠다. 저렇게 되기 전에 공부나 해야겠다. 아주 오래된 취향은 시험 끝나고 다음 주에 다시 오겠다. ‘도대체 어느 누가 시험을 만든거야 이렇게 꽃다운 내 인생 시험에 시들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