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세계 육상선수권대회 50km 남자 경보가 있던 날 새벽, 평소 같으면 자고 있을 시간 이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KBS 스텝으로 일하고 있었던 나는 출근 시간에 늦기 않기 위해 몸을 움직여야 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스텝복과 아이디카드를 챙겨 나왔고, 택시를 타기위해 큰길로 향했다. 3시 30분 만약을 위해 맞추어 두었던 휴대폰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지각은 하지 않겠다는 안도감과 함께 차에 몸을 실었다.

새벽4시, 현장인 동성로 앞에 도착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서 그런지 주변에는 거리를 청소하는 청소부와 술에 취한 취객 몇 명이 전부였다. 대구의 중심 번화가라는 타이틀 때문인지 동성로는 밝은 텅스텐 가로등이 새벽을 비추고 있었다. 잠시 후, KBS중계차와 함께 스텝들이 도착 했다. 6시까지 올스텐바이, 모든 장비를 설치하고 셋팅하기에는 촉박한 시간이었다. 발전차의 힘찬 엔진음이 새벽의 어둠을 밀어내기 시작했고, 우리는 새벽의 빈자리를 바쁘게 채워나갔다. 
 

아침 9시, 남자 50Km 경보가 시작되었고 스텝들은 교대를 하며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대부분이 잠을 자거나 허기진 배를 채우는 시간이지만 예외도 있는 법, 몇몇 스텝들은 짧은 휴식시간에도 게임을 하거나 주변의 자원봉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스텝들은 100%가 남성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주로 여성 자원 봉사자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다. 무슨 의도인지 대충 파악이 되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서로가 자신들의 일에 힘든 점과 좋은 점 을 이야기하며 웃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어린아이부터 학생, 어른 할 것 없이 경기를 보기 위해 모여 들었다. 남자 50km경보의 경우 2km를 기준으로 25바퀴를 반복해서 도는 형식으로 진행이 되었기 때문에 선수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보통 육상경기는 한번 선수가 지나가면 다시 보기 힘든 종목, 특이 하게 이번 경보는 같은 자리를 계속해서 지나가기 때문에 관중들에게는 좋은 구경거리가 되었다. 관중들 가운데는 외국인들도 많이 보였는데 특히, 중국인들이 눈에 띄었다. 처음에는 멀리 중국에서 단체 응원을 나온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한국에 유학 온 유학생들 이었다. 자국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대구에 사는 유학생들이 모인 것이었다. 2002년 월드컵을 생각나게 할 정도로 많은 붉은 물결들이 ‘짜요 짜요(힘내 힘내)’를 외치며 응원 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대구의 더위에 지처가고 있었고 관중, 스텝 할 것 없이 모두들 힘이 빠져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고 현장 분위기는 급격히 흥분상태로 변해 갔다. 유명한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가 방문을 했나 싶었지만 아니었다. 사람들이 열광한 이유는 이번 대회의 마스코트인 ‘살비’의 등장 때문이었다. 살비는 관중들이 있는 곳을 누비면서 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 웃음을 전파했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귀여운 장난과 퍼포먼스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어느덧 동성로는 육상경기대회 경기장이 아닌 축제의 장으로 변화해 가고 있었다.

대구의 더운 날씨 탓에 선수들은 많이 지쳐있었고 중간에 쓰러지거나 기권하는 선수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경기는 계속 진행되었고 드디어 마지막 1바퀴가 남은 상황이 되었다. 선수도 지쳤지만 뜨거운 햇빛 아래 엄청난 열기를 뿜어내는 장비에 붙어있는 스텝들도 지치기 마련이었다. 선수들이 마지막 코너를 돌고 있다는 무전과 함께 스텝들은 선수들의 모습을 끝까지 담아내기 위해 혼신을 다하고 있었다.


모든 경기가 끝이 나고 관중들은 경기장을 떠나갔다. 경기장에 남은 사람들은 자원봉사자, 방송스텝, 경찰 등 소수의 사람들 뿐 이었다. 남은 사람들은 묵묵히 자신들의 자리에서 각자의 일을 하고 있었다. 동성로는 언제 경기가 있었냐는 듯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세계적인 대회임에도 불구하고 대회운영 능력이나 관중동원 문제, 교통문제 등 많은 문제들이 지적되면서 구설수에 오르고 내렸던 이번 대회. 대회가 끝난 지금도 일부 언론에서는 좋지 않게 평가를 하는 곳이 많다. 거기다 ‘달구벌의 저주’라 불리며 유명 스타들이 어이없는 탈락을 하는 불운도 뒤따랐다. 하지만 경기의 현장은 언론이 말하는 것처럼 관중이 적지도 않았고 대회 운영이 나쁘지도 않았다. 6천명이라는 자원봉사자의 참여, 매일 같이 관중들로 가득 찼던 대구 스타디움, 대구 시민들의 열정과 노력으로 이번 대회는 무사히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사람들은 언론에서 하는 말이 진실인 것 처럼 믿고 있다. 만약에 이들이 경기장을 한번이라도 방문했다면 ‘여론이 지금 보다는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