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웠지만 신물이 났다. 온 나라에 사건이라고는 10.26 재․보궐선거, 그것도 서울시장 보궐선거밖에 없는 것처럼 보였다. 언론에는 매일 같이 나경원, 박원순 두 후보의 공방전과 ‘네거티브’가 대문짝만하게 보도됐고, ‘100분토론’도 ‘서울시장 후보자 토론’으로 바뀌었으며 SNS와 사람들의 이야기도 한 곳으로 수렴했다.
그러는 사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사건들은 화제성 경쟁에서 밀려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지난 22일 박원순 후보의 광화문 유세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같은 시간 열린 ‘Occupy 서울’ 반금융자본 집회는 초라하게 끝났다. 목원대 재학생이 광화문 광장에서 등록금 문제 해결을 촉구한 ‘1만배 시위’도, 학벌 사회의 타파를 외친 서울대 재학생의 자퇴도, 세상의 무관심 속에 잊혀졌다. 심지어 국회의 중요한 이슈들도 함께 묻혔다. 18대 국회의 마지막 국정감사도 정치권의 선거 올인 속에 조용히 지나갔고, 한미FTA 비준안 처리라는 중요한 문제도 사회적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선거는 이제 끝났다. 선거만 잘 치른다면, 모든 일이 해결되고 세상이 좋아질 거라는 식의 ‘선거 만능’ 담론들은 선거 종료와 함께 이제 유효기간이 완전히 끝난 것이다. 미디어가 주목하지 않았던 곳, 우리 주변에 있었지만 바라보지 못했던 곳으로 눈을 돌려야 할 때다. 지금 대학가에는 수많은 투쟁들이 곳곳에서 연일 진행되고 있다. 선거 이슈가 온 나라를 휩쓸었을 때도, 중간고사 기간으로 인해 학생들의 무관심이 극에 달했을 때도 누군가의 외침이 끊긴 적은 없다. 다만 주목받지 못했을 뿐이다.

ⓒ 엄지뉴스

재․보궐선거 당일이었던 26일, 서울대학교에서는 ‘법인설립 공청회’가 열렸다. 학내 구성원의 의견 수렴 없는 독단적인 법인화 추진은 서울대 내의 해묵은 문제다. 공청회가 마무리되면 사실상 법인화가 처리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총학생회를 비롯한 학생들, 그리고 법인화를 반대하는 교수들이 이를 저지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정부 주도의 국립대 개혁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충북대에서도 나오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일방적인 ‘국립대 구조조정 컨설팅’에 학교가 나서서 반기를 들었다.
학교 구조조정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은 사립대들도 매한가지다. 한국외국어대 서울캠퍼스 학생들은 26일 오후 본관 총장실 앞 점거 농성에 돌입했다. 본․분교 통합과정에서 학교 측이 캠퍼스 간 복수전공 제도를 ‘장사용’으로 이용해 서울캠퍼스 학생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이유다. 북한학과 폐지를 비롯한 학과 통폐합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동국대 학생들도 27일 오후 본관 점거를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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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층위의 학내 구성원들과 단위들의 권리를 위한 투쟁도 진행 중이다. 건국대 총여학생회는 여학생 ‘생리 공결제도’ 도입을 위해 투쟁 중이다. 같은 학교의 학보사 <건대신문>은 주간교수의 일방적인 편집방향 지시를 벗어나 독립 편집권 확보를 위한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홍익대, 연세대, 아주대의 청소노동자들도 각자의 이유로 학내 농성 중이다.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은 파업사태와 관련하여 학교 측으로부터 소송을 당한 바 있으며, 연세대와 아주대에서는 ‘노조 활동 방해’를 도모하는 용역업체의 문건이 발견됐다. 우체국 근로 임금을 체불당한 성공회대 학생 2명은 근로를 중단하고 시위에 나섰다. 이렇게 우리가 들어야 할 목소리들은, 도처에 산재하고 있다.

물론 정치는, 선거는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들 스스로가 생활하고 있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고통과 신음의 목소리, 공동체 내의 정치사회적 갈등 역시 선거만큼이나 중요하다. 이제라도 사회 곳곳에 빛을 비추어 감추어진 모순들을 드러내야 한다. 우리의 생활 곳곳에 맞닿은 문제들에 시야를 넓히고, 또 더 넓은 스펙트럼의 보도를 미디어에 요구해야 한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 바로 지금이 가장 빠른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