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혐의에 대해 31일 1심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 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는 한 전 총리가 건설업자 한만호 씨로부터 대통령 후보 경선 자금 등의 명목으로 9억 여 원을 받은 혐의에 대해, “직접적인 증거는 한 씨의 검찰 진술 뿐”이고 “이는 일관성이 없어 신빙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하며 무죄를 선고했다. 1년 3개월 동안 총 23차례의 재판 끝에 내려진 판결이다.


법원은 한 씨가 “돈을 줬다”는 진술을 후에 “거짓말을 했다”고 번복했다는 점에서 일관성이 없음을 지적했다. 한 씨가 한 전 총리의 차 트렁크에 돈을 넣었다면서 한 전 총리의 차량 종류도 몰랐다는 점 등도 무죄 판결의 근거가 됐다. 또 한 씨가 비자금을 만들었을 수는 있어도 한 전 총리에게 이 비자금이 전달됐다는 증거는 없다고 강조하는 등 검찰이 제시한 증거를 모두 반박했다.



선고 직후 한 전 총리는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에서 “법원과 국민에게 감사한다”며 “이번 판결은 무리한 기소를 한 정치 검찰에 대한 유죄선고다. 이 사건을 마지막으로 야만 정치가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 2012년 정권 교체를 통해 검찰 개혁을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법원의 무죄 선고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보도에 따르면 이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금 특수1부는 “납득할 수 없다. 항소하겠다”고 말했다.


검찰은 야당의 서울 시장 후보를 상대로 표적 수사를 벌였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 놓였다. 이번 사건은 2010년 1월 검찰이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5만달러를 받은 혐의로 한 전 총리를 기소한 것과 ‘판박이’라고 불릴 만큼 똑같은 모양새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한만호 씨와 마찬가지로 곽 전 사장도 진술을 번복했고, 두 사건 모두에서 한 전 총리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특정 인물을 겨냥한 사건이 두 차례 모두 비슷한 과정을 거쳤고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점 등으로 미루어보아 검찰이 악의적인 표적 수사를 벌였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높다. 직접적인 물증을 찾아내기보다는 곽 씨와 한 씨의 진술에만 의존하려는 검찰의 태도도 문제였다. 혐의 입증을 위해서는 물증과 정황이 확실해야 하는데, 검찰은 진술 하나만으로 기소부터 하고 보는 것이다.

조선, 중앙, 동아 등 보수 언론은 무죄 판결이 나자 태도를 바꿨다. 검찰 편에서 한 전 총리를 비난하던 조중동은 일제히 검찰을 비난했다. 한 전 총리의 유죄 여부를 두고 법정 공방이 치열할 때 보수 언론들이 앞다투어 사실 확인도 하지 않은 이야기를 보도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검찰이 곽 전 사장의 비자금 사용 내역을 수사하던 시기에 조선일보 1면에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수만달러를 받았다”는 섣부른 기사가 실렸다. “다음주 쯤 한 전 총리가 검찰에 소환될 것”이라는 추측성 기사까지 덧붙였다. 또 지난 3월 31일 재판에서 한 전 총리가 진술거부권을 행사한 데 대해서도 보수 언론은 ‘무엇이 두려워 검사 신문 피하나’, ‘진실 추궁 두려운건가’ 등의 제목으로 한 전 총리를 비난하기 바빴다. 추측이 난무하는 공격적인 보도를 낸 보수 언론은 스스로 공정성을 포기했음을 증명한 꼴이 됐다. 검찰보다도 앞서나가는 보수 언론의 저급한 태도와, 이제 와서 언제 그랬냐는듯 표정을 바꾸는 비열한 태도가 실망스럽다.

 



검찰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스스로 제 무덤을 판 꼴이 됐다. 현 정권의 비위를 맞춘 대가로 정의를 잃었고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사실 이번 사건뿐이 아니다.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 배임죄 기소, 피디수첩 명예훼손 기소 등 그동안의 수많은 표적 수사에 국민들은 충분히 분노해왔다. 이번 한명숙 전 국무총리 무죄 판결은 국민들이 검찰에 더욱 실망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정의를 뒷전으로 하고 야당 정치인 꼬투리 잡기에 급급한 검찰의 비겁한 태도와, 출처가 불분명한 기사들로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만든 보수 언론들의 비윤리적인 보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검찰과 언론의 신뢰성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지금이라도 검찰은 국민에 대한 신의와 정의를, 언론은 객관적이고 신중한 태도를 되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