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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한국 사회는 왜 감정노동을 요구하는가?

사실 감정노동이라는 것 자체는 서비스산업이 발달하면서 나타나는 불가피한 현상이기는 하다. 서비스산업 노동 자체가 고객과의 대면 상황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수준에서 일어나는 감정 관리, 다분히 인간적인 수준에서의 표정 관리 이상을 서비스산업 노동자들이 강요받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최근 기업들의 마케팅은 단발성 고객 유치를 넘어 고객의 기업 충성도를 높이기 위한 ‘고객 감동 서비스’를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모토 하에서 많은 기업들은 직원들의 친절 매뉴얼을 만들어 CS(Consumer Service)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캐셔, 텔레마케터, 승무원, 웨이터 등으로 대표되는 서비스직 종사자들은 무조건적인 친절은 물론이고 목소리 톤, 입꼬리의 각도, 인사시의 허리 각도 등 사소한 것들까지도 회사의 제한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 어떤 ‘진상 고객’을 만나더라도 웃음을 잃지 않고 화를 내지 않기를 교육받는 것이다.



게다가 감정노동을 관리하는 새로운 노동 통제 기법들이 계속해서 등장하며, 노동자의 숨을 조이고 있다. ‘미스터리 쇼퍼’는 고객을 가장하여 매장 직원의 서비스를 평가하는 직업이다. 일반 고객으로 가장하여 매장을 방문하여 점원의 친절도, 외모, 판매기술, 분위기 등을 평가한다. 개선점을 제안하기 위해서라는 허울 좋은 말이 있긴 하지만 사실상 언제 나타나서 무슨 일을 할지 모르는 그들은 감정노동자들에겐 악마에 가까운 존재다. 최근에는 통신 기술 발달을 바탕으로 CCTV 등의 기제로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의 표정을 관리실에서 감시 및 평가할 수 있도록 설계된 사업장도 생겨났다. 이러한 감정관리에 대한 통제 기제들 때문에 노동자들은 스스로 감정을 선택하여 행동하는 것을 제한받는다.


ⓒ 참세상


서비스산업의 이윤, 감정노동에서 나온다



감정노동이 서비스산업에서 지속적으로 강조되는 가장 큰 이유는 기업의 경제적 이윤 동기에 있다. 서비스산업의 독특한 특성상, 고객의 서비스 만족도나 ‘대접 받는 기분’ 같은 것이 판매와 직결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객을 응대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직원들의 행동과 표정, 그리고 그 내면의 감정까지를 고객의 마음에 드는 그것으로 치환하고자 하는 것이 감정노동의 탄생으로 연결된 것이다. 즉, 서비스 부문에서 이윤의 원천은 서비스 노동자들이 수행하는 감정노동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김경희 교수의 2006년 연구 결과에 수록된 한 백화점의 내부자료는 고용주가 감정노동을 요구하는 동기를 추측 가능케 한다. 자료는 고객의 유형과 서비스 처리 결과에 따른 재구매율 차이를 분석했다. (그래프 참조) 이 자료에 따르면 고객의 재방문, 즉 미래의 수익을 위해서 고객의 불평에 대해서는 신속히 처리해주는 것이 고용주 입장에서는 이윤 극대화를 위한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다. 그런데 이렇게 신속한 서비스로 고객의 불평을 해결하는 것을 노동자들의 감정을 통제에 기댄 그들의 재량에 맡겨두는 것이 문제다.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은 직원의 감정을 관리하는 것 이외에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품질 보상 기준을 고객에게 유리하게 조정하거나, 매장의 동선을 고객이 만족할만하게 바꾸는 것도 서비스 질의 향상이다. 직원이 자신의 감정을 관리해야 하는 것이 서비스업의 가장 큰 덕목이 된 것은 바로 이 방법이 전혀 돈이 들지 않는 경제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서비스 질 향상의 책임을 노동자의 ‘웃음’에 전가시키고 기업의 서비스 문제를 개개인의 문제로 치환하는 것이다. 고객이 만족하지 못하면, 고객을 잘못 응대한 개인의 책임을 물으면 되고 이 경우 다른 부대비용은 발생하지 않는다. 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 방법이 기업에 의해 선택된 것이다.
 



출처 :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
손님이 왕, 그러나 왕이 있으면 노예도 있다



한국 사회의 특수한 문화도 감정노동의 횡행에 한 몫 한다. ‘손님이 왕이다’라는 담론에 어릴 때부터 길들여진 한국의 고객과 직원들은 모두 고객 편향적인 거래 행위를 한다. 직원의 사소한 표정이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다는 이유로, 고객이 해당 사업체의 고객센터는 물론, 블로그나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회사 이미지를 깎아내리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제왕적 고객’이라는 변수는 회사의 정책을 통해 그 책임이 또 다시 감정노동자에게 전가된다. 고객이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하였을 경우 사용할 수 있는 ‘고객 불만족 신고 카드’의 존재가 그것을 증명한다. 사내 서비스 기준에 따라 충실한 서비스가 제공되었더라도, 고객을 불편하게 할 만한 표정 하나, 말 하나가 꼬투리 잡힐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부 서비스센터에서는 직원들이 고객에게 추후에 서비스 평가 전화가 오면 꼭 가장 좋은 점수를 달라고 부탁하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손님이 왕이 되는 상황은 얼핏 ‘고객 중심주의’라는 허울 좋은 말로 포장되면 꽤 ‘바람직한’ 상황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절대왕정 하에서는 왕이 있으면, 왕 앞에 꼼짝달싹 못하는 노예도 있는 법이다. 왕이었던 손님은 자신의 일터에서는 노예가 된다. 즉, ‘손님이 왕이다’라는 환상이 사실은 우리 모두를 노예로 만드는 구조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래도 절대왕정을 그대로 유지해야 할까.

페르마타
페르마타

청년/저널리즘/문화 연구자. 페르마타 = 그 음의 길이를 2~3배 길게. 마쳐라.

2 Comments
  1. Avatar
    오늘

    2011년 11월 2일 08:49

    힘들게사는 사람들끼리 욕하고 참고…
    아무리 컴플레인이라도 진상부리는 고객은 경찰불러서 쫓아야죠.

  2. Avatar
    J

    2011년 11월 2일 09:53

    유럽에 살면서 가장 마음에 안 드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서비스개념’이 없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장사를 하고싶은 건지 의문이 들 때가 한두번이 아니거든요.
    반대로 일본에 있을 때는 ‘과잉서비스’가 불편했었죠. 한국도 마찬가지구요.
    구매자를 뭐 보듯 하는 것도 문제지만 제왕으로 모실 필요까지도 없지요. 딱 중간이 좋을 것 같은데 그게 왜 그리 힘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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