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2011년도 수능이 끝났다. 매년 보아왔던 익숙한 장면들이 재연됐다. 후배들은 고사장에 들어서는 선배를 향해 떠들썩한 응원전을 펼쳤고, 어떤 학생은 경찰차를 타고 아슬아슬 고사장에 골인했다. 자못 비장한 수험생의 표정과 학교 앞을 떠나지 못하는 부모님의 염려스런 얼굴이 교차되었다. 고사장 밖도 비슷하긴 마찬가지. 언론에서는 늦어진 출근 시간의 교통상황을 중계했고, 이번 년도의 수능 난이도를 점쳤다. 이렇게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온 나라를 들썩이게 만드는 전 국가적인 행사가 된 지 오래다. 매년 수십만의 수험생이 수능 시험을 치러내고, 이에 나라 전체가 들썩인다. 그렇게 수능은 모두가 응당 겪어야 할 통과의례로 여겨진다. 

출처 ; 경향신문

 여기에 반기를 든 무리가 있다. 바로 대학 입시를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대다수의 고3들이 수리영역을 풀고 있을 그 시간, 이들은 거리로 나섰다. ‘대학입시 거부로 세상을 바꾸는 투명 가방끈들의 모임’ 소속 회원들은 어제 오전 청계광장에 모여 대학 입시 거부 선언을 했다. 이들은 “경쟁만을 강요하는 교육과 사회를 바꾸기 위해 대학 입시를 거부한다”고 밝혔다. “입시 경쟁이란 남의 꿈을 밟고 올라가는 전쟁이며 우리의 삶에 가격을 매기는 상품화 과정”이라며 “경쟁에 뛰어들어 남을 짓밟고 뜀박질하는 대신 스스로 거부자의 길을 택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활동을 해 나갈 계획으로, 오는 12일 서울파이낸스 센터 앞에서 경쟁과 학벌만을 강요하는 교육과 사회를 바꾸는 거리 행사를 열 예정이다.

 대학에 진학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을 떠나기로 결심한 이들도 있다. 고려대학교 김예슬씨의 자퇴에 이어, 제 2, 제 3의 김예슬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대에 재학 중이었던 유윤종씨는 대학 서열화와 입시위주의 교육을 반대하며 자퇴했다. 그는 ‘저번 주에 자퇴서를 냈는데…’라는 대자보에서 “사회에서의 학력•학벌 차별 등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고 저항하고 싶다”고 자퇴 이유를 설명했다. 덧붙여, “(재학생) 여러분이 서울대 재학생•졸업생이라는 게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주시고 학벌 사회와 대학 교육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주시면 좋겠다”고 썼다.

11월 10일 열린 대학입시 거부선언 기자회견 현장 (출처; 연합뉴스)

 이들은 단지 대학교 자체를 거부한 것이 아니다. 대학을 거부함으로써, 대학입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맹목적인 경쟁과 비인간화를 거부하고자 하는 것이다. 대입이라는 좁은 구멍을 통과하려 애쓰는 사이 개성과 다양성은 묵살되며,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친구를 밟고 올라서야 한다는 잔인한 생존 원리를 깨닫는다. 이런 무아지경 속에서 교육은 권리의 영역에서 이탈해버린다. 고등교육은 대학입시를 위한 수단이며, 대학 교육은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전유물이다. 대학입시거부는 이런 현실에 저항하고자 하는 이들의 한 방편이다. 진짜 교육을 받기 위해 교육을 거부하는 이들은 “교육이 누구나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보편적 권리이길 원하며 우리 사회가 모든 이들에게 최소한의 생존과 사람다운 삶을 보장하기를 요구한다”고 했다.

 또한, 20대를 두고 제기되는 수많은 사회문제의 시발점에 대학입시가 있다. 대학의 서열은 과열된 입시 경쟁을 부추기고, 대학 교육의 질에 영향을 미친다. 뿐만 아니라, 직업을 구할 때 대학은 사람을 평가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대학으로 인간의 가치를 규정해버리는 폭력 앞에 개인은 무력하기만 하다. 유윤종씨는 대학 서열화는 “대학 교육 차원에서도 악영향이 있으며 등록금 문제도 서열화 및 초과수요 문제와 깊은 인과 관계가 있다”면서 “사회에서의 학력, 학벌 차별 문제 등 모든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저항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은 대학을 앞에 두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대학을 넘어서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자 한다.

 하지만 사회는 이들에게 묵묵부답이다. 대학입시거부를 치기어린 투정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다수이다. 예전부터 끊임없이 대학 입시 제도에 문제제기가 있어 왔고 대입으로 인한 숱한 사회문제가 신문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침묵하고 있다. ‘다수’에 의해 ‘정답’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이유를 방패 삼아 국가와 공공기관은 아무런 대응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대학 입시 제도에 균열이 있다면, 균열을 인정하고 그 밑에 내재된 모순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균열을 극복하려는 이의 목소리를 발견하고 인정하며 함께 해결책을 찾으려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출처 ; 연합뉴스

 모두가 가는 길이라고 해서 정답은 아니다. 누군가에 의해 정해져 버린 정답을 거부하고 과감히 다른 길을 가려 하는 이들. 다수 속에 침묵할 수 있는 기회를 과감히 버리고 사회 변화의 길을 택한 이들에게 사회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발견해주고 대답해주는 것이다. 이들이 아무리 외쳐봤자 누군가 응해주지 않는다면 이들의 외침은 그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게 될 뿐이다. 이들이 외쳤으니, 이제 국가가, 공공기관이, 그리고 침묵하는 우리 다수가 대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