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의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았다. 대통령이 하고 싶었고 의사도, 판검사도 하고 싶었다. 택시기사도 하고 싶었고 경찰도 소방관도 청소부도 하고 싶었다. 무엇이든 눈에 들어온 것들은 꿈이 되었다. 대통령이 되면 아버지에게 탕수육을 시켜준다는 그런 어린 아이의 마음이었을까. 하고 싶다는 것들의 정체도 모르고 역설적일지도 모르는 꿈들을 꾸어 왔다. 대통령도 하고 싶고 청소부도 하고 싶다는 건 극적인 일이니 말이다. 재벌 외동아들과 평범한 여자가 사랑에 빠진다는 시시한 드라마 스토리만큼 어울리지 않는 존재들의 결합이다. <달과 6펜스>는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얼마 전 소설가 서머싯 몸은 스파이로 밝혀져 다시 한 번 유명세를 탔다. 아이러니하게도 몸의 <달과 6펜스>는 돈만 밝히는 속물들로 가득 찬 세상을 경멸하며 가장 작은 화폐 단위인 6펜스짜리 동전에 비유한다. 주인공인 찰스 스트릭랜드는 그 세상을 등지고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 부인과 자녀들, 그리고 좋은 대우를 보장하던 자신의 직업을 버리고 말이다. 세상은 스트릭랜드가 다른 여성과 정분이 난 것이라 추측할 뿐이다.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 작품의 화자는 스트릭랜드 부인의 부탁을 받아 주인공을 찾아 나선다. 화자가 스트릭랜드를 발견한 건 프랑스의 어느 도시였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 달리 스트릭랜드는 거지가 되어 혼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가 부도 명예도, 가족도 버린 채 그가 찾은 건 지금까지 잊지 못한 자신의 꿈, 화가였다. 부랑자에 불과한 그의 모습은 화자와 독자에게 강렬한 충격을 선사한다. 그렇게 달이 무엇인지 우리는 어렴풋하게 알아 간다. 그렇다. 달은 6펜스와 동떨어진 꿈같은 세계다.
하지만 꿈에 대한 열망과 반대로 화가 스트릭랜드는 자상한 가장의 모습을 버린 악마적인 인물로 비춰진다. 자신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는 인물에게 고마움도 모르고 매몰차게 대하며 모멸감까지 준다. 돌변한 스트릭랜드의 성격은 작가가 독자에게 주고자 했던 또 다른 충격이다. 이 충격으로 우리들은 혼란에 빠진다. 작가가 스트릭랜드를 통해 말하고 싶던 건 무엇인지. 나쁜 성격, 인격이 달과 어떤 상관이 있는지. 우리가 혼란을 겪는 건 고갱을 모델로 삼은 그의 꿈과 재능은 아름답게 묘사되지만 인간 스트릭랜드는 그렇지 않아서이다. 

그러나 ‘달’로 받아들어야 하는 건 그의 꿈과 예술적 재능뿐만이 아닐 것이다. 스트릭랜드의 나쁜 성격, 인격, 행동 그 모두여야 한다. 스트릭랜드가 위선적이지 않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런던의 문단, 사교계의 속물들, 예술에 대한 고뇌는 없이 잘 팔리는 그림만을 그리는 화가 스트로브, 육체적 관능만을 추구하는 블란치, 가정을 떠났을 때 남편에 대해 저주를 하다 천재로 알려지자 그의 아내였음을 자랑하는 스트릭랜드 부인 같은 인물들과 대조돼 그가 왜 달에 비유되는지 말해주고 있다.
불빛이 사라지고 다시 해가 뜨면 사람들은 스트릭랜드가 떠난 증권 거래소에서 은행에서 직장에서 6펜스동전을 센다. 돈을 건네주고 건네받으며 사람들의 얼굴에는 만감이 교차한다. 반짝이는 동전과 빳빳한 지폐만이 사람들의 꿈을 채워준다. 사람들은 다시 웃음과 돈을 팔 것이다. 그들에게 무엇을 한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돈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용사들의 주검조차 TV 한구석에서 올라가는 숫자들로 가치가 매겨진다. 6펜스의 세상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찰스 스트릭랜드 같이 꿈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그때의 우리가 어떤 생각으로 그런 꿈들을 꿨는지 지금의 우리는 모른다. 지금 우리는 남들의 평범하지 않은 꿈을 허황되다며 비웃는다. 바로 지금, 만약 예전의 우리를 본 다면 남들처럼 비웃을 수 있을까? 
서머싯 몸의 다른 작품 <인간의 굴레>, <면도날>이 대게 그런 것처럼 <달과 6펜스>는 잘 읽히는데다가 재미까지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이 높이 평가 받는 이유는 밤하늘에는 달이 있고 손으로 잡을 수 있다고. 단지 키가 작아서,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아서 볼 수밖에 없다고 나중에는 잡을 수 있겠지 하고 생각했던 그때를 생각나게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