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ESA에서는 대학생들이 자신의 핵심역량 수준을 스스로 진단할 수 있는 테스트를 제공합니다. 이 진단평가를 통해 대학과 대학생들이 졸업 후 직업세계에서 공통적으로 필요로 하는 핵심역량을 개발하는 데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K-CESA 홈페이지에서 발췌)
최근 다수의 대학에서 ‘대학생 핵심역량 진단평가’(이하 핵심역량평가)라는 이름의 생소한 평가를 유행처럼 실시하고 있다. 대학생 핵심역량 진단평가(K-CESA; Korea Collegiate Essential Skills Assessment)는 학생들의 진로개발과 대학의 교육역량 강화를 지원하기 위해 2010년 개발된 진단 도구다.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주도하에 개발되었다. 
공식 홈페이지(http://www.kcesa.re.kr/)의 설명에 따르면, 이 도구에서 측정하고자 하는 개념인 ‘핵심역량’은 대부분의 직종에서 직무를 수행하는 데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지식, 기술, 태도 등을 의미한다. 의사소통 능력, 자기관리 역량, 종합적 사고력, 글로벌 역량, 대인관계 능력, 자원/정보/기술의 활용 능력 등이 측정 대상인 핵심역량에 해당한다.
2010년 개발된 이후 핵심역량평가는 전국 각지의 대학에서 실시되고 있다. 국가 정책적 지원 덕인지 현재 이 평가는 적게는 2만원에서 많게는 5만원에 이르는 검사 비용을 학교가 전액 부담하는 방식으로 시행되고 있다. 연세대는 2010년 12월에 선착순 200명의 재학생을 모집하여 핵심역량평가를 실시한 바 있다. 최근에는 올 10월 동국대와 경희대가 핵심역량평가를 실시했다. 동국대의 경우에는 성적이 우수한 학생 25명에게 1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의 참여 유인책을 두기도 했다.

핵심역량평가의 실효성에 의문 제기 … “귀찮기만 하다”
핵심역량평가는 일부 기업에서 신입사원 채용 시 평가도구로도 활용되고 있으며, 이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도구 개발 단계에서부터 기업에게 개인의 핵심역량 정보를 제공하는 것까지를 고려한 진단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핵심역량평가에 참여한 학생들은 평가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 15일 핵심역량평가에 응시한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1학년 심하아린 씨는 “상황에 대한 응답을 요구하는 항목에서는 실제 자신과 관계없이 정답인 것 같은 답을 체크하면 결과가 좋게 나올 것 같다”며 기업에서 채용 시에 이 자료를 활용하는 것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실제로 핵심역량평가의 대부분은 질문 문항에 정답을 표시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덕 시험 문제를 풀듯 상황에 가장 상식적인 답변을 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외국인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 ‘영어를 못하더라도 친절한 행동으로 적극적으로 의사소통한다’ 라고 답하면 되는 식이다. 전화를 통한 말하기 검사를 하는 ‘의사소통 능력’이나 논술이나 작문을 필요로 하는 ‘종합적 사고력’ 분야를 제외하면 평가의 전 부분에서 같은 문제가 드러난다.

대학생 핵심역량 진단평가 황당 질문 모음
– 나는 동료들을 진심으로 대한다 (대인관계능력 진단평가)
– 나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도 솔선 수범한다 (대인관계능력 진단평가)
– 1년 이상 해외 거주 경험이 있다 (글로벌 역량 진단평가)
– 해외 인턴십 경험이 있다 (글로벌 역량 진단평가)
– TEPS, TOEFL, TOEIC, HSK, CPT 점수 기입하기 (글로벌 역량 진단평가)
– 아래 사진 (자원, 정보, 기술의 활용능력 진단평가)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교에서 핵심역량평가를 재학생들에게 의무적으로 참여시키게 하고 있어 학생들 사이에서 불만이 나오고 있다. 심 씨가 재학 중인 서울시립대는 도시과학대학과 정경대학 1학년 재학생 전원을 핵심역량평가에 의무적으로 참여시켰다. 심 씨는 “참여자의 수요와 관계없이 평가가 의무적으로 진행되는 바람에, 친구들 대부분 평가를 억지로 대충 진행했다”고 말했다. 
핵심역량평가를 의무 시행하고 있는 대학은 서울시립대뿐만이 아니다. 광주대는 2010년 11월 1학년 재학생 전체가, 한국성서대는 2011년 2월 2학년 재학생 전체가 핵심역량평가에 응시했다.

ⓒ 오마이뉴스

21세기 대학은 직업훈련소? … 대학생 획일화시키려 하나
핵심역량평가의 실효성 문제에 더해 평가의 목적이나 정당성 자체에 의문을 표하는 목소리도 있다. 핵심역량평가로 인해 대학생들이 획일화된 교육을 받고, 따라서 획일화된 가치관을 갖게 될 것이라는 우려다. 평가가 기업의 채용 자료로 활용된다면, 이는 취업률에 민감한 대학들의 교육 방향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핵심역량평가가 대학생들을 구분 짓는 기준으로 작동할 경우에, 대학생들이 ‘의사소통을 잘 하는 사람, 글로벌 마인드가 갖춰진 사람’과 같이 유형화된 ‘역량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될 개연성이 높다. 핵심역량평가 점수가 마치 토익 점수처럼 또 하나의 ‘스펙’이 된다면, 응시자들은 핵심역량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의사소통이나 자기관리 능력, 영어 실력, 대인관계 능력 등을 학습할 것이다. 대학생들이 획일화된 가치를 좇게 되는 것이다.
서울대 교육학과 4학년 이슬 씨는 이 평가에 대해 “역량이라는 단어를 모든 대학생들에게 사용하려 하는 것에서부터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없는 평가”라고 평했다. 2009년 학과 수업을 통해 핵심역량평가의 개발과정에서 시험적 응시 대상으로 참여했던 그는 “기업만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요구하는 핵심역량이라고 표현했지만, 경영학적인 논리가 평가 전체의 지배적인 컨셉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핵심역량평가의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평가의 목적에 대해 ‘대학생의 핵심역량을 측정함으로써 사회적 변화와 기업의 요구에 부응하는 인재양성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대학 진학률이 80%에 육박해 대학이 취업을 위한 관문으로 기능하는 게 한국의 현실인 점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학을 기업의 요구에 부응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직업훈련소를 탈바꿈시키는 것을 진리로 삼을 수는 없는 일이다. 대학의 기능을 사회의 요구에 맞게 재정비하기 위해 개발된 핵심역량평가, 본격적인 확대 시행 이전에 대학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