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은 대개 비슷비슷 한 삶을 살고 있다. 20세에 대학 입학, 남자라면 군대, 졸업 후 취업…… . 그렇기에 사람들은 색다른 경험에 대한 갈망과 이러한 ‘색다른 경험’을 한 이들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다. 여기 20세 이상의 건강한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가야 하는 군대 대신, 대체 복무로 페루 행을 택한 이가 있다. 바로 영남대학교 언론 정보학과에 재학 중인 최명군(26)이다. 대체 복무로 2년 2개월 동안 KOICA의 협력요원 자격으로 페루에 거주했던 그는 그 곳에서 소중한 것을 많이 얻어왔다고 말한다. 그가 무엇을 얻어왔는지 궁금한 이들이나, 군 복무를 앞두고 복무 기간 동안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어 했던 이들은 그의 말에 귀 기울여 보자.


              한국 국제 협력단 코이카의 홈페이지. 대한민국이 국제 사회에서 선진국으로서 해야할 의무를 담당하는 기관이다.

안녕하세요, 자기 소개 좀 해 주시겠어요?

현재 영남대학교에 재학 중인 최명군 입니다. 군 대체 복무로 KOICA의 협력 요원으로 페루에 다녀왔어요.

– KOICA(이상 코이카)라는 개념이 생소한데 설명과 더불어 다녀온 KOICA 프로그램의 소개도 부탁드릴께요.

KOICA의 약자의 뜻은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인데요, 사실 약자 뜻 보다 이렇게 설명하는 것이 우리에겐 더 쉬운 개념이겠죠? (웃음) OECD 가입 국가는 의무적으로 국제 협력을 이행 해야 하는데, 이러한 의무를 담당하는 곳이 코이카입니다. 그리고 코이카는 항상 개도국에 여러 가지 형태의 요원들을 파견합니다. 일반요원 파견 그리고 군대 대신에 복무할 수 있는 협력요원과 협력의사 직이 바로 그것입니다.


코이카에 이러한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쫌 운명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요. 당시 제가 있었던 영어 회화 스터디의 선배가 코이카라는 단체가 있다고 저에게 얘기 해 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들을 당시에는 그렇게 주의 기울이지 않았죠. 군대 대신 카투사를 가고 싶었거든요. 보편적으로 생각되는 강압적’, ‘수동적이라는 군대의 모습이 저의 가치관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서요그러다가 우연히 인터넷에서 코이카 모집광고를 보고 클릭을 하게 되었는데, 희한하게 지원 마감일자가 하루 밖에 안 남았더라구요. 급하게 지원서를 쓰고 지원했는데, 운이 좋았죠.

국가에서 파견하는 만큼 지원하는 과정도 힘들었을 것 같아요. 뽑히기까지 어떠한 과정을 거치나요?

저는 협력요원 중 컴퓨터 분야를 지원했거든요. 지원해서 서류가 통과되면 전공시험, 영어시험, 전공면접, 영어면접을 치른 후 마지막으로 인성면접을 봐요. 다른 시험들은 그렇게 까다롭진 않았어요. 하지만, 인성면접이 문제였죠. 봉사정신에 관해서 묻는 것이었는데, 사실 제가 인성면접에서 떨어졌었어요. 하지만, 다행히 결원이 생겨 후보자였던 제가 들어갈 수 있었죠. 운명적이었어요. (웃음)

정말 그렇네요! 협력요원으로 뽑힌 후 페루에 가셨는데, 본인의 선택이었나요? 그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 제가 선택했죠. 사실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세 대륙의 국가들 중에 한 곳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전 남미 국가를 선택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초등학교 때 마추픽추에 대해서 조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이미지가 제 머릿속에 굉장히 선명하게 남아있었거든요. 그래서 마침 페루가 지원국가에 있길래 신청했습니다.

그럼 마추픽추도 가보셨겠네요?

아니요,(웃음) 못 가봤어요. (- 아니 왜요?) 그곳에서 여행에 대한 필요성을 못 느꼈거든요. 일단 제가 봉사하러 왔기 때문에 여행을 하면 봉사에 대한 마음을 잃어버릴 것 같았어요. 그리고 제가 있었던 곳이 항상 만년설을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어서 굳이 어딜 가지 않아도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었죠.

<우리에겐 마추픽추로 기억되는 나라 페루, 이 이국적인 곳에서의 2년 2개월은 그에게 자연과, 사람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담당업무가 무엇이었나요?

  음, 배치에 따라 업무가 다르지만 협력요원들은 주로 학교 선생님으로 파견되었어요. 저는 원래 큰도시의 컴퓨터 선생님으로 파견되었는데, 그곳에는 컴퓨터 시설과 정식 컴퓨터 선생님까지 있었어요. 당연히 제 도움은 별 필요가 없었고, ‘도대체 내가 왜 파견되었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다른 기관을 찾기 시작해서 결국 시골마을의 선생님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아까 전에 기관을 본인이 스스로 찾으셨다고 했는데, 그런 건 코이카에서 찾아 주는 것이 아닌가요?

, 맞아요. 코이카에서 대상 국가로부터 수요조사를 하고, 신청한 기관에 요원을 파견하죠. 하지만 개중엔 지원금 때문에, 필요도 없는데 지원을 신청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경우엔 자기가 찾아 나서야죠. 스스로 기관을 찾아서 코이카에 다시 신청을 해요, 그러면 그 기관에 봉사단원으로 갈 수 있어요. 코이카의 단원으로서 항상 요구되는 것 중 하나가 진정으로 필요한 기관이 있다면 도움을 요구하는 자세거든요. 그렇기에 본인이 스스로 찾는 것도 중요하죠. 코이카는 그저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스스로 봉사하고자 하는 태도가 매우 중요한 덕목이네요?

   그렇죠. 정말 필요한 덕목입니다. 기회를 찾아가는 이들이 많은 것을 얻어가요. 많은 분들이 착각하시는 것들 중에 코이카가 여행도 갈 수 있는, 그저 좋고 쉬운 프로그램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정말 잘못된 생각이에요. 언어도 다르고, 국적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기 때문에 그 만큼 적응하는 것도 힘들거든요. 그렇기에 일면만 보고 지원 하는 게 아니라 정말 봉사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적극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 중요해요.

최명군씨는 페루에서 굉장히 많이 배워온 케이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어떤 것을 얻어왔나요?

  많은 분들이 스페인어를 배워온 것에 주목하는데, 그것은 매우 작은 부분입니다. 저는 그 곳에서 여유를 배워왔죠. 산간지역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굉장히 여유로워요. 그러다 보니 답답한 면도 많이 있어서 처음엔 적응을 많이 못 했지만조금 지나니 오히려 그런 점 때문에 더 좋았어요그래서 이후론 제 행동을 거기에 맞춰 바꾸었죠. 상대가 약속시간에 늦으면 그 시간 동안 책을 읽는다든지 해서요또 봉사에 대한 정신을 배웠어요. 처음엔 다른 이들에게 무조건 잘 해줘야겠다는 생각에 뭐든 열심히 해주고 물건도 사주고 했지만, 끝날 때쯤 이것이 진정한 봉사는 아니란 생각이 들더군요. 전 그 때까지 제가 정하고 생각해 놓은 기준에 맞춰 봉사를 했었던 거예요. 진정한 봉사는 제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서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그렇게 못 했다는 것에 대해 많이 속상해 했죠하지만 그 생각이 나중엔 제 꿈에 대해서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자선 사업가를 막연하게 꿈꾸던 적이 있었는데요. 프로젝트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저 추상적으로만 꾸던 꿈을 구체화할 수 있었습니다.

– 마지막으로 KOICA에 지원하고 싶은 이들을 위해 한 마디 한다면요?
 우선 자기가 가는 목적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해요. 그 곳에 나는 봉사하러 가는 것이라는 사실을요. 그리고 더불어 봉사 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야겠죠? 또한,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선진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자신의 잣대를 그 사람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어요. 내가 그저 그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나도 그곳에 배우러 간다는 마음, 즉 사람들과 상호작용 하려는 마음이 가장 필요하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코이카 단원으로서의 2년 2개월은 어떤 시간보다 더 값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