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인 김지수 씨는 매주 월요일 학교 가기가 힘들다. 적성에 맞지 않는 물리학 수업을 억지로 수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학기 이 수업을 들었다가 C+ 학점을 받은 김 씨는 “재수강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번 학기까지 1년 동안 물리학 수업을 꾸역꾸역 듣는다”며 한숨을 쉬었다. 김 씨는 물리학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회학을 전공한다. 그런데도 김 씨가 물리학 수업을 들어야 하는 이유는 이 수업이 김 씨가 들어야 하는 교양 수업 중 하나기 때문이다.
김 씨를 비롯한 이 대학의 학생들은 ‘기독교와 세계’, ‘우리말과 글쓰기’, ‘대학 영어’ 등 필수 교양 과목을 반드시 수강해야 졸업할 수 있다. 그 외에도 ‘핵심 교양’이라는 이름으로 사회, 역사, 예술, 세계, 과학 등 7개 분야 중 5개 분야의 과목을 선택해 수강해야 한다. 다른 대학도 교양 강의 수강 조건은 거의 비슷한 상황이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대학 교양 수업이 확실히 득보다는 실이 더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왜 교양 수업은 학생에게 실인가?’하는 의문에 앞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입학한 스무살 대학생에게 더 중요한 것이 그들의 의무인지 혹은 선택인지에 대한 것이다.

여기에서 대학생의 ‘의무’는 재학 중인 학교에서 졸업을 위해 요구하는 필수 교양 및 핵심 교양 수업의 수강을 말한다.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교양 수업 수강의 목적을 ‘건전한 인성 함양, 기본 핵심 능력 습득 및 복합적 사고 배양’ 등으로 명시하고 있다. 즉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학생이라면 반드시 갖춰야 하는 인성 및 지식을 교양 수업을 통해 충족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위 사례에서의 김 씨는, 과연 물리학을 두 학기 째 ‘꾸역꾸역’ 들으며 과연 어떠한 ‘교양’을 갖추게 되었을까? 김 씨는 “학교가 이야기하는 교양 수업의 목적과 실제 교양 수업은 상당한 괴리가 있다”며 “물론 현실에서 그러한 목적들이 다 충족될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이미 대학을 가기 위해 모든 과목의 기초 소양은 다 갖췄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회학을 공부하고 싶어서 대학에 왔다.”고 토로했다. 
올해 ㅈ대학에 입학한 이소연씨도 지난 학기 교양 수업을 듣고 나서 “고등학교 수업을 다시 듣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내용의 교양 수업을 의무적으로 듣느니 타 전공 수업을 듣겠다”고도 했다. 예를 들어 근현대사 교양 수업을 듣느니 사학과 전공 수업 중 근현대사 과목을 듣는 게 낫겠다는 것이다. 덧붙여 이 씨는 “이렇게 애매하고도 부실한 교양수업을 의무적으로 듣게 하는 것은 싫다. 대학생의 의무는 졸업학점을 채우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 학점을 어떤 과목을 들으며 채우느냐는 학생의 선택이다”라고 주장했다. 

두 학생의 의견을 종합하면 대학 교양 수업 내용이 고등학교 수준에 머물러 있고, 이러한 수준의 교양 수업을 학생들에게 의무로 강요하는 것에 두 학생은 답답함을 느낀다. 그들은 전공을 선택했고, 선택한 전공 학문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에 진학했기 때문이다. 물론 두 학생이 전체 대학생들의 의견을 대변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함께 생각해봐야 할 문제는 대학이 학생에게 졸업하기 위해 수강해야 하는 학점 그 이상을 지나치게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문제다. ‘대학생이라면 이 정도는 해야지’라며 ‘대학국어’, ‘대학영어’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국어 및 영어 실력을 평준화하고 학교가 따르는 종교정신을 수업으로 듣도록 하는 것은 어찌 보면 학생 뿐 아니라 학교에게도, 한국 사회에도 득이 아니다. 적어도 교양 수업의 질이 지금 상태보다 더 좋아지지 않는다면 위의 두 학생들처럼 “교양 수업은 왜 있는거지?”라고 회의감을 느끼는 학생들은 점점 늘어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