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는 최근 들어 SNS에 대한 경계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연일 SNS가 여론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서 직·간접적으로 기사를 내고 있다. 
26일에는 <트위터에 홍준표 집주소 올려 “오물 투척하라”>는 제목으로 트위터가 폭력을 조장하고 있다는 식으로 보도했으며, 25일에는 김우창·달마이어 교수의 대담 제목을<진정성 결여된 SNS식 대화는 소통 아닌 오락일 뿐>이라고 정했다. 또한 트위터 속의 루머나 괴담은 조선일보가 트위터의 나쁜 점을 보도하는 단골 소재라서 11월 24일에는 <“약값 3배 폭등, 건강보험 붕괴” 또 트위터 괴담>, 11월 21일에는 <순천괴담 – “여고생 잡아가 장기 적출” SNS 타고 번져> 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갔다.

조선일보는 괴담의 진원지로 SNS를 지적했다.
 
이들은 비교적 사적인 SNS인 페이스북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천지법 최은배 판사의 페이스북에 써져 있는 FTA 비판 글을 찾아내서 보도해서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가져왔다. 물론 이 기사에서도 존 로버츠 미 연방대법원장의 “9명의 대법관 가운데 누구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이용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법원 서기들에게도 트위터를 사용하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말을 인용했다. 교묘하게 법관 또는 공무원의 SNS를 통한 의사표시를 경계한 것이다.
조선일보는 SNS가 세대갈등까지 조장하고 있다고 말한다. 21일자 <[조선데스크] 한국版 ‘침묵의 세대>라는 제목의 글은 “정치권이 ‘트위터 정치’에 과도하게 몰두한다면, 장·노년층의 소외감은 더욱 커질 것이며, 이에 ‘침묵하는 표심(票心)’이 똘똘 뭉칠 것이다.” 라는 논지를 펼치며 SNS를 사용하지 않는 세대의 반발심을 도리어 부추기고 있다. 이쯤 되면 ‘SNS포비아’다. 
그들이 SNS을 경계하고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SNS상에서는 조선일보의 색깔과 논조와는 다른 의견들이 대세를 타고, 지지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입장에는 SNS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이며, 그들의 시장지배력, 나아가 여론장악의 힘을 약화시키는 주범인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SNS의 나쁜 점을 끊임없이 보도하며 조선일보 독자로 하여금 SNS는 ‘루머 선동만 난무한’ 곳인 양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10일자 사설에서는 “젊은 세대가 괴담에 쏠리지 않는 사회로 가려면”이라는 주제로 20대~30대를 ‘괴담에 휩쓸리는’ 세대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젊은 세대는 SNS를 통해 괴담이 아닌, 기성언론에서 보도해주지 않는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접하고 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홍대 청소 노동자 파업, 명동마리 투쟁 등은 기성언론에서 보도하지 않았으나, SNS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연대해서 문제를 해결했던 경우다. 그리고 SNS는 자유롭게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일종의 공론장과도 같다. 그 곳이 자신들의 입맛에 안 맞는다고 하여 경계하고 깎아내린다고 하면, 그것은 대중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마저 무시하는 셈이다.
조선일보가 SNS의 부작용과 나쁜 점만 강조 할수록, 그들 스스로 SNS를 사용하는 젊은 세대들과 담을 쌓는 셈이 된다. 조선일보가 젊은 세대에게 외면 받는 것은 SNS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