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골목은 대구의 번화가인 반월당사거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한일극장사거리 방향으로 걷다 중앙시네마 옆 자그마한 골목길에 들어서면 그곳이 진골목이다. 언제나 높은 빌딩과 사람들로 가득 차있는 반월당과는 다르게 진골목은 시골의 냄새를 풍기고 있다. 낡은 가게들과 간판 그리고 노인들. 젊은이들의 거리 반월당과는 반대로 노인들의 거리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다. 시간의 흐름이 멈춰있는 듯 느리게 흘러가는 곳, 현대와 과거의 흐름이 뒤엉켜있는 곳, 바로 그곳이 대구의 진골목이다. 

진골목은 긴 골목이라는 뜻으로, 경상도에서는 길다질다로 발음하는데 이 때문에 긴 골목진 골목으로 불리게 됐다. 특유의 좁고 긴 골목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 것이다. 그래서 일까? 골목 입구에 있는 한 가게에서 재미있는 문구를 볼 수 있었다.
 

여보게 차 한 잔 하시게가게주인이 별 뜻 없이 적은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는 마치 여보게 여행자 양반아, 이 골목길은 자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좁고 긴 곳이라네. 그러니 이 근처에서 차 나 한잔 하면서 쉬어 가는 건 어떤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생각하니 얼굴도 모르는 가게 주인이 정겹게 느껴졌다. 분명 멀지 않은 곳에 약제골목이 있으니 여기서 말하는 차는 약차를 말하는 것이다. 문구 옆에 그려진 그림을 보더라도 이는 대충 알 수 있었다
 

<부자들이 살던 집>

골목을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에 보인 것은
대청마루라는 간판이 걸려있는 큰 대문이었다. 지금은 일반 한식집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곳은 코오롱의 창업자인 이원만회장이 살던 저택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한때 진골목은 달성서씨가 살았던 대구 최고의 부촌이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이곳에는 서병국, 서병직, 서병기, 서병원, 서병오, 서병규 등이 거주를 했으며 이들은 진골목의 주인들 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부자는 서병국 이었고 그의 저택은3305제곱미터(1000여 평)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는 40대에 생을 마감 하고 만다. 그의 병명은 콜레라’, 대구에서 콜레라로 사망한 첫 번째 환자’였던 것이다. 당시 대구의 의료 전문 시설이나 인력은 충분하지가 못했다. 의사들은 처음 접하는 콜레라 환자에 우왕좌왕 하기만 했고, 그의 생은 한창의 나이에 지고 말았다. 당대 최고의 부자가 고작 전염병으로 사망 하다니, 정소아과 정필수 원장(당시 대구시립병원현 경북대 병원근무)“1호 환자만 아니었어도 의사들이 살릴 수 있었다.”라고 말을 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게 그의 생은 차가운 병실에서 고통 속에 끝을 맺어야 했다.

 
이원만 회장이 살았던 곳은 본래 서병국과 같은 항렬인 서병원의 저택으로서 2300제곱미터(700)규모였다. 저택의 규모로 보아 이원만 회장 역시 서병국에 못지 않은 부자였음이 짐작된다. 이원만 회장 저택의 매력은 과거와 현재가 같이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원만 회장이 이사를 간 뒤로 저택 원형의 모습은 많이 훼손 되었다. 저택이 분리되었고 그 사이에는 담벼락이 생겼다. 새로 생긴 담벼락 사이에는 골목길이 생겨났고, 그 길이 지금의 진골목 식당골목길이 되었다. 식당은 진골목의 대표적 맛 집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식당의 부지가 이원만 회장 저택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일단 식당의 육개장 보다는 저택의 내부를 구경하기 위해, 식당에 발을 들여 놓는다. 저택 내부를 보기 위해 들어온 식당에 음식도 나쁘지 않으니 맛 집이라는 호칭을 얻게 된 것이다. 이것이 가게 주인의 사업 전략이라면 성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원만 회장의 저택이 분리 되어있다.


저택의 주변에는 진골목 식당뿐만 아니라 다양한 식당들이 밀집되어 있다
. 식당이 밀집되어 있다는 말은 그 만큼 이 근처를 지나가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 된다. 아마 이 주변의 사람들 보다는 관광객이나 여행자와 같은 외부인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들은 맛 집을 찾아 이곳에 오는 것이 아니다. 대구의 역사가 묻어있고 골목 사람들의 삶이 묻어 있는 세월이라는 것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것이다. 비록, 저택 원형의 모습은 많이 사라졌지만 사람들이 계속 찾아오며 지금의 모습이라도 간직하는 것이 다행이다. 

낡은 쇠창살에서 지난 날의 시간이 묻어난다.

 
<잠시 쉬어 가는 건 어때요?>

 이원만 회장의 저택을 둘러보던 중 잠시 휴식을 위해 앉을 곳이 필요했다. 당연히 골목길 안에 있으니 가까운 식당이나 슈퍼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손님이 없는 조용한 가게를 찾던 중 조금은 신기한 관경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작은 가판대 같은 상자와 몇 개의 의자 들이 보여서 어떤 가게의 야외 테이블인 줄 알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곳은 대구 중구청에서 운영하는 야외 도서관, ‘진골목 작은 도서관이었다. 조금 의아했지만 잠깐 쉬기도 하고 구경도 할 생각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도서관은 이원만 회장저택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다.)

 

진골목 작은 도서관의 모습.

시골 분위기가 나는 골목길 안에서 현대적인 문화공간을 만났다는 것이 신기했다. 잠시 휴식을 위해 앉을 자리만을 찾던 나로서는 기쁜 일이었다. 좁고 긴 진골목에게 있어서 딱 어울리는 휴식공간이라고 생각했다. 관광객이나 여행자 혹은 동내 주민들 누구라도 골목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는 휴식을 그리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이다. 처음 도서관을 보았을 때는 골목길의 분위기와 너무 차이가 난다고 생각했다. 오래된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골목길에 비해 상대적으로 세련된 휴식공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곳에 앉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 할 것이다. 현대적인 느낌의 문화공간 안에서 세월의 맛이 묻어나는 진골목을 바라보는 느낌이 색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진골목 작은 도서관 서가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