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29일부터 12월 1일까지 부산 벡스코 컨벤션 센터에서 ‘부산 세계개발원조총회’가 열렸다. 이 행사에는 개발도상국과 공여국을 포함한 전세계 장관급 인사, 정부대표, 국회의원, 시민사회기관, 민간부문의 대표자들이 참석했다. 이번 총회에서 우리나라는 과거 도움을 받는 국가에서 도움을 주는 국가로 전환한 경험을 바탕으로 전통공여국과 신흥공여국, 민간공여자들 사이의 가교역할을 하였다.

세계개발원조총회는 1960년초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에 대한 개발원조의 인식이 퍼지면서 국제 개발 협력을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어 시작된 총회다. 역대 최대의 국제 원조회의로 평가받고 있으며, 꾸준히 발전하여 현재는 전 세계 100여개가 넘는 국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세계개발원조총회에서는 주로 원조에 대한 원칙과 과거 원조에 대한 평가를 하고있다. 그리고 2015년까지 세계의 빈곤을 반으로 감소시키자는 범세계인의 약속을 이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있다.

서울이 아닌 부산에서 총회가 열린 이유는?

과거 6.25전쟁을 겪으면서 1954년 전후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은 약 74달러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여러 선진국들로부터 원조를 받아야 했다. 때문에 여러 선진국들은 우리나라에 원조를 하기위해 태평양을 건넜고 그들이 처음으로 발을 디딘 곳이 부산이었다. 바로 부산에서 우리나라의 원조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한강의 기적’이라는 소리를 들을만치 빠르게 성장한 우리나라는 원조를 받던 국가에서 원조를 해주는 국가로 바뀌었다. 이처럼 부산은 과거 ‘받는 원조’의 시작점이었고, 이제는 ‘주는 원조’의 시작점으로 바뀌려 하고 있다. 수도 서울이 아닌 부산에서 세계개발원조총회가 개최된 이유는 이러한 상징적 의미가 있는 것이다.

세계개발원조총회에서 어떤 안건들이 다루어졌을까?

부산개발원조총회 첫째날에는 2003년 있었던 파리선언과 2005년 있었던 아크라행동강령 이후의 진전사항 및 모범사례와 향후 추가적인 이행이 필요한 점검 등을 논의하였다. 이 두 선언은 원조 효과를 높이기 위한 기본적인 교훈과 원칙을 언급한 과거 선언들이다. 두번째날에는 변화하는 세계 환경과 변화하고 있는 주체(국가)들을 고려한 보다 폭넓은 원조, 원조의 원칙, 그에 따른 영향 등을 검토하였다. 그리고 마지막날에는 원조에 대한 새로운 합의를 담은 ‘부산선언’을 발표했다. 이번 부산선언은 단순 원조를 넘어, 신흥 경제국과 개발도상국이 원조와 개발을 공동보조하자는 원칙인 ‘남남협력’ 원칙을 담고 있어, 더욱 의미가 있다.


대한민국은 이번 부산 세계개발원조총회로 과거 원조를 받던 국가에서 현재 원조를 해주는 국가로 성장한 것을 세계적으로 증명하였다. 또한 현재 여러 원조 대상국들에게도 꾸준히 노력한다면 우리나라처럼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 주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2002년 월드컵, 2010년 G20에 이어 이번 세계개발원조총회는 우리나라가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글로벌 리더 국가라는 이미지를 세계에 각인 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