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에도 어김없이 찾아온 대학수학능력시험. 매년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졸이게 하는 연중의 아주 중요한 ‘행사’다. 수능을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약 10년이 넘는 시간을 투자했고, 그 엄청난 시간의 결실을 맺어줄 시험이기에 수능철만 되면 여기저기 시끌벅적하다. 이러한 수능을 치르고 나서 기다리는 것은 바로 기다리고 기다리던 대학 입학이다. 하지만 대학 들어가면 핑크빛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아주 험난한 수능의 길을 견디고 들어간 곳이지만 대학은 그리 흥미로운 곳만은 아니다.


  요즘 신문에서 대학에 대해 떠들어 대는 것만 봐도 그렇다. 재정부실대학이니, 학교 폐쇄 조치니, 등록금의 상당수를 빼돌렸다느니 등등 난리도 아니다. 대학은 ‘고등 교육을 베푸는 교육 기관으로 국가와 인류 사회 발전에 필요한 학술 이론과 응용 방법을 교수하고 연구하며 지도적 인격을 도야하는 곳’ 이라고 사전에 명시돼 있다. 대학의 사전적 정의와 같이 현실의 대학도 그러할까? 글쎄, 국가와 인류 사회 발전은커녕 오히려 대학이란 곳이 사람을 획일화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우리나라 대학 교육 현실의 주소를 여실히 드러내는 사례로 최근 재정부실대학선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정부는 여러 가지의 수치화 된 기준을 바탕으로 대학들의 등수를 매기고 일정 기준치에 도달하지 못한 학교들을 정부재정지원대학으로 선정했다. 이것이 과연 올바른 처사일까. 물론 비리를 저지르고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는 학교라면 지탄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대체 좋은 대학의 기준이 무엇일까. 재정부실대학선정의 기준으로 사용된 지표(취업률, 재학생 충원률, 장학금 지급률, 전임교원확보율 등)들이 과연 대학의 좋고 나쁘고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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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례로, 지역의 많은 대학교들은 재정부실대학선정에서 빠지기 위해 언급한 지표들의 수치를 올리고자 갖은 편법을 동원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취업률이라는 지표의 수치를 올리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많은 대학들은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조교자리를 늘리는 등의 갖은 편법을 동원한다. 이러한 행태가 고등교육을 하는 대학이라는 곳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국가와 인류 사회 발전에 필요한 학술 이론과 응용 방법을 교수하고 연구하며 지도적 인격을 도야한다는 곳’에서 말이다. 
  
  이러한 비판이 일자 정부는 최근 개선이 요구됐던 취업률, 재학생 충원율, 교원확보율, 학생교육투자 지표, 학사관리 및 교육과정 운영 지표, 장학금 지급률, 등록금부담완화 지표 등을 수정했다. 취업률 지표는 예체능 계열 학과가 많은 대학에서, 재학생 충원율은 지방 소재 대학에서 이의 제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취업률은 국세 데이터베이스와 연계해 1인 창업자, 프리랜서 등의 취업률을 반영하고 남녀의 취업률 차이를 감안해 남녀 별도로 ‘표준점수’를 활용하며 예체능계 취업의 특수성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개선된다. 또한 재학생 충원율은 100%를 초과 또는 미달하는 경우 점수 산정방식을 개선하고 정원 내·외 재학생의 반영 비중을 변경한다. 그러나 개선된 지표가 얼마나 현실성 있게 실현될 지는 두고볼 일이다. 이번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선정은 좋은 대학을 가려 그렇지 못한 학교를 없애 교육의 질을 높이고자 했지만, 정부는 이것이 곧 대학의 학문적 기능을 저하시키고 대학을 단지 취업기관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지 않았으면 한다.

  현재 우리 사회의 대학이 과연 어떤 상태인지, 대학이 존재해야하는 이유는 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좋은 대학의 기준이 무엇인가. 단순히 취업률과 재학생 충원률이 높고 장학금을 많이 주면 좋은 대학인가? 아니다. 학생들이 학문을 통해 진정한 배움을 얻도록 하는 것이 대학 교육의 근본적인 목적이다. 이를 잊은 채 점점 대학 교육의 목적을 잃고, 대학을 직업양성소로 변화하게 만들고 있는 이 사회는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철학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또한 스스로의 행복을 개척해나가야 한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우리를 억압하는 이 사회로부터 벗어나 우리는 행복해질 권리가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