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자유시장경제의 병폐를 지적하기 위해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펴냈다. 그의 위신에 반응한 것일까. 자유시장경제를 신봉하는 경제학자들도 그동안의 우월적인 태도를 던지고 머리를 맞대 <장하준이 말하지 않은 23가지>를 출간하고 자유기업원 홈페이지에 반박을 내놓는 등,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기에 여념이 없었다.

 

학계의 논쟁은 더없이 뜨거워졌지만 자유주의 경제학자이 만들어 놓은 경제는 차갑게 식어 갔다. ‘그들’은 이미 2008년에 금융위기에 대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며 권위를 잃었다. 특히 내수시장은 빙하기를 맞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가는 정부의 목표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고공행진 중이다. 무분별한 등록금 산정은 폭등을 불러왔고 대학생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복지정책이 이제는 포퓰리즘으로 매도되지 않으며 정치계의 화두로 자리 잡은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주류 경제학자들이 뒷북을 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슈가 된 사안들은 경제학자들에 의해 예측이 가능했어야 했다. 시장에 모든 일을 맡겨 두면 시장실패가 발생하는 건 기본적인 경제 원리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러지 못했다. 그럼에도 반성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나라에 시장경제의 더 큰 족쇄를 채워놓기 위해 전념하고 있는 모습이다.

등록금을 폐지하라. 경제원리에 따른 등록금 산정이 대학생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등록금 내리자고? 안 돼!

 

등록금 문제는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시장실패다. 수요-공급 원칙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학교, 특히 서울 소재의 대학은 수요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등록금이 비싸도 너나없이 소위 명문대라 불리는 대학의 이름이 박힌 졸업장을 얻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등록금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대학생들은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휴학을 불사하며 처절한 리얼리즘 드라마를 찍고 있다.



하지만 주류 경제학자들은 “등록금을 내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등록금을 내리면 대학교육의 질이 그만큼 떨어질 거라는 우려에서다. ‘등록금을 내리는 대신 대학교육의 질을 그만큼 높이자’는 게 그들이 내놓는 대안이다. 그러나 대학교육의 질에 대한 문제제기가 어제오늘만의 일이냐는 건 되 뇌여야 할 문제다. 등록금과 대학교육 사이의 불균형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현상이었다. 주류 경제학자들의 주장과 대안이 뒷북인 이유다. 



대학구조조정은 그들이 내놓은 또 다른 대안이었다. 이미 진행 중에 있다. 명신대, 성화대, 건동대, 벽성대, 부산예술대학 등 5곳은 이미 퇴출이 확정됐다. 명신대와 성화대는 2010년에, 건동대, 벽성대, 부산예술대학은 2009년에 경영부실대학으로 선정된 바 있다. 하지만 논란이 분분하다. 너무 성급할뿐더러 대학구조조정을 하기엔 이미 늦었기 때문이다. 등록금문제와 함께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괜한 게 아닐 거다. 대학구조조정은 대학총원이 입학생 수를 역전한 그 순간부터 이루어졌어야 했다. 




비정규직 철폐하자고? 안 돼!



비정규직 문제도 시끄럽다. 비정규직 확대 등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1990년대 외환위기 탈출을 위한 수단의 하나였다. 이는 철저히 자유주의 경제학 논리에 따라 진행됐다. 사유재산의 광범위한 인정에 입각한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기업가들이 재산은 고스란히 보전해주었다. 대신 ‘불가피한 경영상의 어려움’에 따라 후일 복귀를 약속받고 해고에 합의한 노동자들은 복직을 하지 못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는 2배에 달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주류경제학자에 따르면 비정규직 철폐는 국가경쟁력을 저하시키는 일이다. 노동시장이 경직화된 국가에서는 높은 교체비용으로 인해 기업들이 고용을 꺼려하고 그로 인해 실직이 발생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곳은 없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하지 말고 적절한 제동장치를 설치했어야 했다. 비정규직 철폐 주장은 이런 막다른 곳 없는 독주가 불러온 결과물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가피한 경영상의 어려움이 아닌 ‘기업 사정에 따라’ 해고를 할 수 있게 해주자는 경제학자도 있다. 정규직의 해고까지 ‘자유화’해 전 근로자를 비정규직화 하자는 얘기다. 여기서 발생 할 수 있는 문제는 사회보장망으로 대처하자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실직했을 때, 임금의 상당부분에 해당하는 돈을 지급하고 취업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게 사회보장망의 요지다. 하지만 사회보장망은 우리에게 필요한 제동장치가 아닌 가속장치일 뿐이다. 시장엔 후진기어가 없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기. 시위대는 월가를 점령했다.
 

시장이 아니면 안 돼!



주류 경제학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단어를 꼽는다면 아마 ‘정부’일 것이다. 그들에게 정부란 최소한의 역할만 해야 하는 존재에 불과하다. 애덤스미스가 국가는 국방과 치안만을 담당해야 한다는 야경국가론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나라 대다수 경제학자들의 주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의 국가관은 금융위기의 도래로 인해 바뀌어야 할 처지가 됐다. 시장만능주의가 대학등록금과 비정규직 같은 현안들을 해결 할 수 없다고 판명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경제학자들은 여전히 주류 경제학에 매여 틀을 깨지 못하고 있다. 폴 크루그먼, 제프리 삭스, 조지프 스티글리츠 같은 경제학자들도 시위대의 월가점령을 지지하며 전향을 선언했음에도 우리나라에서 시장에 대한 믿음은 여전하다. 환경문제도 시장중심으로 해결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판이니 말이다. 어떤 경제학자의 환경문제 해결책은 원인과 동떨어진 방향으로 향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경제학이 환경파괴를 부추겼지, 막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세계1차대전 이후 일어난 대공황의 원인 중 하나로 금본위제를 들고 있다. 금을 매개로 자국 화폐와 외국 화폐를 교환 비율을 정하는 금본위제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대공황이 빨리 해결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금본위제를 유지하기 위해선 경상수지와 재정균형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유연한 경제 정책을 세울 수 없다. 결국 경제학자들도 같은 굴레에 빠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시 정부들이 금본위제라는 굴레에 집착 한 것처럼 현재 경제학자들도 시장이라는 굴레를 벗어 던지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